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8일 목요일
권능을 도둑질하는 가짜 선지자들
관점에 따라서는 기껏 말 하나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지나친 발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무엇이냐 하면, 목사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제 말이다. 국내에서는 꽤 내노라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름 경청하느라 주의깊게 듣고 있었는데, 한 대목에서 나는 그 '목사님'이 '강도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설교 끝에 일종의 마침 기도 형식으로 뭐를 해 주시고 뭐를 해 주시고 뭐를 곱배기로 주시고 어쩌구 저쩌구 미주알 고주알 주절주절 막히지도 않고 '하나님'께 은총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원하시는게 많으신지. 뭐 그건 한국 기독교가 기복적 성격이 강하고, 어차피 종교라는건 그 나라의 특성에 맞춰 약간의 변형은 겪는다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감은 없었지만, 하일라이트는 기도의 끝 말씀이었다. '무엇 무엇 무엇이 이루어질 지어다'라고 '목사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에 신자들은 머리를 꾸벅꾸벅 조아리며 하나님, 아버지, 아부지, 주여하고 외치며 화답을하기 시작했다.
연단위에 서신 '목사님'께서는 이순간 교묘한 바꿔치기를 시전하고 계셨다. 자신이 하나님께 갈구한 모든 은원들의 '이루어짐'을 당신이 선언하신 것이다. 제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라면, '이루어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는 '이루어질 지어다'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순간, 권능의 주인은 하나님에서 인간 '목사님'으로 교묘히 바꿔치기 된다. 신자들은, 그러한 권능이 자신들의 '목사님'에게 있다고 믿게 된다. 너무 과장된 생각이라고 ? 언어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세상은 '말씀'으로 창조 되었다. 말은 의외로 큰 힘이 있다. 그것도 무의식중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말은, 그 말의 힘을 일상속에 고착시킨다. 말씀대로 믿게 된다는 말이다. 목사들이 소위 '신학교'라는 곳에서 일종의 '웅변술'을 교육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물론 설교자가 듣는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스킬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목사는 그저 하느님의 종,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개 인간일 뿐이지, 하느님의 권능을 소유한 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고 가볍게 스쳐지나갈 수 있는 몇 마디의 말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갈취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의외로 많은 목사들이 이런식의 언사를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렇게 세치 혀를 놀린다 해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권능의 주인이 옮겨지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신자들에게는 그러한 언사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볼 때, 이들의 행위는 분명히 강도짓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에 강도가 같이 매달려 있었다던가, 그럼 먼저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신 후에 죽지않고 살아남은 자들만 목사 짓을 하시던가.
매주 '라듸오'를 통해 발표하시는 본인 말씀 몇마디로 대한민국이 들썩들썩 지 맘대로 바뀌길 바라시는 어떤 분께도 물론 통용되는 이야기다. 제대로 할려면 먼저 십자가 부터 지자. (그런데 문제는 이 '어떤 분'께서는 말씀도 제대로 못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눌한 말씀에 이리저리 휘둘리니 더 부아가 치미는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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