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요즘 뉴스에서 이런 소릴 많이 본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해 주자.' 맞는 말이다.
원전 수주. 잘 한거다.

일단 여기까지.

국가 대 국가의 외교/경제 계약에 있어서 결정도 안됐는데 국가 원수가 방문하는 것은 결례다. 바꿔 말하면, 이미 프랑수로 수주가 결정된 상황을 가카께서 막판 뒤집기를 한 것처럼 호도 되고 있는데 그건 아니라는거다. 물론 FTA 제물로 쇠고기 덥썩 기분이다 하고 내준 것처럼 또 뭔가 꿀을 발라주기는 했을 것이다. (근데 약속을 지키기나 할까?) 이번 원전 수주가 오로지 가카의 공덕이냐? 그건 아니라는거다. 원전수주 결정 하루전에 '한국으로 사실상 확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낸 미쿡 일간지들은 그럼 점쟁이라는 건가? 이것만 봐도 간단히 드러나는 전형적인 MB식 가로채기 수법이다.

물론 안다. 지금 한국이 국민들의 마음을 '대통합' 할 수 있는 영웅이 필요하다는거. 근데, 가카는 아니다. 차라리 이런 막판 뒤집기 승리의 신화를 쓰고 싶었다면 이름없는 '원전 연구원의 사투' 이런식으로 드라마를 꾸렸다면 다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이런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그냥 오로지 가카의 위대한 영도력을 뽐내기 바쁘다. 요즘 같아서는 내가 사는 곳이 북인지 남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길게 썻는데. 오늘의 결론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끗.

Merry Christmas in Gedoc





홍대. 제너럴 닥터.
천정 가득 매달려 있던, 혹은 둥실 떠 있던 울창한 전나무 숲.



Unnamed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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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서울 성곽길 근처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Unnamed Voyage







성북동





Unnamed Voyage





Unnamed Voyage


입안에 가득




퇴원은 했지만, 너무 잘 쉬어서인지 입안이 잔뜩 헐었다. 게다가 혓바늘도 돋았다. 극악 처방 알보칠의 힘도 빌려 봤지만, 환부가 너무 다양하게 퍼져있어서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그거 바른다고 화장실에서 눈물 깨나 쏟았다. 침도 한 됫박 쏟았다.

부득이하게 사무실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침묵 선언을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나 보다 주변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 말하거나 의사 전달이 필요한 것은 간단히 손동작이나, 쪽지에 적는 것으로 가능하겠지만, 그것 마저도 불편을 느낀다. 그만큼 말은 한다는게 편리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에 수도회에 몇 일동안 들어가 대침묵 속에서 지낸적이 있었다. (이런걸 피정이라고 한다.)침묵에는 대침묵과 소침묵이 있다. 말 그대로 소 침묵은 일상의 간단한 의사 소통 정도는 허용하는 것이고, 대침묵은 일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사님들과 마주치면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다가 웃게 되면 얼굴이 두 배는 더 활짝 펴지는 기분이 든다. 왠지 웃는 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진다. 수사님들은 눈인사로, 웃음을 가득담아 화답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입을 꼭 다물게 된다. 지금 처럼 입이 아픈 경우에는 더 그렇다. 입을 잠시라도 떼면, 환부가 자극되서 아프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긋이 눌러서 조금 참으면 견딜민 한 수준까지 고통이 가라앉는다. 물도 마시는 것을 피하게 되고, 음식을 먹는 것은 더 그렇다. 사람의 감각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다. 피부에 대한 자극, 신경에 대한 자극. 그것들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그것을 고통이라고 한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해서, 나는 익숙해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몸에 고통이 상주해 있으면 불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순간 내 안의 모든 것들이 고요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고통을 통해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사회 생활에서 침묵이란게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제약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든 생각은,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이곳에 채용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서, 처음엔 좀 불편하겠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의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영사기사중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혹시 있는지.

말을 하지 않는 몇 일을 보내면서, 그동안 어떤 말들을 해 왔나 생각해 봤다. 결론은, 참혹하고 부끄럽다.

이런. 여기에도 주절 주절 늘어놓고 있다. 여기까지. 그만. 끝.

2007. 7. 15




2009년 12월 24일 목요일

2009 년 개봉 한국영화 베스트 5




1. <파주> 손쉬운 후일담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찬옥의 메스는 깊고 끈질기다.
2. <마더>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는 것이 큰 미덕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잘 알지도 못하면서> "can you speak english ?" 이후 홍상수 유머의 최고봉. 잘 알지도 못하면서.
4. <차우> 이 영화를 빼면 섭하다. 얼렁땅뚱 엇박자 유머, 게다가 서툴기까지 하다.
5. <카페 느와르> 시네필의 최종 완성형을 보여준다. 그것 만으로도 !

<카페 느와르>는 정식 개봉한 영화가 아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감질 맛 나게 잠간 공개했을 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작품을 베스트 5 안에 넣는 것은 어떤의미에서 반칙이다. 나는 어떤 의미로든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들수 없을것이라고 확신하는 쪽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지나치게 재기발랄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이지 않고, 덜 재기발랄하고, 조금은 덜 솔직한 영화가 걸작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여하튼)

그동안 영화를 통해 위로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페 느와르>를 보고 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정성일이 평론을 쓰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그건 반은 맞는 말이다. 정성일은 평론을 쓸때 생각의 흐름을 가리지 않는다. 그건 평론가의 밑천인데도 그 흐름과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건 그만의 자신감이고 솔직함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이 동시대를 어떻게 호흡하고 살아나왔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대중 영화는 어떠해야하고 하는 등등의 금기와 가이드라인과 한계에 우리는 어쩌면 익숙해 졌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것이 매번 같은 것 같고 그냥 관성이고 버릇이 되버린 것 같다. 정성일은 이런 것들 따위 지키지 않더라도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것도 몸과 마음으로. 나는 그 모습에 감동했다.

<카페 느와르>는 걸작은 아닐지 몰라도 2009 년 가장 중요한 영화중 한 편에 올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영화다. 극장에서 정식 개봉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서울 독립 영화제] 장률 감독 관객과의 대화

 



장률 감독의 첫 인상은 마치 옆 집의 친근한 아저씨 같다. 그러나 그의 영화 속에서 우리는 순간 순간 날카로운 감독의 시선을 발견 하는 것 같은 감각을 경험하게된다. 장률 감독을 수식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경계인'이라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경계가 아닌 경계의 안 쪽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장률의 영화를 보면서 어떤 마음의 떨림, 혹은 매혹, 혹은 어떤 종류의 슬픔, 여하간 그런 감정들을 느꼈다면, 그 때, 우리는 깨달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경계인'이라는 것을.

(12월 13일, 서울독립영화제의 장률 특별전 중, <중경> 상영 후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를 기록했다. 대담은 장률 감독 본인의 말투에 최대한 충실하게 담아냈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한국어는 어느 정도의 '변환과정'이 필요한 만큼, 장률 감독의 말투에는 독특한 쉼과 공간이 있다. 그 부분을 최대한 살렸다. 조금 말투가 이상하다 생각되더라도 꼭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김시원 (중국어 통역, 영화 평론가) : 서울독립영화제는 처음이신가요? 느낌이 어떠신지요?

장률 (이하 장) : 가벼운 질문? (서울독립영화제는) 처음입니다. 처음인데 (제가)모르는 영화를 틀어주고, 저에게 반성할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찍는건 반성하라고 찍는것 같아요.

김 : 감독님의 작품을 보러온 관객분을 만난 느낌은 어떠세요?

장 : 좋다고 이야기 해야겠죠. (웃음)

김 : 기억 나시는 것은?

장 : 많습니다.

김 : 너무 답이 짧으셔서. 제가 먼저 궁금한 몇 가지를 질문할 거구요. <사실>과 <중경>을 관련지어서 다른 영화들도 질문해 가겠습니다. <망종>도 보신 분들 있을거고, <중경>, <이리>, <경계>까지 쭉 보셨을 텐데. 저는 한 가지 공통되는 장면을 떠올렸어요.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길거리를 단체로 지나가는 장면이 있죠. <망종>에서 부채춤, <이리>에서도 그리고 <중경>에서도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행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들을 어떤 의미로 집어 넣으셨는지요?

장 : 의도적이진 않았는데, 평론가 분들은 영화 속에서 뽑아내서 질문을 하니까 다른 건 없고요. 노래 좋아하고, 춤 좋아하고, 내 영화가 좀 지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걸 넣어서.

김 : 재미를 위해서였나요?

장 : 아까 반성이라고 했는데, 완전한 반성도 재미 없어서, 약간의 재미 요소로 넣었어요.

김 : <중경>을 보셨을 때 생각 했겠지만, 남성의 나체가 나오고, 거리를 나체로 걸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찍으셨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그 남성의 표정이. 그렇게 슬픈 표정도 아니고 좀 당당하기도 한 표정으로 활보하는데. 어떻게, 왜 넣으셨는지.

장 : 그걸 찍을 때는 나는 안 힘들었고 배우가 힘들었던 것 같고, 그런데 좀 어떻게 보면 즐기는 거 같기도 하고. 그 배우가. 실내에서 벗고 찍는 장면이 있는데, 이 친구가 유명한 락 가수에요.유럽에서도 알려졌고. 영화 찍을 때 벗고 찍다가 컷 하면 스텝들이 옷 입혀주잖아요. 그걸 싫어해요. 준비 할 때도 계속 나체로 다니고, 여자 스텝들이 조금 불편해 하는 거 같은데. 후에는, 여자 스텝들도 개의치 않게 됐고. 그런데 제가 그렇게 당당한가. 그럼 거리에 한번 나가봐라. 즉흥적으로, 거리에 나가봐라 하니까, 사실 저는 거의 시나리오 없이 해요. 그 친구가 당당하다가 아무리 당당해도 두려움이 있죠. 그런데도 나가보겠다, 나가 보는데, 약속만 지켜달라. 나갔다가 경찰에게 잡혀 들어가면 보름내로 꺼내 달라. 보름 후에 유럽 공연 일정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대답했죠. 대답했는데도 나도 자신이 없었죠. 보통 감독들이 좀 나쁘잖아요. 거리에 나갔는데, 옆의 차들, 지나가는 차들이 다 서고. 한 번찍고는 달아났어요.

김 : 무사히 끝냈네요.

장 : 운이 좋았죠./김 : 감독님의 영화에서 남성의 나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장 : 왠지 그런쪽으로 질문을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김 : 그리고 아무래도 섹스나 성에 관련된 문제들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요. 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남성인데 이리의 폭발 사건으로 거세를 당한 남자 잖아요. 그 사건으로 중경까지 왔는데요. <중경>에서 <경계>라는 영화하고 연결되는 지점을 봤어요. 김씨가 '중경도 재미가 없어졌다'면서 몽골로 떠나겠다 말하고, 그 이야기를 하니까 쑤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초원과 사막, 말 언어를 던지면서 이야기하는데요. 그렇다면 <경계>를 먼저 찍고 <중경>과 <이리>를 제작 하신 거죠. 그러면 경계에 대한 언급을 일부러 하신 것인지.

장 : 찍다가, 중경의 날씨가 8월 달이면 매일이 43도에요. 너무 덥고 바람도 없고. 이래서 어떻게 찍나. 이런 생각을 매일 하다가. 몽고 바람이 그리웠어요. (경계를 찍을 적에도) 마찬가지로, <경계>를 찍을때도 몽골에서 이거 어떻게 매일 찍나, 날씨 문제도 있고, 두달 있었는데 목욕 한 번 했으니까. 전기 없고, 물 없고. 이 영화 찍을 때 저 영화 생각나고, 사람이 살다가 계속 그런거 같아요. 그리고 요즘 거의 10년 됐는데, 영화에서 일중독 처럼 일 하다 보니까 작년에 무슨 기억이 난다. 영화 기억이 나잖아요. 그렇게 된거 같아요.

김 : 감독님 영화 보면. 주인공들이나 인물들이 다른 영화에서도 보이잖아요. <중경>, <이리>, <경계>까지 보면서 감독님의 영화들이 꼭 하나씩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질문을 드렸어요.

장 : 다음엔 서울독립영화제 생각나서 또 뭔가 들어가겠죠.

김 : 어떤 부분이 들어갈지 기대가 되요.(웃음)

장 : 아주 놀란 것이 있어요. 제일 처음에 질문을 이제 와서 대답하는 거 같은데. 서울독립영화제에 왔는데,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같은 시간에 <경계>를 하고, 한국 단편 영화들 몇 편을 했어요. 나도 <경계>를 오래 못 봤어요.그래서 잠간 볼까 하다가 (그냥) 단편을 봤어요. 다 보고 내가 정말, 잘 선택을 했다. 보통 영화제들 가보면 단편이 많잖아요. 미완성, 아니면 좀 실망할 적도 많아요. 그런데, 네 편 봤는데, 다 너무 좋아요. 기술도 좋고. 아주 완벽했고, 생각, 깊이 충분히 그 네 편이 다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 감독들 같았어요. 그래서 단편을 다시 해볼까, 반성도 하고, 그런 생각도 했어요.

김 : <사실>이라는 영화도 몽고 초원에서 찍었나요?

장 : 네. 그건 <경계> 마지막 촬영 끝나고 보통 사람이 영화를 오래 찍으면 끝나는 날이 사람들이 좀 흐트러질 때가 있어요. 달리다가 갑자기 서 버리면. 그 모습이 좀 보기 싫(었)고 그래서 필름이 좀 남았어요. 단편을 하나 찍자. 필름이 한 캔 밖에 없으니까,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사실>에 나오는 남자배우. 얼굴이 나오지 않는. 홍두현 감독이라고 한국에. <11세>를 찍고, <노을소리> 찍고 같이 베니스에서 친해져서 이 친구가 <경계>에서도 출현 했어요. 창호 평양 사진 속 인물로. 그런데, 사진 출연 하고 개런티 안 줬어요. 아주 불만스럽게 이럴 수 있는가 함에, 개런티는 안 받겠고, 자기도 몽골을 한 번 가고 싶다고 . (그런데) 피디가 잘못했죠. 그 때 개런티를 조금 줘도 되는데, 몽고까지 그 여비가 더 들고, 빈둥빈둥 옆에서 노는데, 괘씸한 생각도 들고, 그러면 단편에 출연해라.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데) 꼴보기 싫은거 있잖아요. (웃음) 그래서 얼굴을 절대 내주지 않았죠.

김 : <중경>도 그렇고 <당시>에서도 벽이 많이 등장해요. 아파트 공간의 프레임의 반은 벽 아니면 문이 등장하고, <망종>에서도 문을 넘어서 주인공들이 있는데, <중경>에서는 그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반을 차지하고 딸은 끝에 살짝 보이는데요. 마치 아버지의 프레임을 딸의 젓가락이 침범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왜 벽이 자주 등장할까요.

장 : 우리 사는 공간에 어디에나 벽이 등장하죠. 평론가들은 항상 영화안에서 벽의 의미를 묻는데, 실제 현장에서 찍을 때에는 그런 생각 못 해요. 카메라를 잡을 때 이렇게 잡으면 일관성이 있다. 보기 좋다. 감정이 흐르는데, 그렇게 잡아야겠다. 그 안에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가 감독이 말하는 것 보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게 훨씬 정확해요. 거기에서 정확하다는 건 알고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와 딸의 모습. 그거 카메라를 잡을 적에 촬영 감독이 싫어 했어요. 왜냐고. 조금 이상하다. 그래서 내 카메라 이렇게 잡아 놓고. 너 모니터에 앉아서 딸과 아버지 행동하고 감독 자리에 앉아서 봐라. 한참 보는데, 재밌다는 거에요. 그 친구도 평론가 아니니까 이유는 말 못하지만, 그 느낌이 좋다. 그런 영화 한 장면의 느낌이 좋다 해서 연결이 되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면 이 작품이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 일관 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건 감독과 스텝들이 호흡을 맞춰서 어떻게 하는가. 그 뒤의 이유는 평론가들이 말씀해 주시고….

관객 1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뵜는데요. 가장 궁금한 거는요. 대학교 계셨고, 소설을 쓰셨고, 안정되고, 월급쟁이 잖아요. 계속 소설을 쓰시고 학교에서 샐러리맨 생활로 자신의 뭔가를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영화를 찍게 되셨는지요 ?

장 : 아픈 데를 찌르셨네요. 솔직히 말해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질서있게 살다가 정신이 나가버릴 때가 있는거, 중경의 남자처럼 다 벗고 나가는거. 그 이유를 모를 겁니다. 지금은 조금 후회해요. (웃음)

김 : 문학을 하셨는 데요, 소설이나 원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꽤 많잖아요. 그런 것은 관심 없으신지.

장 : 그렇게 한 거 없고. 아직까지 그 생각이 없고, 어느날 정신이 나가 그럴 수 도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김 : <당시>를 삼부작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그 계획의 진행은 어떻게 되시는거에요?

장 : 그것도 많이 후회 합니다. <당시>를 찍고, 당시, 송사, 원곡, 이렇게.., (그런데) 그 때 인터뷰에서, 사람이 욕심이 있잖아요. 이 제목 저 제목 다 차지 하는거. 그렇게 해 놓고. 지금까지 해야 할지 하지 않아야 할지. 돌아가서 고민하겠습니다.

관객 2 : 경찰관이 쑤이에게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데 진짜였나요?

장 : 저도 궁금한데, 현장에서 그렇게 (즉흥적으로) 요구 했어요. 그랬더니 배우들이 이유가 있어야 되지 않는가 감독들이 보통 현장에서 생각난걸 이유를 준비해서 못해요. 이유 있는 척도 하고 하는데, 다른 이유를 댄 것이 아니고 이상하게 어머니를 닮았다 하면 꼭 감정이 이상하게 가요. 그러면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래서 그 안에 여자 주인공이, 앞의 누구를 닮았다 하니까. 보통 남자들의 작전 ? 그렇다고 하는데, 그 질문과 전혀 반대로 어머니라면 그 말에. 쑤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분석해서 대답할 텐데. 이 남자가 그걸 깬거죠. 그러면 이게 의도적인가, 남자가 너무 고단수는 아니고, 그 인물도 그런 생각이 아니고 진짜 어머니를 닮았다.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관객 3 : 특별전에서 한꺼번에 봐서 기쁩니다. <중경>을 세 번째 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게, 딸이 엄마 무덤에 가서 휴대폰을 두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라는 장면의 설정은 왜 인가요.

장 : 무덤의 그 장면도 감독들이 영화현장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다 실망합니다. 재미가 없는건데. 사실은 그 장면을 찍을 적에 그 대사나 그런게 없었어요. 무덤에 가서 이렇게 그걸 찍고 대시는 생각을 아직 못했는데, 그 배우가 그날 조금 집중력이 떨어진다. 휴대폰 가지고 노는 거에요. 괘씸하기도 하고, 그럼 저 휴대폰을 지금 내 영화가 아니라 휴대폰에 집중하는거 같아서. 휴대폰을 넣어서, 배우의 집중력을 영화에 돌려보자. 생각해 보니까. 거기에 가서 누구에게 전화할 것 같은가. 생각하니까. 어머니와는 직접 얘기 할 수 있고,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대화하는가. 그래서 그 대사를 하자. 이 배우가 갑자기 집중력이 생기는 거에요. 눈물도 글썽하고. 이상하게 감동된다는 거에요. 그럼 집중해서 찍자. 이렇게 됐죠. 평론가께서 그렇다시면 맞습니다.

김 : <경계>에서는 핸드헬드 였어요. 다른 영화와 달리 그렇게 하신 이유는 있나요.

장 : 몽골에 가서 시각 경험 때문인데, 서울에서는 약간 흔든다면 꼭 물리적으로 지진이 온거 같은데, 초원이나 사막, 아무 참조가 없는 허허 벌판에서 서 있을 때 지평선 밖에 보이지 않을 때는 그렇게 되요. 대다수 사람들이 거기 가면 약간 흔들려요. 몽골 사람들은 흔들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공간에 살다가 지평선만 있는 공간에 갈 적에는 그 변화에 의해서 흔들리게 되요. 좀 민감하겠죠. 처음 부터 마지막까지. 그 360 도 도는 장면은 고정했는데, 촬영 감독이 질문하잖아요. 순희, 창호, 이 두 인물이 그 땅에 왔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도 나 처럼 이런 감각이 있을 수 있고, 또 그사람들은 나 보다 더 불안한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더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처음 부터 마지막까지 들고 찍었고. 촬영감독이 자기 몸이 좋다고 과시해요. 조금 까불어요. 그러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번 들고 찍어봐라. 그래서 그 친구가 허리도 좀 지금까지 (좋지 않죠.) (웃음)

관객 3 : 사천 땅에 대한 관심들이 많은 거 같아요. 옛날 중국 영화에서도 시골 여성들이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는 것도 있었는데, 중경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의 전후 변화는? 왜 중국 영화감독들이 서쪽 땅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요.

장 : 중경을 선택한 이유는 먼저 <이리>를 계획 했어요. 이리가 대조되는 중국의 도시. 이리는 가보면 되게 작은 도시입니다. 그럼 그 반대로 제일 큰 도시. 이리는 인구수도 아주 작어요. 이리 가보니까 인상 깊은게 시나리오 작업 할 적에. 숙소에서 일곱시 여덟시에 나가면 거리에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명동과 반대로. 뭐라고 해야할까. 외롭고 고독한 감정이 있고 중경이라는 도시는 중국의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에요. 3천만이 되요. 그런데 사천 사람들이 매운거 좋아합니다. 한국 사람들 먹는 고추는 고추도 아니에요. 너무 심하게 먹는데, 그렇게 심하게 먹는 사람들 성격은 어떻겠어요. 먹는것과 성격이 관계 되는데, 사람들 성격도 급하고 하는데, 금방 폭발할 거 같은, 겉 보기에는 그래요. 그런데 실제 사람들 맘에 들어가 보면, 이리와 같은 부분이 있어요. 외롭고 고독하죠. 똑같이 사막 같아요. 그 많은 사람들 사는 도시가 사막같고, 이리도 사막 같고. 그런 대조되는 그런 부분을 찾았고. 지금 중국의 서쪽 땅의 중심입니다. 중국 30년 개방에서 동부지역, 남쪽, 바다 옆의 이거는 격정시대를 넘었고, 지금 제일 격정적인 도시가 중경입니다. 사천성이고, 그래서 그 쪽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이 그 쪽으로 많이 가는거 같고. 그런 이유인 거 같아요.

관객 4 : 쑤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중경 출신이 아니죠. 외모가 아닌거 같은 데요.

장 : 베이징 출신이고, 그런데 중국으로 들어가 보면 북경에서 보면 서남쪽 남쪽 사람들도 많이 살아요. 쑤이가 건너간게 아니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때 분방에서 갔다던가. 그런게 많은데. 제가 지금 억지로 이유를 만들고 있어요. (웃음) 쑤이(역할의 배우)가 중경말 못해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 지방사람 들이 들으면 전혀 아니라고 하죠. 제가 서울말 흉내 많이 내지만 절대 아니다 하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는데, 보통 영화에선 그거 계속 공부(연습)시키잖아요. 반대로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관객 5 : 시나리오를 다 준비하지 않고 시작하신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은 어느정도 준비 단계에서 시작이나 엔딩, 캐릭터만 준비하시는지, 배우들에겐 어느정도 시나리오나 트리트먼트가, 그리고 투자자에게는 어떻게 설명하시는지, 그리고 디지털과 필름 매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장 : 시나리오를 안 쓰는 건 아닙니다. 투자를 받으면 시나리오를 꼭 보니까. 그 시나리오가 현장에서 전혀 달라요. 스텝들도 원래 시나리오로 준비하고 가서 모든 장면을 다시 하니까, 2 ~ 3 일은 황당해 해요. 그 후에는 포기하죠. 할 대로 해라. 사람이라는 게 습관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제가 처음 부터 나쁜 습관을 들였어요. 경제적으로 계획 있게 소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습관대로 나가는데, 이게 되게 모험적인, 깨지면 완전히 깨져버리죠. 근데 그렇게 습관이 되면 모험에 빠져버려요. 요즘 반성 많이 하는데, 어떻게 나도 계획 있게 해 보자 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반성해서 철저히 준비해서 들어가면 훨씬 더 좋을 거 같고. 내 식대로 나가다가 한 번 잘못되면 끝장이죠. 영화도 못 찍고 그럴 수 있는데. 스텝들이나 배우들에게나 미안한 감정이 많아요. 사람이 미안한 감정이 많다는 건 어떻게 말하면 빚을 많이 진 사람. 많아지면 무감각 뭐 그렇겠지 하는데. 계속 고민중이에요. (웃음)

디지털과 필름에 대해서는 처음에 35mm 찍고 필름을 찍으니까 거기에 빠져서 그 필름의 감각을 계속 찾게 되고, 당시를 찍을 적에도 PD150이지만, 계속 찍으면서 그 생각을 해요. 마지막 상영할 적에 계속 필름 쪽에다 맞춰요. 잘 맞춰지지 않는데. 요즘은 그게 맞는가, 디지탈의 미학 이랄까요. 뉴욕에서 중국 영화를 링컨 센터에서 몇 편을 했는데, <중경>과 <이리>를 같이 상영했어요. 그리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젊은 감독들, 디지털만 찍는 감독들이 저보다 훨씬 당당해요. 마지막 상영의 평가가 어떤가, 이런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집의 텔레비전으로 보면 괜찮은데, 큰 화면으로 보면 단점이 보이는데, 그걸 당당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근심이 있어요. 내가 늙었지 싶고. 모든 영화인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그런 과정에 있는거 같아요. 찍어보니까, 일단 디지털로 찍으면 편하고, 투자자도 좋아하고. 돈 절약되니까. 감독마다 필름이나 디지털을 찍겠다 서로 다른데, 저는 좀 왔다갔다. 그렇게 할 거 같습니다.

관객 6 :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에서 소통의 문제가 제기 되는 거 같은데 쑤이와 아버지의 관계를 보면, 쑤이는 북경어를 쓰고 아버지는 싫다고 하고. 대화로 소통하는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데요. 현대화 되는 중국사회의 외로운 개인을 보여주면서 다른 방법의 소통을 보여주는게 궁금합니다. 그리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리는데 다섯명 정도가 문제 제기를 하는데, 두 명의 여인이 있고. 한 명은 매매춘 여인인데. 쑤이가 손을 잡는데, 개인의 문제와 집단의 문제는 어떻게 제시되는지 궁금합니다.

장 : 한국말도 길게 들으면 어려워요. 소통의 문제가 어떻게 보면 세상의 사는 사람들이 모든 문제가 소통에서 생기는거 같습니다. 소통이 잘 안되고, 왜곡되고, 그 중에서도 영화인들은 더 좀 답답한 사람들이에요. 답답한 사람들이 더 소통하고 싶어하고 소통을 하는데, 그 안에 쑤이 아버지와 쑤이가 한 집안에서 살지만, 서울이라면 같은 서울 말 쓰는게 기본 소통인데, 근데 갑자기 딸이 경상도 말을 해 봐요. 소통이란게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는건데. 중경말은 제가 들어도 못 알아 들어요. 중경 노인들은 베이징 말을 잘 못알아듣고. 잘 못하는 사람도 많고. 쑤이가 어떻게 보면 편하게 해야 소통이 잘 되잖아요. 거꾸로 불편하게 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을 떠나는데 전혀 다른 이유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너 그 개똥 같은 북경 말이 지겨워 나간다.' 이런 이유를 찾을 때 소통의 방식을 질문하잖아요. 인물들의 소통 방식이 왜곡되고, 변태적이고, 어떤 인터뷰에서 그런 말도 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제가 제 영화를 언어에 대한 영화라면 좋겠다. 이런 말도 했어요.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할 수 없었어요. 배우가 아무리 해도 중경 말을 못하는데, 그럼 어쩔 수 없으니까. 설정을 바꾸자. 그러다 보니까, 그 안에 숨어 있는 감정, 소통의 왜곡 같은게 더 잘나올거 같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시고 평론가들이 말하면 재밌는데, 사실 과정을 말하면 재미 없지만, 사실이 또 그래요.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면서 거리를 행진하는 것도. 사실은 촬영팀이 묵은 호텔 앞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데모 같은 걸 해요. 그런데 데모를 해도 한국의 데모를 몇 번 봤는데 교통이 마비되고 격정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근데 중경의 데모는 너무 고독한거, 아무 재미없고. 묵묵히...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독하게 혁명 노래를 하든지. 어떻게 보면 연극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연극을 보지 않아요. 그게 참 이상하고. 우리고 거기서 찍고 하니까. 풍경으로 담아냈는데, 중국의 현대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이 풍경 속에서 다 나오죠.



영화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게재.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섹션 1 - 단평

 

 

<그 후>

감독 : 최현영

하교길에서 '선생님께서 교통사고로 위독하니 같이 가줘야 겠다'는 남자는 은수에게 차에 타라고 한다. 선뜻 동행하기에 뭔가 꺼림칙한 은수는 근처 세탁소로 뛰어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은수가 세탁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 그 남자의 차가 골목어귀에서 나와 세탁소 앞에 선다.

이 장면은 모호하다. 세탁소와 납치범 남자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은수의 뒷 모습을 더 잘 관찰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 장면 때문인지 우리는 은수가 집 안에 있을 때에도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 집안 어딘가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여기를 위협하는 외부의 어떤 것. 혹은 나를, 우리에게 위험한 누군가를 상정하는 <그 후>는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통해 지금 사회의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을 담아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들에게도 그저 장미빛 미래 만은 아닌 것이다.

<흩날리는 것들>

감독 : 김현성

붉은 깃발, 거친 바람, 흔들리는 집, '밑 닦으려도 못 쓰는' 산더미 같은 인문학 서적들. 감당 못할 빚 이라는 아버지의 '유산'.

<흩날리는 것들>은 일종의 후일담 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은 그저 미움이 아닌 좀 더 복잡 미묘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아버지로 부터 가난을 물려 받는다. 유일한 유산인 셈인데, 아내는 '그냥 남들 만큼만 살고 싶은게 잘못은 아니'라며 주인공을 채근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잃어버린 10년'의 폐해를 다루는 프로파간다로 오인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간 들었다. '재능있는 젊은 실크 세대로서 386 세대에게 억압 받고 있는' 변희재씨 같은 사람이라면 능히 뽑아내고도 남는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신세계의 유령' Specters of the New World 이다. 주인공의 빈곤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연유한다. 살아서 주인공을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바람소리처럼 세상을 횡행 하면서 주인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이 유령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그를 유령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왼쪽 눈으로만 측량을 하던 주인공이 오른쪽 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눈 앞에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먹먹한 감정을 전해준다. 깃발은 눈 앞에 있지만, 그 깃발은 보이지 않거나, 더이상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쓸쓸하다.

<수진들에게>

감독 : 강연하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일하는 수진에게 하루 하루가 똑같이 지루하다. 진열대 사이를 하이힐을 또각이며지나가는 여자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은 전혀 다른것만 같다. (비정규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의 대규모 인원 감축에 대한 소문이 흉흉하다.

영화는 상영 시간이라는 제한을 둔다. 결국 영화는 함축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수진들에게>는 조금 넘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진이 그 모든 것을 감내하기 어려운것과 거의 비슷하게 영화 역시 그런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은 러닝타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감독이 주인공 수진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 때문인지, 우리가 수진에 대해 조금 더 알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감독의 과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수진들에게>는 동시대에 대한 관심을 두는 감독의 시선이 눈에 띄는 영화다. 감독 자신도 인정 했듯이, '정확하고 깊게 알지 못하는' 동시대의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수진들에게>는 그 한계가 또렷이 보이는 영화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전해지는 작은 위무의 몸짓이 아쉽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곳>

감독 : 김재원

이번 섹션 작품 4 편 중에서 가장 이야기가 탄탄한 작품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식의 결말이지만, 시종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구성된 다른 섹션 작품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혹은 보여주지 못했던 연민의 연대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아주 깔금하고 유쾌하게 제시한다.

특히 <닿을 수 없는 곳>은 인물이 중심이 되는 극영화에 있어서 배우의 얼굴이 가지는 힘을 잘 보여준다. 세 가족이 고시원 한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팍팍한 현실이지만 이 젊은 배우의 얼굴에서 관객은 일말의 희망을 본다. 그건 건강하게 살아있는 누군가를 보게 될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백마디 말 보다 한 번보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마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일견을 권한다.

 

영화 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에 게재.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모범시민, Law Abiding Citizen>

 

 

 

 

<모범시민, Law Abiding Citizen>은 조금 아쉬운 (사실은 김 빠지는) 엔딩만 아니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의 다른 판본으로도 보인다. 배트맨과 조커의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랄까. 사실 배트맨과 조커의 지향점은 다르게 보이지만, 둘 모두 체재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라는 부분을 공유한다. 배트맨의 '자경단' 활동은 체제로서의 법과, 그로 인해 성립되는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말하자면 배트맨이 사회를 지켜내려 하면 할 수록, 배트맨이 바라는 '더 이상 배트맨의 존재가 필요 없는 사회'는 멀어지는 것이다. 배트맨의 검은 가면과 조커의 분칠한 하얀 얼굴은 마치 하비-투 페이스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모범시민>의 주인공은 법 체계로 대표되는 사회의 구조에 집요하게 균열을 가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광기는 마치 중력과 같아서, 약간 밀어주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가속도가 해결한다 (It wasn't hard. You see, madness, as you know, is like gravity. All it takes is a little push! '는 명언은 이 영화에도 거의 유사하게 적용된다. '그럼 이 미친 사이코 킬러를 보석으로 내 보내자는 말을 지금 당신이 하고 있다는 건데, 당신 제정신인가?'라며 판사에게 일갈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묘한 쾌감을 준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좀 더 끝까지 밀어붙여 주기를 바랬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성공하지 못했던, 혹은 놀다 지친 어린아이가 놀이를 갑자기 중단 해버린 것 같은 지점에서 더 나아가 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역시 대중영화라는 한계가 있는 것인지, 영화가 쌓아두었던 미덕들을 마지막에 너무 쉽게 놓아버린다.

정말 조금만, 아주 조금만, 'little push' 해 줬다면 굉장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빛은 노래하고 어둠은 춤춘다.



빛은 노래하고, 어둠은 춤춘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곳에, 너는 없다. 너는 없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너는 부재하는데 나는 여기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길게 늘어진 시소의 끝에
앉아 있다.  너는 그 끝에, 멀고 먼 그곳에 정말로 있을 것이다.  내가 내려가면
너는 올라간다. 내가 사라지면 너는 나타난다. 네가 퇴장하고,  나는 등장한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의 등불을 끈다. 그리고 다시 켠다. 우리는 아주 먼 길을 돌
아서 결국엔 만날 것이다. 라고 쓴다.  쓰는 것 만으로 나는 너를 만날 수 없다.
그것을 나는 안다. 침묵하자. 침묵 속에서 나는 너를 꿈꾸고  생각하고  만지고
돌아선다. 그리고.

세상은 발 밑에서 공전을 한다. 나는 이 곳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끊임없이
길이 나에게로 흘러들어와  잠시 머무르고, 그리고 다시 떠난다. 하늘과 바람과
시간이 지나간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달이 둥실 떠 오른
다. 바다위에 또는 검은 물 위에 묶여있던 붉은 달이 둥실, 떠 오른다.

그리고 네가 눈을 뜬다.

어둠을 보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눈을 감는 자 만이 꿈을 꾼다. 나는 너를 간
절히 꿈꾸기 위해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을 보는 것
임을, 나는 조금씩 깨달아 간다. 꿈 속에서 빛이 노래하고 어둠이 춤을 춘다.나는
편지를 쓴다. 너도 편지를 쓴다. 너는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여 연필을 깍는다. 사
각 사각 사각. 너의 세상에 눈이 내린다. 온통 고요하다. 침묵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다.  라고 적는다.  나는 너를 본다. 너는 아주 희미하고 얇아진 채로, 아직 그
곳에 있다. 그것을 나는 안다. 아주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문장을 천천히, 쓴다.


어느 유년의 시간에
네가 불었던 휘파람 소리가 아주 먼 길을 돌아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유년의 어둠을 밝힐 것이다.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풍자와 여유

'이런 때 너는 그런 말이 나오냐?'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몇 번 있다. 남들 심각한데 혼자 여유있는 것 같아서 재수 없고 기분 나쁘다는 소리도 들어봤다. (다른이의 시선으로 보기에) 눈치 없는 행동을 했었다는 것.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통 데이고도, 나는 아직도 풍자와 유머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쪽이다. 너무 심각하게 사태를 보다가 진짜로 봐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결국엔 사태를 더 악화 시킬 수도 있다.

얼마전에 꽤 재미있게 봤던 <도서관 전쟁>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작품 속에는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것이 나온다. 그 내용은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을 (사전) 감독'하는 법안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어쩌면 한나라당 의원중에 NT 노블의 열혈 독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작품속에서 '양화대'(일종의 검열단)의 무력 검열에 대항해서 '도서대'라는 단체가 맞선다. 한 마디로, 책을 지키기위해 무장도 불사한 단체다. 좀 뭔가 SF적인 느낌이 드는 설정이지만, 그게 묘하게 현실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다. 중간의 에피소드를 보면, 미디어 양화법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는데 그 중에 한 작품이 양화대를 풍자하는 (사실은 조롱하는) 내용의 설치 작품이라는 이유로, 전시회의 폐쇄와 작품의 철거를 양화대가 요구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서대와 양화대는 일전을 불사하게 된다. (실제로 총과 수류탄으로 전투를 벌인다.)

지금 광주에서는 그야말로 '소설같은 일', '만화같은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4 대강 사업을 풍자한 내용의 '삽질 공화국'이라는 설치 작품을 철거 할 것을 무려 국정원에서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철거이유는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일은 이명박이 광주에 들르기로 한 전날 벌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이명박이 들렀던 하루만 전시가 중단되었고, 다시 전시가 재개된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카께서 보시지 못하도록 눈가리고 아웅한 꼴이 된 것이다.

도대체 그깟 삽 한자루가 해칠 수 있는 공공의 질서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우연히라도 가카께서 친히 관람하시고 격노 하시어 미술관에서 깽판을 부리는 바람에 다른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까봐 ? 까짓거 웃고 넘어가도 될 일이다. 풍자는 풍자일 뿐. 그게 대인배의 풍모에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도 밑에서 알아서 설설 기느라 대한민국 전국토가 다 깨끗해질 노릇이다. 얼마나 닦아 댔으면.

점쟁이 노릇 함 해 볼까? 저 삽자루 공화국의 작가는, 앞으로 전시회는 커녕, 어디서 강사자리 하나 얻기도 힘들 것이라는 것에 백원건다. 쫄리면 뒤지시던가.

p.s 근데 웃긴게 이명박이 화를 내면 조중동은 꼭 '격노'라는 표현을 선택한다. 꼭 무슨 서로 약속하고 'MB 정권 표준 기사 규약'이라도 지키는 것 같다. 격노는 무슨 격노야. 지가 무슨 왕이야. 웃겨죽겠다.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091205
















iPhone으로 찍은 첫 사진들. 사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다는 건 그저 부가기능이고, 별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전에 쓰던 모토로라 MS500의 화질이 별로라 그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맘으로 핸드폰과 사진찍기의 기능을 별개로 생각했다.

오늘 하늘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iPhone 개통기념으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찍어 봤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괜찮다. 가방에는 Canon G10 이 있었는데도 연신 iPhone으로만 찍어댔다. 사실 좀 당혹스럽니다. 허허.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해도 너무한다.

 


한명숙 전 총리 금품 수수 혐의

공성진 백억 수수 어쩌는것도 달러로 바꾸면 천만달러다 이 씹숑구리들아. 노무현 잡아 족칠 때 달러 표기로 재미 보더니, 니들 편은 원화고 니편 아닌 사람들은 달러표기냐 ? 무슨 외환 관리법 위반 혐의까지 씌우고 싶은거냐 ? 사람 병신 만드는것도 가지가지다. 그러고서는 '아니면 말고'? 씨바, 너들이 그렇게 공부하면서 어려운 시험 통과한 이유가 고까짓 시정잡배 호로새끼들보다 더 못한 짓거리 하려고 그 세월을 보낸거냐? 고작 한다는 짓이 이명박이 좆대가리 빠는 짓이냐 ? 너를 키운 부모가 불쌍하고 니들 인생이 불쌍하다. 자식도 낳지 말고 그냥 죽어버려라. 개자슥들.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대한민국 대표 듣보잡' 변희재와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

 


옴니아2·아이폰으로 정부 정책 홍보 추진

'대한민국 대표 듣보잡' 변희재와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 이라고 제목을 잡아놓고 보니까 살짝 찌라시 느낌도 난다. 그런데 위에 링크한 기사를 보고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놈들은 화제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미는구나.' 다시 말하지만, '개새끼들'이 오줌 갈기면서 영역 표시하는거랑 똑같다. 남들 다하고 화제가 된다니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니까. '나도, 나도!' 하면서 뭣도 모르고 일단 이름부터 걸고 보는거다.

분명히 누군가 요즘 스마트 폰이 화제고, 앱스토어라는 것이 있으니까 거기 공짜로 어플을 올려서 손하나 까닥 안 하고 홍보하면 되겠다고 기안을 올렸을 것이다. (이미 애플 앱스토어에는 가카의 자서전이 E-Book 형태로 등록 되어 있다.) 그 개발자는 그냥 눈먼 돈을 꿀걱하는 거고. 정부는 왠지 뿌듯하게 홍보 한거 같고. 누이좋고 매부 좋고. 다운로드를 얼마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공허하게 떠들기만 한다고 홍보가 될거라고 믿는 놈들도 웃기고, 그걸로 돈좀 받아내 보겠다고 아이디어라고 올리는 놈들도 웃기다.

'시장 경쟁 주의'를 모토로 내세우는 놈들이 소비자가 어떤것을 좋아할지, 스마트폰이 가져오는 모바일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부도 없이 그저 정부에서 하는 일이니까라는 식으로 공무원적인 케케묵은 마인드로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것도 웃기고, 남들 다 하는일에 손가락 하나 얹어서 무임승차하는 파렴치함을 보면 이건 변듣보 이상이다. 그냥 유치한거고 멍청한거다. 이렇게 끝을 보여주는데도 그걸 나랏님이라고 받드는 인간들도 있는거고. 물론 그건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답답한건 답답한거다.

그건 그렇고 '진중권 연관 검색'어 분께서는 진중권이 필리핀으로 뜨면 또 심심해서 누굴 물고 늘어지나, 사회적인 명망도 그렇고, 파괴력도 그렇고, 같이 묻어갈 만한 사람이 없는데. 아, 방법이 있구나. 대통령을 까는거다. 그럼 확실한 연관검색어 1 위가 될텐데. 그렇게라도 묻어가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니.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새로운 5 월의 노래


누굴 위한 추모곡이냐…‘5월의 노래’ 공모

자세한 내용은 기사 링크를 참조. 기사를 읽고 한 줄 감상. : "이 정부는 개칠만 하다 끝나겠군" 

p.s 1. 우측통행 시행. 선진국형 보행이다 어쩌다 하지만, 생활과 몸의 패턴을 바꿔서까지 좌익적 사고와 행동의 싹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속셈이다. 얼마전에는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빨간 모자에 가슴엔 뭔지 모를 뱃지를 단 할아버님께 우측 통행 하라고 멱살잡이까지 당할 뻔 했다. 노인네 기운도 좋더라. 뭔 악력이 그리 세신지. 굳이 우측으로 끌고 가던데. 아 씨바 할 말 없었음.

p.s 2. 전 정권이 그리 미우면 그들보다 일을 잘 해서 국민들 눈에 들어야지 모조리 '무효'만 외친다고 될 일도 없고, 그거 하다 시간 간다니깐.

p.s 3. 딱 이놈들 하는 짓 보면 일제가 산마다 쇠 기둥 박아대고, 창씨개명하던 것이 생각난다. 다를게 없다. 치졸하고 교활하다. 그리고 씨바 병맛이다. 아주 지랄 육갑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