A History of Violence
스필버그의 <뮌헨, Munich>(2005)이 개봉했을 때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있다. '이 영화는 만찬(supper)를 위해 고통(suffer)을 감내하는 이야기 같아.' 흥미롭게도, 두 단어의 발음은 거의 유사하다.
<뮌헨>에서 식탁은 자주 등장하는, 어쩌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에브너는 자신의 동료들과 만찬을 함께 나누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프랑스의 암거래상의 보스 '파파'는 에브너를 식사에 초대하는데, '파파'는 손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을 즐기는 인자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브너와 파파는 소의 '내장'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다듬어야 냄새를 지울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의 냄새'일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모든 조리법의 관점은 어떻게 하면 죽음과 폭력의 - 소, 혹은 돼지, 혹은 또 다른 모든 것들에게 행하여진 - 흔적을 지울 수 있는가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브너는 임무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 때마다, 주방 가구가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모퉁이의 어느 상점 앞으로 버릇처럼 되돌아간다. 그는 쇼윈도 속의 주방을 보면서 '언제나 저런 주방을 갖고 싶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암살 임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임무수행을 거부하는 그를 찾아온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상사 에프라임에게 에브너는 식사를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에프라임은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거부한다. 혹은, 자신은 그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멈춰 선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의 마지막 장면은 식탁 앞에 앉는 돌아온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치 스필버그가 <뮌헨>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끌고 와서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손에 피 묻힌 자와 빵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이 질문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혹은 '우리'에게서 (바깥의) '너'에게로, 그러니까 하나의 일정한 방향을 가정한 채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식탁 앞에 마주한 이라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될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 장면은 이상하게도, 영화의 맨 처음에 놓여 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은, 노래의 맨 마지막에 있는 도돌이표처럼, 이 마지막 장면은 제일 나중에 던져진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통해 다시 그 앞의 장면들을 다시금 복기해 볼 수 있으며,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다시금 되돌려지고, 새롭게 시작될 수 있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아마도, 필연적으로 악몽 속으로의 회귀가 되겠지만.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A History of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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