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1일 일요일
<사람의 곳으로부터> - 김수박
김수박의 책은 그림이 참 좋다. 손으로 부들부들 그린 것 처럼 묘하게 일그러진 인물들의 모습에 정감이 간다. 내용도 그렇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싸우고 헤어지고 기어코 다시 만나는. 그러니까, 만남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마주치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김수박의 책에 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눈물을 흘리거나 울컥하거나 그저 아무말 없이 잠시 책을 덮게 되기도 한다. 김수박의 책은 촉촉하고 애닯다. 아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 이렇게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버리면 안되는데. 하지만 또 한 켠에서는 정말 아프게 살지 말자. 마음 단단히 먹고 입 꾹 다물고 살자. 나는 절대로 이렇게 아프게 살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을 다져 보지만, 또 그것이 마음대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김수박은 보여준다. 정말, 좀 고약하다.
작품
사람의 곳으로부터
아날로그맨 1
수박 씨의 유쾌한 이별 공식 오늘까지만 사랑해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영진위 공모결과를 보면서

이야기 하나. 그러니까 1980년이었던가? 81년도였던가. 당시 대입 예비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140점 정도를 획득한 학생 하나가 서울법대에 입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 서울법대의 커트라인이 310점 선이었음을 감안할 때 경천지동할 일이었지만, 이는 그해 서울법대가 ‘미달’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그때마다 이 친구는 “남들은 비웃지만, 보란 듯이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패스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입학 6개월을 못 넘기고 그는 자퇴하고 말았다. 법학서적 한 페이지를 보기 위해 일일이 옥편을 찾아봐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 없이 일시적 요행과 기회의 결합으로 이룬 성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상누각이다.
이야기 둘. 월스트리트의 컨설턴트들 사이에서는 소위 ‘그릇론’이라는 게 존재한다. 여기서 그릇은 사람의 도량, 능력을 의미한다. 즉 입사해 1~2년이 지나면 그 사람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결정 난다는 것이고 이는 거의 정확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3년이 지나서도 복사기 앞에 서있을 사람과 자기 방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맞을 사람은 의외로 쉽게 판가름 났다. 창조적 마인드와 긍정적 태도와 그것을 지탱하는 기본기를 갖췄느냐에 의해서. 예컨대, 매출 10억도 못 일군 소기업 사장에게 1,000억짜리 회사의 경영을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생각처럼 자리를 보전하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규모가 다르고 생각의 폭이 다르며, 의사결정과정의 프로세서가 다른 집단에 적응하고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미 그는 10억 이하의 규모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충실한 기본기이다. 경영자의 자세와 태도와, 무엇보다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기업윤리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야기 셋. ‘월든’ 호숫가로 떠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 개의 의자를 만든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또 하나는 ‘친구’를 위해 나머지 하나는 ‘사교’를 위해서였다. 의자란 권력의 상징인 동시에 근대화의 산물이다. 사람마다 자기 자리가 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라고 할 때의 자리는 자기 의자를 말한다. 적어도 학생 때는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자리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 자리가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는 반면, 애초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또 어떤 이는 높고 크고 화려한 의자만을 꿈꾼다가 평생 제대로 된 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때 의자는 권력을 상징한다.
이야기 넷.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의 공모 결과가 나왔다. 기존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선정된 단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기세다. 사전내정설이니 설립된 지 며칠 안 된 단체에 특혜를 주었느니, 갖은 이야기가 난무한다. 특히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단체의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전용관 사업은 우리가 설사 대상자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계속 꾸준히 추진해나갈 사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꾸로 묻고 싶다. 그렇다면 왜 2009년에 들어와서야 단체를 결성했는지,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인지를 말이다. 진심과 속내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새로 선정된 단체에게 축하를 보낼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드시 실패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옥편을 찾는 일조차 버거워 자퇴한 서울법대생이나 자기 분수와 능력을 무시하고 덥석 받아든 밥그릇이 될 것만 같아서, 10년 설움을 한 방에 떨쳐내고자 발버둥친 결과로 얻은 ‘임자가 따로 없는 회전의자’에 앉은 자들의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아서 씁쓸할 따름이다. 스스로 그릇을 빚지 못한 기본이 부실한 자들이, 분에 넘치는 의자에 앉아 전리품에 넋을 잃고 있을 동안, 이 땅의 독립영화와 영상문화가 부잣집 서재의 감사패처럼 생색과 진열대상으로 전락할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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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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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Apple, iPad 공개하다.

Apple의 iPad가 출시 되었다. 반응은 말 그대로 각양 각색이다. '덩치만 큰 사진틀은 무의미하다!'는 반응부터 출시만 되면 바로 구입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론 스티브 잡스가 앞날을 내다 본 사전포석의 의미로 보고있다. iPad의 개발은 iTunes Store를 기반으로 하는 iPod 제품군과 iPhone의 세계적인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iPad는 그저 신기한 휴대용 기기가 아니다. 컨텐츠 유통 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 마치 음반시장 다음은 미디어 시장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iPad 발표에 맞춰서 iWork의 새 버전이 출시될 예정이라는데, iPad의 터치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키노트 조작의 변화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가령 지금 처럼 키노트 작성시에 각종 효과를 넣어서 단순히 클릭으로 다음 페이지나 효과를 전시하는 것이 아닌, 발표자가 iPad를 손에 들고 도표나 그림, 문자를 터치로 조작하고 발표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료 컨텐츠 시장에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아직은 부족한 한국 시장에서 iPad가 얼마나 어필하게 될지는 조금 미지수이지만, 애플 제품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iPad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어륀지를 어륀지라 하지 못하고..
그렇다. '어륀지'로 유명하신 이경숙 총장께서는 자신의 고매함에 반기를 드는 인간들을 용납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 라며 자신의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출 것을 친절하게도 주문하셨던 것 처럼. 길게 쓰기 싫다.
아 씨발 좆같은 색히들 !!! 이런게 당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라니 !
교대조가 아닌 점령군
문제점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된다.
공모제. 그것 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이른바 '경쟁력'으로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운영해 오면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이가 선정되어서 운영하면 되는 문제이니까. 그런데
1. '(사)시민영상문화기구' 라는 단체가 결성된지 1 달도 되지 않았다는 점
2. 결성 기간을 문제삼지 않더라도,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관련 사업운영주체 공모의 자격에 맞는 인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3. 운영주체 결정이 나기 무섭게 (사)시민영상문화기구 측은 얼굴마담에 불과한 이사장 장원재가 물러나고 독립영화 한 편도 만들지 않은 자칭 '독립영화 감독' 최공재를 이사장 자리에 앉힘.
이 세가지만 보아도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액트가 지금까지 벌여온 일들을 '좌파적 세계관'으로 규정하고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 하려는 것. 좌측통행을 폐지하고 안내하는 사람을 둬서까지 강제적으로 우측통행을 강요하는 것 처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 규탄] 진흥기구 역할을 포기한 영진위를 규탄한다!
[성명서]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운영자 선정,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정인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권리를 침해하는 영진위의 결정을 규탄한다!
진흥기구로서 역할을 포기한 영진위를 규탄한다!!
문의) 허경(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상임활동가) 010-6822-0038 , reunion10@gmail.com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10년 1월 25일,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영진위는 기존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운영스탭들과 영상미디어센터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를 탈락시키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했습니다.
3.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의 주요 구성원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기존 운영진들은 다년간의 운영경험을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로부터 강한 신뢰와 지지를 받아 왔으며, 국내 최초의 공공영상미디어센터로써 이후 설립된 다양한 지역공공영상미디어센터의 모델이 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사에서 탈락시킨 영진위의 결정을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특히, 이번에 선정된 사업운영자가 미디어교육 활성화, 퍼블릭액세스 확대, 독립영화 활성화와 다양한 영상제작주체의 양성 등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목표에 부합한 활동과 관련한 어떤 사회적 인지도도 확보하지 못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사실은 영진위의 결정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5. 이에 우리는 영상미디어분야의 새로운 공공서비스 영역인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의 성과를 훼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권리의 침해한 영진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6. 성명서를 다음과 같이 첨부하오니 많은 관심과 취재 및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 다 음 -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운영자 선정,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정인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권리를 침해하는 영진위의 결정을 규탄한다!
진흥기구로서 역할을 포기한 영진위를 규탄한다!!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 이하, 영진위)는 2010년 1월 25일,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8년여 동안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이하 미디액트)를 운영해온 운영진들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를 탈락시키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한 것은 이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많은 이들의 상식적인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영진위의 이번 결정은 새로운 공공서비스사업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이다.
현재 전국 각지 30여개소에서 운영되거나 개관예정인 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접근권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신장을 위한 새로운 공공서비스모델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공공서비스 기관이다.
미디액트는 이중 최초의 영상미디어센터로서 지난 운영기간 동안 높은 이용실적 만들었으며 수강생 등 이용자들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매우 우수한 공공서비스모델로 평가받아 왔다. 또한 영상미디어센터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설립 및 운영 컨설팅 사업까지 위탁 수행하는 등 그 전문성과 탁월한 행정력 및 네트워킹 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아왔다.
이러한 미디액트의 운영진과 전국의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가 이사회를 구성하여 서울시로 부터 승인받아 설립된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가 이번 선정에서 탈락된 것은 그 자체로 납득할 수 없으며, 최종결정을 내린 영진위의 선정기준 뿐만 아니라 결정의 의도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영진위는 이번 결정이 지난 8년여 동안 축적된 유무형의 소중한 성과를 하루아침에 무로 돌리는 매우 불합리하고 정치적인 것이었음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영진위의 이번 결정은 시민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운영자 선정 시 고려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의 입장이다.
절차적으로는 사업자 재선정 과정에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내용적으로는 영상미디어센터 사업목표의 지속성, 즉 이용자들의 미디어 접근권 등 커뮤니케이션 권리 신장을 위한 역할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즉 이번 영진위의 결정은 이용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공서비스사업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영진위의 2009년 말 갑작스런 사업운영자 재공모 방침은 각계각층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준비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미디어교육, 장비대여, 공간대여 등 일상 사업의 중단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수많은 이용자(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업운영자로 선정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는 미디어교육 활성화, 퍼블릭액세스 확대, 다양한 상영기회 제공, 독립영화 활성화 및 다양한 영상제작주체양성 등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어떤 활동의 영역에서도 그 흔적과 자취를 찾을 수 없으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도 단 한번 마주친적 없다. 심지어 이 단체의 설립일이 사업운영자 재공모 신청기간인 2010년 1월 15일 직전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영진위 결정의 저의가 무엇인지 더욱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이 단체가 향후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목표와 부합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의 단서는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사업 차질의 피해역시 온전히 기존 이용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영진위의 이번 결정은 스스로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으로부터의 서비스를 받아야할 국민의 권리를 아주 구체적으로 침해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영진위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 결정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며 이 결정이 가지는 의미를 영진위가 명확하게 인식하길 바란다.
또한 지난 8년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의 축적된 성과를 단숨에 훼손함과 동시에 미디어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훼손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영진위에 있음을 밝히면서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 영진위는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 결과를 전면 백지화하라!
- 영진위는 비합리적이고 몰상식적인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선정 과정에 대해 사죄하라!
- 영진위는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의 정상화 대책을 마련하라!
2010년 1월 27일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강릉: 강릉씨네마떼끄, 강릉시민영상제작단, 강릉공공미디어센터설립추진협의회(준) / 고양: 어린이청소년을위한멀티미디어센터 <도토리미디어 사랑방> / 광주: 광주전남미디어주권네트워크(광주전남문화연대,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자치21, 광주여성민우회광주환경운동연합, 광주여성의전화, 전남대미디어교육센터, 광주영상미디어센터, 광주전남미디어행동연대, 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 광주흥사단), 열린미디어연대, 호남노동미디어활동단 <필>, 광주전남민언련 영상분과 / 대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설립준비위원회 (대구독립영화협회, 교육영상기획 <노동자의 눈>,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대구지회), 대구 영상공동체 <이후> / 대전: 대전미디어센터설립추진위원회(대전독립영화협회, 대전충남민언련, 대전참교육영상집단, 시네마떼끄대전) / 마산창원: 시청자주권을위한경남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톨릭여성회관, 경남민언련, 경남여성회,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여성다큐<고함&g! t;,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창원여성의전화, 마창진참여연대, 참여자치연대, 환경련, 민주노총마창지부, 마창여성노동자회, 일여성예술, 전교조마산지회, 참교육학부모회, 진해여성의전화, 살류쥬, 경남한살림)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 / 부산: 부산시청자주권협의회, 부산독립영화협회 / 부안: 부안영화제 조직위원회, 부안생태문화활력소 / 부천: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꾸마> / 서울: 관악미디어공동체<동동>, 공동체라디오 운동연구집단<씨알>, 민중언론 참세상,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은평시민넷 / 성남: 성남영상미디어공동체 늘봄 / 울산: 민주노총울산본부, 울산노동뉴스, 울산정보미디어공동체(울산노동뉴스, 노동 자정보통신지원단, 공동체라디오추진위, 울산노동미디어네트워크), 울산미디어연대(울산청년회, 울산여성회, 울산여성의 전화,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함께>, 민예총 울산지회, 문화예술센터<결>, 영상집단<아리랑>, SK노조) / 원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원주지부영상사진갈래위원회, 원주청년회미디어동아리<바름소리> / 익산 : 영상바투 / 인천: 인천미디어운동네트워크[준] / 전주: 전주시�! 菅絹助底씽�<영시미>, 퍼블릭액세스실현을위한전북네트워크(전북민주 언론운동시민연합, 시민행동21, 전북여성단체연합,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전주시민회, 민주노총전북본부, 전농전북도연맹, 전북시민운동연합, 전북환경운동연합, 전주경실련,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인터넷대안신문<참소리>, 전북독립영화협회) / 진주: 진주시민미디어센터 / 천안: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영상미디어정보센터 / 청주: (사)충북민예총 영화위원회, 씨네오딧세이, (사)충북민주언론 운동시민연합
※ 아래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공개 질의서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에 대한 공개 질의서
1. 귀 위원회는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변경을 위한 공모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기존 사업운영자의 변경’이라는 정책적 판단의 근거는 적절한 평가지표를 근거로 기존 사업내용 및 사업주체에 대한 철저한 평가 및 분석을 통해 도출되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에 질의합니다.
1) 현재 운영주체(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현 소장 이하, 스탭)에 대한 귀 위원회의 평가 또는 입장은 무엇입니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사전작업 없이 공모과정을 진행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를 선정하기 위한 심사위원 구성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해당 사업 목표의 구현을 위한 다양한 활동 관련 전문가의 균형적 안배입니다. 즉,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실무, 미디어교육, 퍼블릭액세스, 시민미디어정책, 영상장비, 독립영화 등에 대한 전문성이 검증된 인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귀 위원회가 구성한 심사위원들은 각 위원별로 어느 영역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습니까?
3. 귀 위원회는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사업목표 구현을 위한 사업 수행실적은 어디에서도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2010년 1월 26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의 보도를 통해 귀 위원회가 선정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는 설립한지 한 달이 되지 않는 신생단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질의합니다.
1) 귀 위원회는 심사총평에서 (사)시민영상문화기구의 사무국 구성이 끝난 것으로 밝히고 있는 바, 구성된 사무국원은 미디어교육, 퍼블릭액세스, 독립영화, 미디어정책, 영상장비 등 영상미디어센터 관련 어떤 활동의 경험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습니까?
2) 귀 위원회가 발표한 심사총평의 내용은 선정단체인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의 기존 사업내용 및 향후 사업계획에 비해 어떤 경쟁력을 지니는 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한 근거 및 구체적 변별점은 가 무엇입니까?
3) 영화예술강사협의회의 온라인 까페의 게시물(별첨)을 통해 (사)시민영상문화기구에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스탭의 채용모집 공고 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내용을 보면 채용 확정일을 2010년 2월 3일로 하고 있는 바, 이는 변경된 사업운영자가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을 새롭게 시작하는 2010년 2월 1일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귀 위원회가 밝힌 심사총평 중 ‘사무국 구성원의 전공분야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음’이라는 선정근거와 불일치하게 되는 바. 이는 선정취소 사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까?
2010년 1월 27일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 심사 발표에 대한 미디액트 스탭들의 입장
- 영진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 심사 발표에 대한 미디액트 스탭들의 입장 -
27일(수)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스텝들은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운영자 공모 심사 선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즉각적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8년 동안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온 미디액트 스탭들은 2010년 1월 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미디액트 스텝들은 영진위의 공모 심사 결과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며 영진위 공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아래 미디액트 스텝 입장 전문
납득할 수 없는 영상미디어센터 공모 선정!
영화진흥위원회의 즉각적 사과와 철회를 요구한다!
-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 심사 발표에 대한 미디액트 스탭들의 입장 -
미디액트 스탭들은 영화진흥위윈회(위원장 조희문, 이하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사업을 (사)한국독립영화협회로부터 위탁받아 지난 2002년부터 설립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2009년 말 재계약을 앞두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미디어센터 사업의 운영 주체를 공모제를 통해 다시 선정함에 따라 지금까지 미디액트를 운영해온 현 운영진이 탈락하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이사장 장원재)라는 단체가 새로운 운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 결과에 따라 지난 8년 동안 열정적으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온 미디액트 스탭들은 2010년 1월 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 공간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번 영진위의 어이없는 공모 심사 결과에 대해 미디액트 스탭 일동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독립영화 활성화, 영상미디어교육의 근거지, 지역미디어센터 설립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문화기반시설로서, 그동안 미디어교육, 창작지원, 정책 개발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특히 미디액트 스탭 전원은 국내 최초의 공공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시민영상제작 양성을 위한 상설강좌 및 장비 대여, 공공미디어 정책 연구 및 네트워크 활동 등을 전문적으로, 선도적으로 이끌어왔다고 자부합니다.
미디액트는 그동안 많은 성과를 쌓아왔습니다.
미디액트가 선도적으로 실시한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사업’은 장애인, 노인, 이주민 등 미디어에서 소외되어왔던 계층들에 대한 미디어교육을 확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다양한 창작지원사업은 각종 교육사업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으며, 이용자수와 교육참여자수는 지난 8년 동안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총 923종의 강좌가 진행되었으며 개설강좌 중 40% 이상이 항상 신규강의로 채워졌고, 만족도, 강좌 추천율의 증가도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해마다 2천명 이상의 수강생이 배출되면서 미디액트는 새로운 콘텐츠 제작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전국적으로 22개소의 미디어센터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공공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확장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에 따라 미디액트는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남미 등에서도 독립영화와 시민 미디어 창작을 활성화하는 모범적인 모델로 평가되어 왔으며 각국 미디어 연구자 및 관련 분야 종사자의 연구 대상이자 교본으로서 인정받아 온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부터 영진위와 문광부를 통해 제안된 '공모제'는 시작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존의 미디어센터 활동에 대해 아무런 부정적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불거져 나온 공모제였기에 현 운영주체를 쫓아내기 위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컸습니다. 더욱이 운영 주체인 미디액트에 대해 진행된 지난 여름의 감사원 감사는 아무런 지적사항 없음으로 결론났고 그 결과 미디액트 현 운영진들의 행정력 또한 객관적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이렇듯 감사 결과 아무런 지적 사항도 없었고, 다년간의 운영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데다 이용자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었던, 저희 센터 이용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 문제없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디액트의 운영주체가 교체될 수도 있는 공모제의 도입은 누가 보아도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2000년부터 미디어센터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영진위와 문광부를 설득해 미디액트를 개관, 8년 동안 미디어센터를 풍성하고 튼실하게 가꿔온 미디액트 스탭들의 입장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공모제를 통해 운영 주체를 다시 뽑겠다고 하는 영진위의 처사는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영진위의 공모제 추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미디액트 스탭들은 비록 공모에 동의할 수는 없으나,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 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위한 최적화된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 공모제 도입에 대응하였습니다. 2009년 하반기부터 미디액트 스탭들은 구체적인 공모 준비에 들어갔고, 그 결과 다양한 이사진이 포진하고 지역 미디어센터 스탭 및 미디어교육 전문가, 독립영화 제작자들을 총망라하는 새로운 법인 '영상미디어교육협회'를 설립하여 서울시로부터 승인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8년 간의 활동을 냉정히 돌아보고 평가하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걸맞는 장기적 전망과 비전을 세우고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모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나왔습니다. 이번 공모 과정 및 그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두 차례의 심사 과정에서 미디액트의 사업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여전히 제기된 바 없었습니다. 또한 재공모 심사 당시에는 심사위원들의 질의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미디액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이나 질문은 제기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지적이나 평가조차 없이 무조건 교체가 전제되는 상황, 이것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공모 과정의 실체였습니다.
사업운영자로 선정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는 재공모 공지(2010년 1월 12일)가 나기 6일 전인 2010년 1월 6일에 설립되었으며, 그 이전에 미디어센터와 연관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미디어센터 운영 및 관련분야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새로운 운영진이 당장 2월부터 미디어센터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고, 그 설립의도를 제대로 살려 운영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8년 동안 미디어센터를 이용하고 아껴온 분들과 함께 호흡하고 관계 맺으며, 미디액트 운영진인 저희 또한 함께 성장할 수 있었기에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저희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디액트 스탭으로서 저희는 8년 동안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내온 이 공간, 그리고 가족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 만나온 회원들과 헤어져야 하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미디액트 스탭 일동은 영진위가 내린 심사 결과가 8년 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어이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진위의 이번 결정은 진흥기구로서의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그간의 성과를 후퇴시키는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선택입니다. 이에 모든 사태에 대해 영진위가 책임을 지고, 하루 빨리 이런 불합리한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영진위는 이번 파행적 결정에 대해 영상미디어센터를 이용하는 회원들과 참여자들, 운영진에 깊이 사과하고 영상미디어센터를 정상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관광부 역시 영진위의 감독기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시정조치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미디액트 스탭 일동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영상미디어센터를 이용하고 사랑했던 여러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책임있게 함께 할 것입니다. 미디액트 스탭들은 앞으로도 여러분의 지지와 연대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손잡고 가겠습니다. 상황은 비록 어렵고 암울하지만 저희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스탭 일동
○ 참조 : 2010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 경과
2009년 11월 20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
2009년 11월 27 ~ 12월 04일 (7일간)
지원신청 접수 / 현 운영진이 포함된 (사)영상미디어교육협회 공모 신청
2009년 12월 16일 공모 심사
1차 공모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 김창유
연출제작 / 김창유 / 용인대 영화과 교수, 위원회 전위원, 영화전공 교수
제작 / 전영문 /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피디조합 정책위원장
제작 / 노종윤 / 노비스대표, 제작경험 다수
콘텐츠 / 정연희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팀장, 미디어센터 평가업무 유경험
학계 / 장민종 / 서경대학교, 영화전공 교수
2009년 12월 22일 1차 공모 심사 발표 “적정단체 없음으로 재공모”
2010년 01월 12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운영자 선정 재공모 공지
2010년 01월 15일 ~ 21일(5일간)
지원신청 접수 / 현 운영진이 포함된 (사)영상미디어교육협회 공모 신청
2010년 01월 22일 공모 심사
2차 공모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 복환모
정초신 / 영화감독, 영진위 부위원장, ‘몽정기’ 등 연출
육정학 / 영남외대 교수, 방송영화제작 PD 역임. ‘매스미디어 시대의 영화연구’등 저술 등
복환모 / 호남대 교수, 학생처장, 다매체영상학 강의
김시무 / 영화평론가, 월간 비디오무비 기자 및 편집장 역임. PAF비평상 수상(공연과예술)
이승환 / 목원대 교수, 영화영상학부 교수
2010년 01월 25일 최종 심사 결과 ‘(사)시민영상문화기구’로 선정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보도자료
수신 : 각 언론사 미디어 담당 기자
발신 :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제목 : [취재요청]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문의 : 허경(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010-6822-0038 reunion10@gmail.com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10년 1월 25일,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영진위는 기존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운영스텝들과 영상미디어센터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를 탈락시키고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선정했습니다.
3.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의 주요 구성원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기존 운영진들은 다년간의 운영 경험을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로부터 강한 신뢰와 지지를 받아 왔으며, 국내 최초의 공공영상미디어센터로써 이후 설립된 다양한 지역공공영상미디어센터의 모델이 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사에서 탈락시킨 영진위의 결정을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특히 이번에 선정된 사업자가 미디어교육 활성화, 퍼블릭액세스 확대, 독립영화 활성화와 다양한 영상제작주체의 양성 등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목표에 부합한 활동과 관련한 어떤 사회적 인지도도 확보하지 못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사실은 영진위의 결정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5. 이에 우리는 영상미디어분야의 새로운 공공서비스 영역인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의 성과를 훼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침해를 초래할 영진위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심사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6. 또한 당 기자회견에는 기존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수강생 및 이용자들도 함께 할 예정이오니 다음의 행사개요를 참고하시어 많은 취재와 보도 부탁드립니다.
- 다음 -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일시: 2010년 1월 27일(수) 오전 11시
장소: 영화진흥위원회 앞
주최: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참여: 언론미디어운동단체 관계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수강생 및 이용자
- 순서 -
개회
경과보고
자유 발언 및 연대 발언
기자회견문 낭독
질의응답
공개질의서 전달(예정)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불신지옥
명동에 나가면 사람이 많다. 요즘엔 일본인도 많다. 중국인도 좀 보이는 것 같다. 선교 방법의 진화. 요즘엔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노래부르고 설교하는 교인들도 보인다.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배려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내가 여행객이라면 떠나온 곳에서 모국어로 설교를 들으면 그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냥 좀 웃기다. 날도 추운데 비닐로 작은 집을 만들어 들어가서는 삼삼 오오, 혹은 혼자서 좋다고 노래부르고 설교한다. 밖에 세워진 푯말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쓰여 있다. 발로 한대 걷어차고 싶다. 간신히 참았다. 왜 너희들의 두려움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가하려 하느냐. 왜 너희들의 불안을 전염시키려 하느냐. 예수가 시키더냐 ? 안 그래도 모난 성격이 가끔 뾰족해진다.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Naked] 1993, Mike Leigh

만약에 <네이키드>가 무시무시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이제는 곧 끝나버릴) 세기말의 풍경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재를 영화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40 살 까지, 혹은 40 살이 되는 해에 자살을 해 버릴 것이라고 선언하는 '제레미 G 스마트'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 때까지 자신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끝장이 나 버린 세계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죠니의 장광설, 기막히게도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내 다가가고 말들을 토해내고, 키스를 하고, 머리칼을 쥐어뜯고, 위협적인 섹스의 전조를 울리고, 그리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부유하는 현재의 그림자를 본다. 어두운 거리를 떠돌면서 악다구니를 지르던 꿈을 꾼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때의 당혹감.
- 그런데 이 영화의 라스트 씬은 기막히게 아름답다. 다친 발을 이끌고 마치 춤을 추듯 도망치는 죠니를 이끄는 카메라는 스산한 겨울 오후의 햇빛 속에서 조금씩 경계가 사라지는 풍경을 잡아낸다. 조금 더, 조금 더 길게, 계속해서 죠니의 여정을 보여주길 원했지만, 영화는 끝이 난다. 무심하고 냉정하게.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 [여행] 상영 후 배창호 감독과의 대화
<여행> 마음의 자리를 찾는 여정
영
화 상영 전 배창호 감독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예전에 이 자리에서 제 전작 전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만들면 여기서 제일 먼저
틀어보고 싶다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그 말을 지키게 되어서 기쁘다"는 인사를
남겼다. 관객 중에는 봉준호, 전계수, 정윤철 등 많은 젊은 감독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의 프리미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간략하게 옮긴다.

김
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하 김): 이 영화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주도를 삼다도라고
하는데 그 세 가지가 각각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영화를 구성하면서 어떻게 세편의 에피소드를
구성하셨는지요.
배창호 (이하 배) : 제가 이 작품은 지난 한 해 동안 만들었는데, 3 월에 영화사
측에서 한국의 자연이 소개되는 영화를 원하는 대로, 예산이 크지 않더라도 만들어보는 것을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가뜩이나 자연을 영화 속에 넣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좋다 싫다 따져볼 여지도 없이 그러자고 했죠. 그리고 상의 끝에 제주도로
결정이 되었는데, 전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아주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졌고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스토리 구상 없이 다큐멘터리로 갈까 하다가 11월 까지 영화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제작사인 아리랑 티브이에 개봉 후에 방송 될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제가 원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니까,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겠다 결정을 했죠. 그리고 헌팅을 하면서
여행이란 제목을 떠올렸고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세대를 달리해서 20대, 신혼부부, 중년을
생각했는데, 1편을 찍고 나니 세편 다 여행이 되면 외지인이 제주도에 들어와서 벌이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여행이란 사람의
삶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2부가 갔죠. 1부와 3부가 감싸는 식으로. 1편은 각본을 쓴
제자들의 체험을 짜내서 만들었고 원래 자전거 여행이 컨셉이었지만, 큰 욕심 없이 산뜻한 제주도의 경관을 보면서 추억도, 싸움도,
이런 과정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 편은 1 편을 작업하면서 지냈던 숙소가 영화 속에 나오는 레드스카이 펜션이었어요.
워낙 스케줄이 바빴는데 촬영 집합 전에 잠간 동복리라는 마을을 산책하다 해녀가 물질하고 나오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2 편을 찍었고. 1 부 먼저 찍고 3 부는 아내와 같이 썼고, 2 부는 제 딸이 학기말 고사 끝나고 나서
대사를 쥐어짰죠. 제 딸아이가 상상력이 있어서 상황만 던져주면 대사가 술술 나와서 수월했었고, 3 부(의 남편은)는 저와 너무
동일 시 하지 마시고. 마트에서 시식도 안하고, 저도 티브이 보고 비판은 좀 하지만 (웃음). 그러고 보니 돌 여자 바람인데.
변화를 주기 위해 하다 보니 찍힌거고, 그냥 우연의 일치 입니다. 의도는 없었죠.
김 : 시작 전에 스태프들에게 앙금이 있으면 오늘 풀자고 얘기를 하셨는데,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배
: 제가 좀 빨리 (촬영을) 합니다. 질척거리는 걸 싫어하고. 투자사에 기획 넣고 1년 2년 걸릴 것 같다면 차라리 쉬는 것이
좋고. 제가 결혼할 때도 1월 달 만나서 4월에 결혼했는데, 너무 빠른 것 아니냐. 그런데 저는 물리적인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
하루를 한 달 만큼 만났으니까 라고 했죠. 영화도 촬영하면서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시간을 귀하게 쓰기 위해서 스태프들을
쥐어짜다 보니 굉장히 예민해 집니다. 지금은 웃지만 현장에서는 가까이 있으면 데일 정도로 예민해 있죠. 약속한 시간 내에 그걸
해내려고.

관
객 1 : 첫 번째 에피소드의 스쿠터여인은 정체가 불명한데,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는 알기로는 윤성호 감독님이
신작에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말씀하시길 두 번째 에피소드는 따님이 쓰신 대사라고 하는데요, 그럼 앞으로 윤성호 감독과 신작계획은
있으신지요. 그리고 감독님의 연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감독님께선 연기자로서 언제쯤 다시 모습을 보여주실 계획인지.
배
: 그 여인은 궁금증을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둘이만 가면 밋밋하니까. 우리가 지나치는 여자도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3번째 에피소드의 여자일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2편에서 빵집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3편의 주인공이 만나게 할까했는데, 그건 좀 작위적인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죠. 1부를 보면 해녀하고 주인공 둘이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여행에서 또 가까이서 삶을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수수께기의
여자도 가까이서 본다면 이야기가 있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겠죠.
윤성호 감독과는 아프리카의 소년 합창단
이야기를 쓰다가 그 작품은 아직 유보 중이고. 두 번째는 원래 신혼 부부 이야기라 윤성호 감독이 지금 한참 신혼이라 부탁했다가
이야기가 바뀌어서 그냥 넘어갔죠. 배우는 윤성호 감독의 십 분짜리는 출연했었는데 투자자가 좋아할까요? (웃음)
관
객 2 :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여자는 필름 카메라를 쓰는데, 감성적으론 남자가 필름 카메라,
여자가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카메라를 다르게 하신 의미가 궁금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이 제주도 출신이라 했는데 전문 배우는 아닐 것 같았는데 어떻게 캐스팅을 하셨는지.
배 :
카메라에 대해서는 연출부와 회의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나온 의견에 맡겼죠. 사실 그다지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사실 이
영화에서 연기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영화에 출연해 본 사람은 김유미 씨(아내) 이외에는 전무했죠. 영화 촬영 전에
김유미 씨에게 3편은 쉬울 것이라고 했지만 촬영 끝나고 숙소에 가면 초죽음인 거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레디고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이라. 사실 카메라 뒤에 서있는 세계와 연기가자 다른 연기자와 같이 작업하는 세계가 다르죠. 그래서 레디고 할 때는
어떻게 이렇게 지도를 하느라 힘들었다고 했죠. 이 영화에서 몇 분 이외에는 영화 전문 배우가 없었지만. 그 분들에게 집중력과
편안함을 주면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카메라 앞에서 잘 떨지 않죠. 연기를 곧 잘하거든요. 그런데
직설적으로 현실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걸러서 나오는 것이 창조인데, 2부 배우들도 비전문 배우와 전문 배우를 놓고 어느
쪽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비전문 배우를 선택했죠. 덜 가공된 느낌이 나니까. 2부를 찍기 전에 두 팀으로 캐스팅으로 했는데,
오디션을 보니까 전문 배우들은 감정이 깊고 좋은데 사실감이나 느낌 때문에 비전문 배우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캐스팅은 용병술인데
영화마다 다를 수밖에 없죠. 항상 어떤게 좋다는게 아니라.


관객 3 :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다시 수원에 있다가 제주도로 돌아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
: 엄마 캐릭터는 5~ 6년전 비금도 민박집에 잠간 머물렀었는데 그 집 며느리, 집나간 며느리 사연을 접목했습니다. 섬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볼 때는 아늑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떠나고 싶고 그렇죠. 그렇게 떠나지만 귀소 본능 같은 것이 있죠, 그래서
돌아올 수밖에 없고.
관객 4 :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긴 머리 소녀 노래를 부르는데 타원형의 거울을 보는데 사진을 포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선 에피소드들에서 사진과 메모가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데, 그런 장면을 넣은 의도는.
배
: 이 영화에서 제가 사진 장면을 좋아하는데, 말 하고 싶었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영화배우가 되고 연기를
하고 삶의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 하는가 이런 문제인데. 이번 영화는 사진의 느낌들이
영화의 성격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넣었습니다. 3부의 여주인공의 사진은 가공이 아니라 실제로 김유미 씨의
사진이잖아요. 자신의 삶을, 한때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느낌으로 넣었고. 아주 어린 여고생 시절의 모습과 마지막에 성인이 된
사진과의 대비점이 좋게 느껴졌어요. 삶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끌어내지 않더라도 있는 것 속에서 잘 끄집어내면 정서적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김 : 봉준호 감독 오셨는데 마이크를 드리면 힘들어 하실까요(웃음).
봉
: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여중생 연기한 친구 얼굴이 인상적이고 좋았습니다. 아마도 아까 구체적으로 말씀 안 하셨지만,
물론 학생이니까 비직업 배우니까. 그냥 여중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캐스팅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
: 그 여중생은 제주도 연기학원에 몇 년 동안 다닌 친구인데, 이렇게 연기 경험은 처음이고. 할머니는 민속극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하시는 민속극 배우죠. 그 여중생이 (지은인데) 잘 때도 배에 대고 자더라고 스태프들이 말해주었습니다. 열심이라고.
2-3시 까지 대본 연습하고 배에 올려놓고 자더라고.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는 크게 연출을 하지 않고 판단과 선택만 했죠.
디지털은 이번이 처음 작업인데 장소 이동이 많고 찍을 것도 많아서, 연기만 깊게 파기 힘들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디지털이기
때문에 빠르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김
: 저는 이 영화가 참 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이 만든 느낌이 들 정도로 색다른, 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업하신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도 상반기 개봉 예정인데 주변에 많이 이 영화를 알려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배
: 《씨네21》 인터뷰를 하면서 3년 동안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난 후 지금까지 작업했던 내 연출을 뒤돌아 봤는데, 내가 좀
버릴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걸 버리는 과정이었는데, 아직 멀구나. 이번에 이런 소재를 만나면서 제가 보는 시선보다는
인물이 느끼는 대로 소박하고 겸손하게 가자. <황진이> 이후의 작업이 좀 화려한 것들이었죠. 이번엔 그 전 보다 좀
더 버렸는데, 사실 동시대의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요즘엔 인간의 열등감, 어둡고 비겁한 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지는데, 아직 인간이 희망이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찍어서 낡았다고 할까. 그런 걱정도 있었죠, 그렇지만 아직 건강한
구석이 있다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할 수 있었고, 고집을 많이 버렸습니다. 지금은 좀 더 열어두려고 노력하는데
제주도의 이름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마음을 열고 느끼고 하다 보니, 좀 더 소박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진이> 때부터 밋밋하지만 생수 같은 영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영화들을 관객들이
좋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영화들이 양념을 치고 자극적이고 하지만 탈이 나면 결국 찾는 것은 물이죠. 제주도
삼다수처럼. 그런 영화가 되길 바랬고. 다들 좋아하셨다면 좋겠죠. 앞으로도 자극적이지 않은 우리 몸에도 좋고 시원한, 그리고
물리지 않는. 그런 영화가 더 나오기를 바랍니다.
- 2010.01.24
사진 : 강연하 (editor)
정리 : 양석중 (editor)
영화 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동시 게재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Edward Hopper 의 그림을 닮은 음악을 만났다.

Richmond Fontaine - Making It Back
3 am and the bottles are lined up in rows on the floor again
'Summer in Siam' plays on repeat again we never get sick of it
Now that I'm home again
In the kitchen with you
There's no one else I can talk to
The lights are all covered and dim and there's nothing but a gentle ease here
'Summer in Siam' plays and you and me and our whole place, we're okay
Now that I'm in your arms again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광우병 보도 관련 PD 수첩 제작진, 무죄
라고 한다. 그런데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법부가 어떤 식으로든 권력 주체임을 끊임 없이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이 사안을 두고 어떤 '종류'의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박근혜가 '세종시는 원안대로 가야 한다능!'하면서 '나 아직 살아 있다능!' 내지는 '나 이만큼 힘쎄다능' 하면서 남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거꾸로 놓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것 처럼 말이다.
[파주] 절박한 자들(만)이 말 한다.
진실의 장소
술을 먹고 들어온 중식은 형에게 말 한다. 아마도, 은모가 준비한 모종의 '이벤트' 전날의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에서 비가 내렸다. 중식은 젖어있었고, 꽤 많이 취해있었다. 귀농을 위해 자신이 떠난 뒤 '이 곳'을 부탁하는 형의 제안에, 중식은 '해서는 안 되는 말, 할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격이 없다한다. 그리고 중식은 자신의 방에 돌아와 눕는데, 이어지는 스승의 날 시퀀스는 마치 중식의 꿈처럼, 혹은 악몽처럼 연결된다.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목덜미를 드러내고 '중식 씨, 사랑해요'라고 입을 맞추어 말한다. 중식은 놀라서 쓰러진다. 중식의 첫사랑의 기억은 재현된 악몽으로 귀환한다.
<파주>는 말에 관한 영화이다. 세상의 어느 누가 적절한 말과 부적절한 말, 할 수 없는 말과 해도 되는 말을 선별 할 수 있을까? 말이 입 밖으로 던져진 바로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말의 무게와 질감을, 그 생김새와 밀도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진실은 (당신과 나사이의)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은 반드시 말을 한다는 행위를 통해서 선별된다. 정확히 그 순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말은 누구도 거두어들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말하여질 수 없다. 진실은 침묵을 통해 남겨질 수 있는, 세상 마지막의 장소이다.
진실과 사실은 다르다. 은모의 혼란은 진실과 사실을 동일한 것으로 유추하기 때문이다. 은모가 ‘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말하여 질 수 없는 ‘진실’ 이었다. 은모는 진실을 아는 것이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진실이란 마음이 묶여있는, 마음이 정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진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거짓이라고 믿어도, 누군가의 마음은 그곳에 묶일 수 있다. 진실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것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시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중식의 말은 자신의 의지로 인해 말하여진 것이 아니라, 침묵을 지킬 것을 결심한 중식이 더 이상 꺼낼 말을 찾지 못해 수동적으로 은모에 의해 끄집어내어진 말이다. 은모가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할 때, 그것은 언니가 왜 죽었는지에 관해 알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자신이 언니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지 중식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식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그의 마음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알려는 것이다. 은모는 사랑을 갈구한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한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귀의 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끈질긴 모색과 탐색.
은모의 요청에 중식은 엉뚱하게도 ‘단 한 시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은모의 절망은 사랑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 받지 못함에 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은모는 알고 있다. 이미 언니는 죽어버렸고 진실은 말하여질 수 없다. 말하여지는 순간 진실은 진실이 아닌 것, 듣는 이가 원하는 것, 혹은 말하는 이가 원하는 무엇이 된다. 중식은 침묵하고 (또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말하거나, 그러니까 진실은 얼마나 연약한가. 거짓으로 감추어지는 진실은) 은모는 형부가 보험사기를 저질렀다는 (다른 이들 에게는 진실과 동의어인)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꺼내어진 거짓은 사실로 굳어진다. 딱딱하고 창백하게.
은모는 계속해서 정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길 위로 떠난다.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은모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은모는 (다른 사람의) 어떠한 말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떠돌 수밖에 없는 은모의 운명은 우리들 대다수의 운명과, 혹은 시간들과 영화 바깥에서 (필연적으로) 겹쳐진다. 영화 <파주>의 지독한 농담. 혹은 벗어날 길 없는 결정론.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의 주식.
영화 속에서 말들은 누군가의 입김과 함께 공기 중에 떠돌거나, 벽에 걸린 걸개위에서 펄럭이거나, 거칠게 그은 낙서로 벽 위에 남겨진다. 벽과 그 위의 말들은 시간이 지나 부서지거나 무너질 것이다. 그 위로 새로운 집과 건물과 도시가 세워질 것이다. 철대위, 이 절박한 이들이 내뱉은 말들. 그 말들은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었)다. 오직 이 영화 속에서, 절박한 자들만이 말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은 하릴없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말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와 침묵뿐이다. 희망과 절망마저도 사라져버린 명백하고 단단한 현실의 거죽들 뿐.
이경영이 연기한 나이트클럽 사장은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오직 '전언'의 형태로만 육화된다. 침묵함으로써 권력은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을 소유한다. 부재함으로써 권력은 편재한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설치된 CCTV의 눈초리가 상정하는, 그 뒤의 모든 감시의 체계들. 은모가 망연하고도 집요하게 응시하는 복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은모가 본 것은 말의 흔적이 아니라, 침묵이 단단히 현존하는 공간이다. 침묵은 어떠한 말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기형도는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있다고 노래했다. 그러나 불행이도 침묵의 주식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다. (매주 '라듸오'에서 정례 방송을 하던 이명박은 마치 복화술사처럼 정운찬을 내세운다. '너무 말이 많았던' 이명박은 <올드보이>의 이진우에게 혀가 잘리기 전에 교활하게도 침묵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이 기묘한 영화와 현실의 참조.)
철거용역들의 포크레인 공격을 막기 위해 화염병 사용을 제안하는 중식은 자신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책임을 지지 못한다. 은모가 푸념했듯, (말은) '힘이 없'다. 중식은 자신이 '현역'이던 시절 그대로, 화염병으로 경찰이 올 때까지 용역들의 접근을 막고, 경찰이 몰려오면, 그 때 (시위 전력이 있는) 자신만 구속하는 조건으로 투쟁을 접으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이상 중식은 경찰이 구속하고 싶을 정도로 중요인물이 아니다. 다가오는 철거 용역들을 향해 중식이 외치는 '주거는 기본적인 인권이다'라는 구호는, 집이 주거 공간 보다는 (남들보다 빠르게 선점하고 되파는 것으로) 개인의 재화를 기형적으로 증식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시대에, 뒤늦게 도착해버린 건조한 외침이다.
‘이 일을 왜 하는 거에요? 이 일이 형부에게 무슨 보람이 되죠?’ 라는 은모의 말에, 그리고 의외로 솔직하고 담담했던 중식의 대답을 들어버린 우리가 그를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었음을 기억하자. ‘처음에는 멋져 보여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다음에는 내가 갚을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나.’ 중식의 이 말은 충분히 그 뜻을 인식 할 수 있기도 전에 창 밖에서 뿜어져 들어온 물줄기에 의해 중단된다. 그리고 물과 (쉼표) 불.
물과 불, 그리고 안개
<파주>의 안개는 말하여진 말들, 입 바깥으로 나왔으나 육체를 얻지 못했던 말들의 형상이다. 안개는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떠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안개의 말을 해독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 안개의 형상, 말의 형상은 기화된 물이다. 물은 불을 끈다. 우리 여기에 있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 창문이 없는 창밖으로 던져진 화염병의 불길을 덮어버리는 차가운 물. 그 물이 기화되어 안개가 된다. 그것이 말이 되고 거꾸로 산자들의 말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선한 말과 악한 말의 대립이 아닌, 그러니까 물과 불의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역학이다. 물과 불이 엮여 안개가 되고, 무거워진 안개는 물로 다시 지상에 내린다. 이 모든 외침들, 의지와 욕망과 엇갈린 시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젖어들듯 켜켜이 쌓여버린 땅. 그곳은 파주다.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모든 장소이다.
결국 <파주>의 이야기는 땅으로 귀결된다. 토지대장에 올라가는 몇 번지 몇 호. 같은 기호가 아닌, 가장 물질적이면서 가장 근본적이고, 동시에 가장 첨예하게 정치적인 땅. 그 땅에 누가 머물 것인가, 어떻게 머물 것인가, 언제까지 머물 것인가. 그러니까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주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의 문제. 진실이 묶여 있는 곳, 진실이 정주할 수 있는 땅을, 정말로, 마지막에는 발견할 수 있는가의 문제, 그곳에 결국엔 머물 수 있는가의 문제. 그렇다면 <파주>는 사나운 질문들만 남겨두고 등을 돌려버리는 영화인가. 아니다. 당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 질문들의 해답을. 그러니까 이제 남는 것은 이 해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 혹은 당신은 은모처럼 철조망을 내 오른쪽 혹은 등 뒤에 둔 채로 길 위를 (언제까지나, 영원히) 떠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절대로 그 너머로 넘어가지 못 한 채로, 그 안에서만 떠돌게 될 때, 그것을 용납할 수, 혹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영화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동시 게재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안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돼요....
이명박 씨 왈 : (4 대강 사업은) 시작할 때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반대자가 있었지만 완성하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인 지지자가 될 것
그러니까 이사람 사고방식은 '안 돼요...돼요...돼요...돼요...돼요...돼요...돼요...헉헉헉' 에서 한치도 발전이 없다는 거구나. 유치해.
ps. 도산 안창호 선생을 '안창호 씨'라고 말한 사람이니, 일국의 대통령을 '이명박 씨'라고 못 부를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나랏님이신데 '씨'가 뭐냐고. 그깟 나랏님이 내 체면과 명예를 올려줘야만 하는 인생이라면 내가 불쌍해서 안살고 말겠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점박이 눈
점박이 눈
한 귀퉁이
꿈나라의
한 귀퉁이
- 金宗三의 「꿈속의 나라」
故 金宗三을 위하여
그대 세상 뜨고
길음 聖堂 안팎의 늦추위
점박이 눈이 내리고
길음 市場의 생선가게들을 지나
목판 위에서 눈 껌벅이는
(자세히 보면 껌벅이지 않는)
모두 입벌린
(한꺼번에 숨막혀 죽은)
생선들을 지나
얼어 있는 언덕을 올랐다
점박이 눈이 내렸다
가늘게 검정테 두르고
가운데 흰 점 박힌 눈송이들
머리와 어깨에 쌓였다
성당 정문에서 千祥炳 씨 부인과 인사 나눴을 뿐
文學판 사람들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때 어디 있었는가, 오우버 ?”
“프라이버시 침해하지 말라, 오우버.”)
낯선 文學靑年 하나가
눈맞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사진에서 뵌 선생님이시죠 ?
저는 金宗三 시인을 사랑한 놈입니다
발자국을 따르다 보니
예서 그만 끝이군요
앞으로 무슨 맛에 살죠 ?“
내 장례식에 혹시
이런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 올까?
(온다면 깊이 잠들기 힘들리)
기억하는가, 金宗三,
그대 홀로 헤매고 다닌 인수봉 골짜기
비 갓 갠 검은 냇물 위에
환히 맴돌던 낙엽 한 장을 ?
그 몇 바퀴의 삶을 ?
그대 장례식의 이 어두운 골짜기 같은
이 황당함, 이 답답함
영결미사가 시작되고
합창이 막을 열었다
신부님이 종을 흔들자
그대는 하느님의 이상한 아들이 되어 신발 한 짝 끌고
聖歌 속에 잠시잠시
숨었다 나타났다 했다
몰래 따라 들어가 보면
그대는 막 출발하는 버스에 매달렸다
신문지 말아 감춘 진로병을 가슴에 안고
눈이 껌벅여지지 않았다
추위 때문인가
입을 벌려도 숨이 답답했다
(마음이 얼얼하면
몸 속이 환해지리)
그대 탄 버스 앞길에 자욱이 내리는 눈
점박이 눈이었다.
-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 문학과 지성사, 1986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영화적인, 시네마틱한 어떤 것들
... 장 르누아르는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준 편리함이 영화의 지적인 진보 및 표현의 풍부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르누아르는 <물에 젖은 물 뿌리는 사람 L'Arroseur arrose'>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편집의 부재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예술가가 주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선택한 결과일 뿐입니다. 뤼미에르의 <물에 젖은 물 뿌리는 사람>은 단 하나의 쇼트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카메라를 바꾸거나 촬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매우 불편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편집 작업이 기술적으로 훨씬 용이했습니다. 펜과 크레용, 그리고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충분한 일이었죠. 그러나 저는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보다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기술적으로 불편함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더 신경을 썼던 것이죠. 예술에서 '자유'란 어쩌면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4 <시점 - 시네아스트의 시선에서 관객의 시선으로> p35 ~ 36,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7
- 말 버릇 처럼, '영화적인' 혹은 '시네마틱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영화적인 어떤 것은 범주화 되는 것이 아니며, 고정된 이론의 체계, 혹은 기법, 혹은 문법, 여하간 그런것들이 아니다.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영화적인 어떤 것은, 개별 영화에서 발견되어지는 어떠한 태도의 지점들이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이나, 혹은 영화에 대해 쓰는 이, 또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될 수 있다.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영화적인 것을 선별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암수를 가려내는 감별사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공정한 것도, 엄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게으르고, 약삭빠른 요령 부리기일 뿐이다.
르누아르는 핵심을 아주 간결하게 파악했다. 그는 기술적 자유를 포함한, 무언가를 실행에 옮긴다는 행위에 있어서의 자유가 갖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르누아르의 지적은 오히려 현재의 시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가진다. 영화를 찍는 다는 것, 무엇에 대해 카메라를, 어떤 상황, 장면, 무언가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넣는다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행위이며 선택을 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보여줄 수 있는 것과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격렬한 운동 같은 것이다.
현재의 영화 환경은 거의 무한대의 기술적 자유가 주어진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개발되는 특수효과와 다양한 장비, 점점 실사와 CG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무언가를 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는 단순한 정경들의 나열에서 그쳐버릴 위험이 크다. 영화의 내적 논리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구축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무성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를 보면서 문자를 통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구축된다. 그렇다면 스토리의 개연성 이전에 장면의 개연성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장면의 개연성은 기술적 자유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이 바로 거기에 그러한 모습으로 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치열하고 합리적인 고민과 창작자 자신의 이해가 선행될 때 그나마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나마'라는 전제를 다는 것은, 전술한 모든것들이 가능하다 해도, 창작자의 뜻대로는 '절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영화 현장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는 위대한 타협들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스토리보드를 열심히 그리고, 촬영계획을 면밀히 작성하고, 매 시간과 분초 단위로 현장을 제어하려 해도, 그 범위를 빠져나가는 어떤 지점들이 반드시 영화 현장에는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하나의 영화가 추동되어질 수 있는 진정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들이다. 우리가 보게되는 영화는 결국 이러한 선택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영화가 점점 더 재미없어 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영화환경은 (자본과 시간만 뒷바침된다면) 그야말로 못 할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웰메이드'영화에 대한 환상은 영화의 외양적 화려함과 완성도(?)에는 한 몫을 했을지 모르지만, 거의 비슷한 생김새의 영화들이 양산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흔히 말하듯 할리우드 못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도, 또는 한국 영화적인 뭔가가 있다고 딱히 말하기도 어려운 고만 고만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극장가는 정말로, 말할 수 없이 따분하다.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시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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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시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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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시는 서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공기가 나쁘고 인심 사나운 교통지옥일지언정,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사는 일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다. 얼마간의 여행지라면 몰라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으니, 문화예술 인프라에 관한한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딱 한 곳, 서울에 없는 것을 가진 부산이 부러워졌다. 서울에 없는 것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그야 때맞춰 내려가면 그만이지. 아니면 세계최대의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패리스 힐튼도 아닌 마당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도처에 펼쳐진 바다와 지천에 널린 횟감? 회도 바다도 모두 좋아하지만, 어디 그런 곳이 부산뿐일라고. 파리에도 있고 로마와 뉴욕에도, 서구의 웬만한 도시 마다 하나쯤은 있으며 하물며 부산에도 있는데, 서울에는 없는 것.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상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기획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실행시켜가고 있는 부산광역시 공무원을 가진 부산 사람이 부럽다. 역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고 있는 문화행정가들이 부끄럽다. 아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네마테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듯 부산과 서울을 단순비교 하면서 호들갑이냐고 말할 런지 모르겠다. 시네마테크는 한 마디로 ‘영화의 집’이다. 영화를 발굴하여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시작은, 1930년대 초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즉 토키시대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고 이후 세대를 위한 영화 역사의 전달 임무를 지닌 시네마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알다시피 서구에서 영화는 산업에서 예술의 대상으로 종국에는 문화유산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때 시네마테크를 이루는 추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시네필의 고유한 노력과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제도적 역할이다.
시네마테크의 상징처럼 알려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제도적 지원을 적극 실시했다면, 미국의 경우는 시장에서 비상업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을 통해 시네마테크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예컨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재정의 90%가 문화부와 CNC(국립영화센터-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Film Forum)’의 경우 이사회를 비롯해 개인, 단체, 기업 후원회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도 서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10일 소격동 선재센터에서 개관해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정위탁’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영진위의 재정지원(임대료)과 극장활용수익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시네마테크를 가진 도시답게 파리에는 약 150개의 독립영화관과 89개의 실험영화관이 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필두로 ‘제오드’, ‘포럼 데 이마지’, ‘퐁피두센터’ 등에서는 고전향취 물씬 풍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네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파리시의 영화산업 지원정책이다. 이를테면 상업 활동이자 예술로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영화산업을 행정측면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파리시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연맹 등과 협력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관람 권장 행사를 벌이는 한편, 영화관 현대화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분투 중이다.
파리시는 독립영화관들, 오래된 유명 영화관들, 동네 영화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예술 및 실험영화단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 모임인 ARP가 프랑스 및 유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직접 '영화인들의 영화관(Le Cinema des cineastes)'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영화예술에의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책방향과 정책적 지원주체와 형태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필름 소사이어티’나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같은 북미의 시네마테크들 역시, 영화산업의 육성 및 보존을 위한 해당 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문화예술, 좁혀서 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서울시가 내놓은 2010년 시정 중점 과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 구현’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구호다. 연중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청계천의 밤빛을 배경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서울특별시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국의 콘텐츠에는 ‘영화’가 쏙 빠져있다. 아니 영화‘만’ 빠져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편중된 예산편성이다. 즉,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서울의 1년 예산 가운데, ‘문화’ 분야 예산이 (일반회계를 기준으로)1.8%에 불과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2010년 서울특별시 총예산 21조 2853억 중 문화부문 예산은 3,769억 원이고, 이 가운데 ‘문화시설 건립운영 지원’에 242억 원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수도서울의 위상을 과시하기 급급한 공공프로젝트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절스포츠 행사를 치르느라 시설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예산을 쏟아 부을지언정, 시네마테크 하나 건립하는 데는 시가 발 벗고 나서는 법이 없으면서, 무슨 재주로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만큼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문화예술분야가 또 어디 있다고.
앞서 말했듯이 파리와 뉴욕의 시네마테크가 너무나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과 단순 수치로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의 일 년 예산 중 문화부문에 배정된 것이 1.8%(3,769억 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부산광역시의 2010년 총예산은 7조 2,136억 원으로 서울의 1/3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중 문화관련 예산은 3.040억 원이고, 영화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상센터 건립에 565억 원이, 영상중심도시 지속사업에 650억 원이 배정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영상산업도시 부산’의 면모가 예산편성에 드러나 있다(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문화국 콘텐츠에는 ‘영화’만! 빠져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6년 4월의 어느 밤, 종로타워 바에서 ‘앱솔루트 트리오’의 리더인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직업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도 영화광 못지않은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대뜸 “기회가 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뜨끔한 마음에서 임기응변으로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도 시네필의 기운이 살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호기 있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울아트시네마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더라면, 무엇을 보았을 것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수집, 보존, 복원, 연구, 상영의 공간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의 뒷모습은, 오랜 벗처럼 겹으로 똬리를 튼 낡은 영사기와 만성적 재정문제라는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만성적자와 노후 된 설비와 제대로 된 교육 공간 하나 없이, 이 남루한 하드웨어를 몸에 가난처럼 짊어지고도 우리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 세월을 시네필의 성소로 버텨왔다. 그렇다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이 외국의 시네마테크에 비해 모자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그래밍만 놓고 본다면 뉴욕의 필름포럼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필름아카이브 구축과 현대식 영사시설의 구비가 급선무이긴 하나, 이처럼 기획전과 대관전을 비롯해 교육상영과 포럼, 출판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이뤄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영화는 산업이면서 예술이고 문화인 동시에 유산이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미 70여 년 전 이를 인식하고는 찬란한 유산을 후대에 남겨줄 공간으로 ‘영화의 집’을 기획하여 실천에 옮겼으며, 이 노력은 각 도시와 구역을 중심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구 1,2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는, 이곳에 ‘시네마테크전용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문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양동작전으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야만적 작태를,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문화운동을 거쳐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서울아트시네마’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지를.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공모제가 공표될 날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이치에 맞지 않은 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일 테니 이제는 무시하기로 하자. 설사 그렇더라도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05년 4월 3일 <안녕, 용문객잔>을 끝으로 낙원동으로 이사 온 이래,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영진위나 문화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용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기본 계획조차 전무한 집단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셋방살이가 고달픈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냉소적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 발 벗고 나선다 해도 부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에 걸 맞는 사업으로 ‘시네마테크전용관’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또 있을라고. 시네마테크전용관이야말로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 남대문과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타워에 이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맡는다면, 박수치면서 애써 도울 사람은 천지에 널려있다. 왕조는 무너져도 왕조의 기록은 역사로 남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성취가 훗날까지 남겨질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만한 것도 없을 터. 정치적 논리를 떠나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가진 기관장의 용기와 실천이 보태진다면, 서울시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울시가 나서라!
(추신)
하나. 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뽑게 된 이래로 ‘시네마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 건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단합된 힘을 보여주면서 압박도 하고, 새로운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약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이면서 서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시네마테크를 사랑한다면, ‘관객회원’들은 4,000원의 할인금액이 아닌 오히려 일반 관객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수혜자부담 원칙을 떠나 애정표현의 실질적 방법의 문제이다.ㅡ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추가요금의 부담만큼 다른 혜택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ㅡ나는 시네마테크 측이 과감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수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신이 진정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이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면, 회원에 가입하고 더 많이 자주 찾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특히나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이명처럼 들려오거나 매체의 지면으로 접하던 “이 좋은 영화들을 너무 싼 값에 봐서 미안하다”는 말들은 괜한 소리였던가.


- 2010.01.11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2010 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The 5th Cinematheque Friends Film Festival 2010년에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010년 1월 15일부터 2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시네마테크를 후원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벌써 5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2006년에 시네마테크의 설립취지에 공감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처음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를 선택하고,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매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영화축제입니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제 5주년을 기념하고, 시네마테크 전용관 창립 10주년을 목전에 앞두고 열리는 행사인 만큼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행사들을 마련합니다. 먼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 류승완, 안성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선택',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들의 선택’ 두 섹션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최된 이래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더욱 많은 친구들이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영화들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큰 만족을 선사할 것입니다. 또한, 시네마테크가 2008년부터 매년 구축하고 있는 고전영화 라이브러리를 2010년에도 관객들게 처음 소개할 예정이며,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해외 게스트로 저널리스트, 편집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가 초청되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비평에 대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과 봉준호, 류승완, 오승욱 감독이 참여해 영화 연출 및 시나리오 등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처음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아울러 첫 번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된 이래로 염원해 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시작됩니다. 그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해 모였던 영화감독, 배우, 교수, 영화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참여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활동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1월 15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참여해 영화제를 소개하는 개막식과 후원의 밤을 시작으로 막을 엽니다. 2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개최될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________ 개막식 l 2010년 1월 15일(금) 19:00 서울아트시네마 개막작 l <뱀파이어: 에피소드 1, 2>(루이 푀이야드 연출, 1915) *연주상영 ________ 01. 메인 섹션 Main Section 시네마테크의 선택 Cinematheque's Choices 매년 시네마테크가 선택한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 이번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시네마테크가 고전 영화 라이브러리로 직접 구매한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이 뉴 프린트로 처음 소개된다.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New 35mm 프린트) l 연출: 찰스 로튼 Charles Laughton 친구들의 선택 Friends' Choices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직접 자신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 상영하고 작품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며, 상영 후에는 관객들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섹션이다. 친구들의 선택 1- 김영진(영화평론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l 연출: 존 포드 John Ford 친구들의 선택 2- 김지운(영화감독) 마태복음 Il Vangelo secondo Matteo /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l 연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친구들의 선택 3- 김한민(영화감독)+윤종빈(영화감독) 엄마와 창녀 La Maman et La Putain / The Mother and the Whore l 연출: 장 으스타슈 Jean Eustache 친구들의 선택 4- 류승완(영화감독) 열혈남아 旺角下問 / As Tears Go By l 연출: 왕가위 Kar Wai Wong *이번에 상영되는 <열혈남아>는 기존에 개봉한 대만 버전이 아닌 홍콩버전(감독판)으로 엔딩 등 일부 장면이 다릅니다. 친구들의 선택 5- 박찬옥(영화감독) 네이키드 Naked l 연출: 마이크 리 Mike Leigh 친구들의 선택 6- 박찬욱(영화감독)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 l 연출: 니콜라스 뢰그 Nicolas Roeg 친구들의 선택 7- 봉준호(영화감독)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 l 연출: 존 부어맨 John Boorman 친구들의 선택 8- 안성기(영화배우) 아마데우스 Amadeus (New 35mm 디렉터스 컷) l 연출: 밀로스 포먼 Milos Forman 친구들의 선택 9- 오승욱(영화감독) 트로츠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Trotsky l 연출: 조셉 로지 Joseph Losey 친구들의 선택 10- 이명세(영화감독) 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Tokyo Story l 연출: 오즈 야스지로 Yasuziro Ozu 친구들의 선택 11- 이재용(영화감독)+전계수(영화감독) 디바인 대소동 Female Troubl l 연출: 존 워터스 John Waters 친구들의 선택 12- 최동훈(영화감독) 바람에 사라지다 Written on the Wind l 연출: 더글라스 서크 Douglas Sirk 친구들의 선택 13- 홍상수(영화감독) 오데트 Ordet / The Word l 연출: 칼 드레이어 Carl Theodor Dreyer 관객들의 선택 Members' Choices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이 1위로 <항해자>가 2위로 선정되어 상영된다. 어셔 가의 몰락 La chute de la maison Usher /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l 연출: 장 엡스탱 Jean Epstein 항해자 The Navigator l 연출: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02. 특별 섹션 Special Section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 Carte Blanche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영화평론가가 직접 3편의 영화를 선정해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에 대한 강연과 더불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정성일과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인 크리스 후지와라가 시네필의 입장에서 선택한 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정성일의 선택 뱀파이어 Les Vampires / The Vampires l 연출: 루이 푀이야드 Louis Feuillade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Le Roman d'un tricheur / Confessions of a Cheat l 연출: 사샤 기트리 Sacha Guitry 카프리치 Capriccil l 연출: 카르멜로 베네 Carmelo Bene 크리스 후지와라의 선택 이유없는 의심 Beyond a Reasonable Doubt l 연출: 프리츠 랑 Fritz Lang 말 위의 두 사람 Two Rode Together l 연출: 존 포드 John Ford 프랑켄슈타인 죽이기 Frankenstein Must Be Destroyed l 연출: 테렌스 피셔 Terence Fisher 존 포드 걸작선 John Ford Special 시네마테크에서는 교육적, 문화적 영화 상영과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기 위해 2007년부터 고전 영화의 프린트를 직접 구매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를 운영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미국영화의 대명사일 뿐만 아니라 서부극의 거장인 존 포드의 걸작 6편을 구매해 뉴프린트로 처음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행사가 열린다. 아울러 3편의 대표작을 추가로, 총 9편의 존 포드의 영화가 상영된다. 철마 The Iron Horse (New 35mm 프린트) 굽이도는 증기선 Steamboat round the Bend (New 35mm 프린트) 모호크족의 북소리 Drums Along the Mohawk (New 35mm 프린트)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New 35mm 프린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New 35mm 프린트) 말 위의 두 사람 Two Rode Together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New 35mm 프린트)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03. 정기 상영회 작가를 만나다 미래의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거나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감독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세계를 함께 느끼고 호흡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2010년 1월에는 80년대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꾸준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배창호 감독의 신작을 프리미어 상영하고, 2월에는 영화학 교수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며 장편영화를 연출한 김정 감독의 신작이 관객들과 만난다. 1월 작가를 만나다: 배창호 <여행> 프리미어 상영 2월 작가를 만나다: 김정 <거류>, <질주환상>, <경> 04. 부대행사 Events 영화평론 마스터클래스 Film Critic Masterclass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시네필이자 저명한 영화평론가를 초대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 상영과 더불어 강연, 좌담이 열린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영화감독 2월 10일(수) 19:00 <뱀파이어> 상영 후 강연 2월 11일(목) 19:00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상영 후 강연 크리스 후지와라/미국 영화평론가 2월 26일(금) 19:00 <이유없는 의심> 상영 후 비평강연 2월 27일(토) 14:00 <말 위의 두 사람> 상영 후 존 포드 강연 2월 28일(일) 13:00 <프랑켄슈타인 죽이기> 상영 후 비평좌담-'시네필의 윤리‘ *앞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께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좌석이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시네토크 Cinetalk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관객들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행사. 2009년에 이어 국내 유명 감독과 배우, 평론가들이 관객들과 만나 영화에 대한 풍성하고 다양한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1월 16일(토) 15:00 <쳐다보지 마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박찬욱(영화감독) 1월 17일(일) 13:00 <엄마와 창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한민(영화감독),윤종빈(영화감독) 1월 19일(화) 19:00 <네이키드>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박찬옥(영화감독) 1월 21일(목) 19:00 <열혈남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류승완(영화감독), 진행: 주성철(씨네21 기자) 1월 23일(토) 14:00 <바람에 사라지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최동훈(영화감독) 1월 24일(일) 15:30 <동경이야기>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이명세(영화감독) 1월 26일(화) 20:00 <사냥꾼의 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1월 29일(금) 19:00 <트로츠키 암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오승욱(영화감독) 1월 30일(토) 15:00 <아마데우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안성기(영화배우) 1월 31일(일) 13:00 <항해자> 상영 전 소개: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1월 31일(일) 15:00 <마태복음>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지운(영화감독) 2월 5일(금) 19:00 <서바이벌 게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봉준호(영화감독) 2월 6일(토) 14:00 <오데트>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홍상수(영화감독), 진행:허문영(영화평론가) 2월 7일(일) 15:30 <디바인 대소동>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이재용(영화감독), 전계수(영화감독) 2월 17일(수) 19:0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영진(영화평론가) *앞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께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좌석이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시네클럽 Cineclub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과 영화공동체가 영화인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로 봉준호, 류승완, 오승욱 감독이 참여해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는다. 1월 21일(목) 15:00-17:00 류승완(영화감독) l 나는 어쩌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 1월 29일(금) 15:00-17:00 오승욱(영화감독) l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2월 5일(금) 15:00-17:00 봉준호(영화감독) l <마더>의 영화 연출에 대하여 *신청방법: 1월 16일(토)부터 극장 앞 안내데스크에서 참가비를 받고 선착순으로 접수합니다. 1회 참가비: 5,000원 / 신청마감: 해당 행사 하루 전까지 / 장소: 인사동 갤러리 VOOK's / 선착순: 30명 |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세종시 - 쑈쑈쑈 쇼를 해라 !
정 총리는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 아니겠느냐. 세종시 건설은 정치적 신의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라며 수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 연합뉴스
... 라고 한다. 이 정권의 정치 혐오. 아니 정확히는 이명박의 '절차적 정치' 혐오 (내지는 무시)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세종시 관련 쑈에서 정운찬은 그냥 인형이다. 복화술사는 이명박. 언제부터 총리의 역할이란 것이 이렇게 평면적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과거의 약속에 정치적 복선이 내재' 되었다면서 과거의 세종시 추진이유를 '정치적인 속셈이 있기 때문에' 나쁜것으로 치부하면서, 세종시 수정을 마치 역사의 결단인 것 마냥 상찬한다. 게다가 더 웃긴건 '정치적 신의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라며, 마치 몇 십년, 몇 백년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것 처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신의'를 입에 올리면서 대선때 표를 얻기 위해 세종시 현안을 추진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이명박은 뭐가 되는건가. 아 맞다. 이 말은 정운찬의 입에서 나온것이니까, 주어가 없는 것이겠구나. 이젠 아주 대놓고 다른 사람들을 능멸한다.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 종신제는 국가의 대사'라는 발언을 할 날도 멀지 않았다. 썩을것들.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감독 장률과의 대화 - 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일 때, 영화는 시작된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갑작스럽게 장률 감독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부랴부랴 지난 영화들을 다시 복기하고, 질문할 것들을 정리를 하면서 새벽까지 준비를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새벽이 되면 사위가 조용해진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또렷이 들린다. 큰 소리가 방안에 울리는 것이 싫어서 헤드폰을 낀 채로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장률의 영화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인터뷰에도 언급이 되지만 브레송의 영화처럼, 장률의 영화가 반짝하고 빛을 발휘하는 순간은 어떤 사건의 묘사가 아니라 무표정하게 던져진 시간들의 사이를 드러낼 때이다. 가령 <망종>에서 순이의 집 사이로 멀리 보이는 땅위로 아주 잠간 흩날리는 흙바람, 혹은 무너진 담 위로 떨어지는 따뜻한듯 창백하고 평면적인 햇살의 질감 같은 것들. 또는 <중경>에서 다리를 저는 김씨가 힙합에 맞추어 춤을 추는 순간 같은, 이상하게, 예고없이 돌출되는 장면들의 이질감이 불러오는, 산다는 것의 이해할 수 없는 감각들.
본인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마치 탐색하듯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란 언변이 아니라, 무언가의 전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감독 장률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기를 소망했을까.
양 석중 (이하 양) : 일단은, 정성일 선생님 만큼, 심각하게 괴롭혀 드릴건 아니니까요, (웃음) 저는 장률 감독님 영화가 전부 두 글자 잖아요. 아까 식사 자리에서도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간단한 질문부터 드릴게요. 두 글자를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세요 ?
장률 (이하 장) : 꼭 의도적인 건 아니고, 제목이라는 건 사람 이름이잖아요. 기억하기 좋게, 간단하고 기억하기 좋게, 그런 출발점인데 간단해도 그 영화 속에 무슨 느낌은 줘야하고 그래서 이상하게 계속 두 글자로 나갔어요. 나가다가 이번에 새 영화 <두만강>은 한 글자 더 늘어났고, 이렇게 변하는 과정이에요.
양 : 제가 감독님 작품중에서 <당시>는 못 봤어요. 못 보고, <망종>을 (처음으로) 봤거든요. 개인적으로 말의 어감에 대해서, 말의 감, 맛 같은 것, 그런것에 민감한 편인데, <망종>이라는 제목이 딱 와닿더라구요. 저는 감독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봤어요. 원래 영화를 볼 때, 아무 정보 없이 보거든요. 굉장히 (영화가) 과묵했어요. 감독님께선 원래 말이 많은 걸 싫어 하시나요?
장 : 말을 많은게 싫은게 아니고, 제가 어릴적에 아주 심하게 더듬거린다? 말을 못했어요. '아아 아버지' 이렇게 (허벅지를) 치고 말해야하는, 그 정도로, 말을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까지 그러면 한국에선 어떻게 보는지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병신이라고 했어요. 부모님께선 저 말도 못하는 놈이 어떻게 장가라도 가겠는가, 그리고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갈망하는 게 뭐인가하면, 사람이 말로 소통을 하잖습니까, 그런데 말을 못하니까, 더 소통을 하고 싶은데, 자기는 그 능력이 없고, 말할 수가 없고 하면, 나의 갈망하는 것이 뭐냐면 그때, 말 없이 소통할 수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좋겠나, 얼마나 편하겠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를 닫아 버리는. 닫고 소통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지고, 저 어린 시절 그렇게 지냈어요. 과묵한게 아니라 말을 못 하니까, 과묵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거에요. 말을 시작하게 됐는데, 말이 나가는 거에요. 요즘은 말인 내가 너무 싫어요. (웃음).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말을 짧게, 간단하게, 끝나가지고 그 사람이 알아듣게, 그런, 그게 몸에 배인거 같아요.
양 :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보면요, 사이,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게 익숙하신 중국어를 쓰시다가 한국 말로 다시 생각을 돌리면서 그런게 나오는것 같은데요, 제가 왜 그런 말씀을 드렸냐하면, <망종>을 처음 봤을 때,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공간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영화에 보면, 몸을 팔러 다니는 아가씨들의 집과 순희씨의 집 사이에 자전거를 두잖아요. 그 뒤에 보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는 영화를 처음 보면서 저 뒤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은데 왜 안 보여주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제가 고등학교 때 처음 <비정성시>를 봤어요. 그 영화에 보면 중국인들의 집이, 한국은 아들방, 부모님방, 이렇게 닫혀있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구획이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비정성시>를 봐도, 여닫이 문으로, 벽인데, 벽이 아닌듯한, 임시적으로 닫히지만 열릴 수 도 있는 하나의 큰 공간이 구획이 되는 식으로 구성되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중국인들의 집이 저렇구나, 생각했거든요. <망종>에서도 문이나 벽이 크게 기능을 하지 않잖아요. 바깥을 차단하지 않고, <중경>에서도 교실인데 바깥의 소리가 다 들어오고, 처음 시작할 때 관리인인 듯한 분이 오셔서 복도를 오면서 사람은 안 보이는 프레임 바깥으로 '차 한잔 드릴까요, 선생님'이라고 말하잖아요. 문이 없잖아요. 교실인데도. 마치 복도에서.
장 : 실제로 그게 복도 였어요. (웃음)
양 : 저는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평론가들처럼 장면에 의미를 찾거나 두는 것에 관심이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실제로 제 관심은 영화를 실제로 찍을 때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더 관심이 많거든요. 감독님께서 영화 속의 그런 공간을 찍으신 것은 원래 사는 공간이 그렇기 때문이잖아요. 공간이라는 것이 사실은 비어있는 사이인데, 그런 장면이 감독님 영화에서 많이 나오거든요. 벽과 벽 사이로 복도가 보인다던가. 집과 집 사이로 바깥이 보인다던가. 이런 공간들이 나오는데, 이런 공간들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 사람의 취향이 있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취향이 있는 것처럼, 그런걸 선택하지 않으면 꼭 만들어요. <망종>의 집, 아가씨 집, 중간에 통로가 있잖아요. 저쪽 가는 통로가, 원래는 없어요. 그 건물이나 하나에요. 그걸 처음 보고 답답해서는 통로를 내야되겠다하고 미술팀 보고 저거 깨라. 다시 해라. 그래서 그거 내면, 그쪽으로 가는 건 창호 밖에 없잖아요. 어머니는 항상 문 앞으로 돌아가고, 창호는 어머니가 마지막에 나갈 적에 아들이 나갔던 길로 가고. 근데 사람이 보면, 애하고 어른들이 다니는 통로가 좀 달라요. 그런 경험도 있고, 애들은 어른들이 별로 가지 않는 통로로 더 가자하고, 그런게 생활상에, 내 생활에도 (있었고) 그게 재밌다. 그럼 그걸 만들어 보자. 그리고, <중경>의 복도도 학교 섭외 했는데, 가서 보는데 교실들이 별 맘에 들질 않아요. 그래서 복도에다가 이걸 책상놓고 해라 하니까, 왜 이러는가, 녹음팀에서 '이거 엉망이다' 그래도 재밌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아직 질서를 찾고 있잖습니까. 근데 복도에서 그렇게 찍고 그러는게 질서가 아닌거잖아요. 질서가 아닌 문란한 소리, 공부하는 소리, 바깥의 소리, 그런게 복도에서 찍으면 한꺼번에 다 들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하자. 그렇게 공간을 찾을 적엔 자기 취향대로 찾는거죠.
양 : <망종>에서 좋았던 것이, 벽이 무너져 있잖아요. 문이 없는데 드나들잖아요. 그리고 뒤 쪽엔 열차들이 있고. 애초에 생각하실 때, 이런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보셨을 때 직감적으로 아셨던 거에요 ?
장 : 그거는. 벽은 다 만들었고. 그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어요. 원래 있었는데, 중간에 치워 버리고. 다시 했고, 헌팅하러 가는데, 차타고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보자 했는데,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을 보는데, 되게 쓸쓸하고, 고독하고, 보니까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고. 지금은 없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기찻길 옆에서 살겠습니까. 할 수 없이 사는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도시를 가 봐도 기찻길 옆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내게 주는 감동, 감정과 인물의 신분이 맞아 떨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주 촬영소는 여기다.' 하니까, 촬영 감독이고 모든 스텝들이 '어찌 이리 책임도 없이, 우리 몇 일좀 더 돌아다니자' 그래도 여기에 내 감정이 꽉찼다. 내 책임 지지 않는게 아니고, 더 좋은게 나온다 하더라도, 더 좋은거 찾기 싫다. 여기서 하자. 그래서 북경에서 운전해서 한 사십 분 나가서 결정했어요.
양 :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감독님께서는 자신의 의지를 100 % 밀어 붙이시나요 ?
장 : 내 의지를 밀어 붙인다기보다는, 내가 그런 공간을 볼 적의 나의 감정에 충실하는거죠. 감정에 충실하고, 헌팅하면서 고생을 해 본적이 없어요. 가면 그게 나와요. 그게 내 감정이 들고, 그럴 때 하나하나의 공간들이, 내가 찾아낸 공간들이, 일관성도 있고, 그 안에 이야기와 인물들이 활동을 하고 어떤 감정이 나오게 할까 그건 감독들이 금방 느낄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들은 뭐냐면, 그 안에 인물과 아무 관계가 없고 감정이 없는거에요. 그런 건 감독으로서 용납을 못하는 부분이에요. 나는 (남들이 보기엔) 책임성 없이 하는 것 같은데, 내 감정에 충실하고. 만들고 붙이고 해서 그 감정에 맞지 않으면 마지막에 편집이 끝나면 아닌게 금방 탄로나요.
양 : <중경>의 경우에, 카메라를 고정해서 찍으셨잖아요. 감독의 영화에서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이 몇 번 나왔는데요, 횡으로 행진하는, 그러니까, <망종>과 <중경>에서도 보여주고, <이리>에서도 나오죠. 그런데 <망종>의 경우엔 부채를 흔들면서 굉장히 당사자들은 신이 나 보이지만, 묘하게 쓸쓸하잖아요. 그런데 <이리>에서는 김동호 위원장의 마음이 바깥으로 표현이 된 것 처럼 보여지는데요, 그렇게 같은 것 같은 장면을 이용해서 다른 감정을 만들어내시잖아요.
장 : <이리>에서도 현장에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원래 할머니들이 그 안에서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원래 지금도 양로원 자리인데, 거기 할머니들이 계속 북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춤춰요. 그래서 헌팅할때도, 그 양로원이 섭외되서 한거니까, 그 안의 사람들이 출연했고, 그런데 그날 그걸 찍는데, 먼저 할머니들이 안에서 노래하는 걸 찍었죠. 그리고 두 사람 (김동호 위원장과 할머니)가 있는데, 노래하는 소리로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어요. 그 때, 한 번 지나가면 더 재밌겠다. 행동으로,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할머니들) 춤추며 지나가도, 이 두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그 감정은 하나의 감정이고, 재밌어보이고, 그래서 그날에 그거 찍을 적에 몇 개 잡지의 기자들이 왔어요. 왔는데, 그거 보며 한 기자가. '너무 <망종> 너무 비슷하다'고, 장면 비슷하다고. 그래서, <망종>은 내 작품이길래. 내꺼 내가 한 번 베끼는 거라고 했어요. 큰 죄는 아니라고. (웃음) 그랬는데, <망종>의 감정과는 전혀 다르고, 하여튼 그렇게 한 번 지나가는 거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감독 작품에서 그 장면이 나온걸 내가 하면 아닌데, 내 작품이니까 그렇게 한 번 해 보자.
양 : 그 장면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하지만 <이리>라는 영화가 즐거운 영화는 아니잖아요. 당시가 77년도 잖아요. 이리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가, 박정희 정권에서 77 년도를 '총화약진'과 '균형발전'을 기치로 내세웠어요. 이리가 전북 지방이잖아요. 당시 공사용으로 다이너마트를 운반하다가 그렇게 사고가 났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리>에서 진서가 구토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오빠가 전경에 있고, TV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장면이 나오고, 뒤 쪽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 때는 이미 해병전우회 사람들에게 겁간을 당한 후고요, 당선 발표가 되면서 일어나서 구토를 하죠. 그리고 감독님 영화에서 또 한 번의 구토를 목격한 것은, <경계>에서 주인공이 울란바르트로 딸을 만나러 갔다가, 술을 혼자 마시고서, 광장에서 구토를 하잖아요.
장 : 그 광장이, 몽골이 사회주의 나라잖아요.
양 : 공사 중인 현장으로 보였어요.
장 : 그게 공사 중인게 아니라, 다시 재공사하는 국회의사당이에요. 그 광장이, 중국으로 말하면 천안문 광장. 사회주의 나라의 중심. 에는 항상 광장, 소련도 그렇잖아요. 거기에서 토하는 거죠.
양 : 그 앞에 말을 탄 사람의 황금색 동상이 있었죠.
장 : 몽골의 민족의 영웅이죠.
양 : 사실 저는 그 장면에 어떤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주는 감정은 굉장히 색달랐거든요. 그 때 이 남자가 균열되고 있는 상태였잖아요. 자신에게 찾아온 순희 라는 여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고, 애정도 느꼈다고 봤어요. 그리고 딸과 아내가 있는 울란바르트로 와서 딸의 모습을 보고 아마도, 자신의 그러한 상황 때문에 구토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제 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경계>의 구토는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죠. 그런데 <이리>에서는 외적인 상황. 그러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해요. 실제로 저도 그 당선 방송을 보면서 구토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이리>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감독님께서는 중국 교포 2 세잖아요. 감독님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감독님께서 느끼시기에도 흔들리는 아주 작은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굳이 <이리>라는 영화를 찍으셨던 시점을 그 당시로 잡으셨던 이유가 있었나요. 그러니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감독님의 관심이 반영된 것인가요.
장 :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찍을 적에. 딱 선거할 때였어요. 찍는 날도 그날이고, 그렇게 다 찍었는데, 그 선거라는 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날에는 교통도 문제가 나오고, 하여튼 촬영할 때 불편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거라는 게, 중국에는 선거가 없잖습니까. 사회주의 국가니까. 그게 재밌어 보이고, 원래는 선거까지, 투표 하는 거 까지 찍으려고 했는데, 섭외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국영화를 찍는데, 한국 냄새? 한국의 현장, 냄새가 나야하는데, 지금 딱 이게 (선거) 발생이 하는데, 지금 내가 몰라도, 객관적으로 찍자. 그랬죠.
그리고 몽골의 국회의사당? 다른 사람은 모르지 않습니까. 설명도 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의미를 내가 두는 게 아니고. 사람이 토하면, 보통은 어떤 공간에서 토할까. 토할 때에도 공간을 선택해요. 구석에, 아니면 전봇대. (웃음) 하는데, 가끔 그 공간에서 토하지 않는데 하죠. 저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됐으면, 공간의 선택도 없이 해야 할까. 이상한 감동이 있어요. 그 넓은 광장에서 정말 선택도 못하든지, 아니면 안하던가. 그런 남자의 고독감이 들고 그랬어요.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방송을 넣고 진서가 구토를 하는 건, 관객이 물어본 적도 있어요. 혹시 정치적인 의도냐. 그건 진심으로 말하면 없다. 영화를 만들 때도 만드는 사람은 자기 모르는 일에는 아무소리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진실한 게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서 그날의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되서, 딱 그시기에 진시가 그렇게 되서 토하는데, 다른 사람이 당선되도, 똑같이 토하는 장면을 넣을 거에요.
양 : 이리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제가 다섯살 때 였어요. 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어머님께서 통곡하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이리>를 보면, 군인 모자를 쓴 굉장히 강해 보이는 늙은 남자가 해병전우회 앞에서 내리면 차문 열어주고 도열하고 경례하잖아요.
장 : 그 택시에 탄 분이. 그게 누군지 알아요 ?
양 : 저도 그게 궁금해서 크레딧을 열심히 봤어요.
장 : 배우 누군지 몰라요 ? 그게 정지영 감독이에요. <하얀전쟁>.
양 : 저도 크레딧에서 정지영 감독님 이름을 보고선 어디서 나왔나 다시 찾아 봤는데, 워낙 가려져서 짐작은 했지만, 너무 모자를 눌러쓰셔서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데 턱이 굉장히 강해 보여서, 저분인가. 생각은 했죠.
장 : 정지영 감독님이 <하얀전쟁>을 찍어가지고, 그 시기에 베트남전우회에서 항의를 하고, 극장을 부순다. 별거 나왔어요. 그런데 내 영화에 와서 출연 해 주십쇼 했는데 무슨 역이라고는 말 하지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 그런 역이니까 '또 나를 고생시키려고' (웃음) 그런데 굉장히 잘했죠. 그래서 '할 수 없이 감독님 운명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어요. (웃음)
양 : 사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또 정치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많이 흉내냈거든요.
장 : 아 그래요?
양 : 예. 그랬죠. 심지어는 박대통령이 자주 쓰던 선글라스도 쓰고, 대선 당시에는 그런 거 쓰고 나타나고 그랬죠. 사실 좀 유치하고 웃겼는데, 그게 또 먹혔잖아요.
장 : 아, 비슷하게, (웃음)
양 : 그런데 <이리>를 보면 귀환하는 것들, 돌아오는 것들이 있어요. 해병대 전우회를 봐도, 베트남전도 이미 오래전에 벌어졌던 일들이고, 그 사람들이 마치 망령처럼 도시의 한 구석에 살고 있고, 진서의 상태도 사실은 이리 폭발 사건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거잖아요. 그리고 박정희를 흉내내는 대통령의 취임. 그런걸 보면서. <이리>에는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뭔가 그렇게 돌아오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원했든 원하지 않든. 한국 사람으로서 볼 때 말이죠.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런데 장률 감독님의 기사를 찾아보면, 이방인, 경계인 이런 표현들이 많은데, 외부인이 아닌 경계인으로서, 중간자로서 한국사회를 보시는 부분이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이 대부분 불행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감독님께서 특별히 삶의 불행에 대해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 제가 어릴적에, 사는,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들, 내가 목격한 일들이 불행한 걸 많이 보게되요. 그래서, 어떤 속에서 살고 그러면 어떤 태도가 나와요. 나도 행복한 영화는 찍고 싶은데, 행복을 보질 못했어요.
양 : 말씀하신 것 처럼 보고, 아는 것만 찍게 되신다는 것이죠.
장 : 보고, 아는 것만 찍는 것과는 조금(다른데), 나의 생활 바탕에 계속 느낄 수 있는, 진서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관심이 가요. 부자들은 내가 모르니까, 세상에 부자 안해도 사람 좋은 사람 많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내가 알았으면 그런 사람들을 찍었겠는데, (다른) 감독들 영화를 봐도, 자기 출신과 가깝게 찍어요. 왕가위 감독 같은 경우 영화 잘 만들지만, 좀 부르조아 같잖아요. 영화 잘 만드는데, 공간의 선택도 그렇고. 자신의 출신과 관심에 연관되서 찍고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홍상수 감독 영화 보세요. 재밌게, 흥미롭게 찍잖아요. 그런 생활을 내가 잘 모르는데, 그래도 찍어서 감동됐다. 그럼 된 거에요. 그런데 나는 이런 생활밖에 알지 못하니까, 계속 '쌍놈'영화를 찍어야죠. (웃음)
양 : 어느 정도는 영화가 자신의 반영이라는 말씀이시죠.
장 : 그거, 피할 수가 없죠. 어떤 놈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고.
양 : 감독님께선 소설을 쓰셨잖아요. <망종>을 보고 나서, 장률 감독님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놀라웠던 것이, 이창동 감독님과도 교류가 있으셨고요. 소설을 쓰신 분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창동 감독님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죠. 그에 비해서 장률 감독님 영화는, 저는 개인적으로 좀 비어있고, 침묵을 다루는 영화들을 선호하는데요. 감독님의 영화에서 그런 요소들을 많이 발견이 되죠. 두 분 모두 소설을 쓰셨던 분들인데, 왜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은 이야기 보다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 말을 하려면 침묵이 토대가 되어야지 진짜 말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궁금했어요. 왜 감독님은 이야기 보다는 과묵하게 침묵 속에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장 : 내가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드니까. (웃음) 그건 취향인거 같아요. 취향이고, 말이 많은 영화, 탄탄한 이야기, 빈 공간이 등장하고,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건 아니고, 이런 탄탄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사람의 나약한, 무너지는, 그게 다 흘러나오면, 탄탄한 이야기와 그게 붙으면 재밌어요. 또 빈 공간이나 과묵하다? 하는데도 잔잔히 감정이 고여 있으면, 그것도 재미있고, 다 좋고.
양 : <망종>의 경우에, 계속 고정된 카메라로 찍으시다가,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 순희가 창문을 내다보는 씬 부터 카메라를 핸드헬드로 바꾸셨죠. 그장면의 어떤 이질감이랄까요. 계속 고정된 시점의 장면들을 보다가 순희를 멀찍이 떼어두고 보셨잖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순희의 뒤를 맹렬하게 쫒아가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감이나 힘, 감정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 때 감독님께서 카메라를 움직여야겠다고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순희의 감정을 잘 안보여 주셨잖아요.
장 : 그러니까, 사람이 그런 사람을 쳐다볼 적에는, 그 사람의 고통, 변화 모든 게 계속 고정적으로 볼 수 있어요. 자기가 참아야 하니까, 그런 삶을. 그런데 어떤 시점에서는 폭발하고 무너지는 시점이 있어요. 그런데 순희의 생활을 보면 아들 죽고, 쥐약을 (김치에) 넣고, 내나 순희 본인이나 참고 계속 냉정하게 볼 수가 없어요. (완전히) '가뿌리는'데. 사람이 가뿌리는데 감정이 가만있으면 아니에요. 무슨 생각했냐면 그때는. 고정한 거 깨버리고 따라가 보자, 어디까지 가나.
양 : 그 부분이 굉장히 암울한 엔딩이죠, 그런데도, 어떤 공간을 이동하다가 공간의 질감이라던가 질량 같은 것들이 바뀌면 시각적인 해방감을 느끼잖아요. 그 장면에서 순희가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거꾸로 나가는 순간 녹색의 공간이 펼쳐지죠. 아직 여물지 않은 초록색의 보리밭이. 그 장면이 너무나 암울한데도, 감독님께서 순희라는 사람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어떤 종류의 위무를 건네시는 것 같았어요.
장 : 그 보리밭의 절반은 만든 겁니다. 원래는 역이에요.
양 : 네. 그 공간의 이질감이 독특했어요.
장 : 역인데,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데, 거기에서 좀 다른 공간, 다른 생각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정신 나가면 가다가도 옆에 안 보이지 않잖습니까. 순희의 그때의 감정이라면. <망종>에서 녹색을 계속 피했어요. 거리의 나무도, 다른 색으로 칠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도 그래도, 녹색이 생명과 관계되는 거잖아요. 그걸 순희에게 줘 보자. 그리고 창호가 연에 뿌리던 파란색. 그 색깔은 중국에서 보면 공장의 색깔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끝나기 전에 어떤 색을 보여주고 끝내주느냐. 생각해 보니까. 그 역 앞에 사람들이 있고, 더 멀리 보리밭이 있었어요. 그래서 섭외해서 그 앞의 부분에 보리를 심었어요.
양
: 감독님의 영화 속에서 사람의 몸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남자들을 자주 벗기시죠. (웃음) <망종>같은 경우는
남자들의 몸이, 벗겨 놓으면 참 초라했습니다. <중경>도 그렇고. 경찰관도 벗겨 놓으니까 전혀 경찰관이라고 알아볼 수
없고 초라해 보이죠. 그런데 <이리>에서는 할아버지가 목을 매달아 돌아가시죠. 저는 그 몸이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죽은 시체였지만. 시간을 들여서 만든 몸이 아니라, 세월이 쌓여있는 몸이었거든요. 그 장면이 놀라우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전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몸을 드러내셨던 건 어떤 이유가 있으셨나요.
장 : 사람이 할아버지도, 진서를 어떻게 보면 좋아했잖습니까. 진서가 누워 있을 때, 냄새도 맡고, 그런데 손을 내지는 않고, 기본 윤리는 지켰고, 원래는 인생이 올 때는 발가벗고 오는데, (죽을 때도) 발가벗고 가야되지 않습니까. 가는 사람이, 그런 용기? 대부분은 돌아가면서도 다 입고, 허위적인 것들을 가지고 가는데, 그 할아버지는, 나의 마음속에는 자기 세상에 있는 고독을 이기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세상(삶)을 지켜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저 사람이 갈 적에, 벗을 수 있다. 다 벗어 버리고, 내 머리 속에 그림은 옷을 입고 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 벗고 가야. 내 마음 속의 그림에 맞고 그래서, 그 노인과 설득 하는데, 많이 얘기 했어요. 그래서 나의 가족 얘기도하고, 내 아픔도 얘기하고, 그랬는데, 하겠다.
양 : 그럼 그 분은 양로원에서 마찬가지로 섭외 하신 건가요?
장 : 아, 그분만 양로원이 아니라, 전주의 전문은 아니고, 직장은 무슨 농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인데, 연극 활동을 해요. 직장인 연극. 그런데 퇴직할 나이는 다 됐는데, 정식 직장인지 그건 잘 모르고, 임시로 거기서 봐 주는지, 그런데, 연극을 좋아하고, 발표도하고.
양 : <이리>와 <중경>이 연결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마지막에 중국에서 오는 강사가 <중경>에서 나왔던 '수이'가 그대로 나왔어요. 그런데 수이에게 '니 하오마' 하면서 인사를 하잖아요. 진서는 죽은 것 맞는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거든요. 마치 거기에 진서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랄까요.
장 : 그 질문이 참 많은데,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는데, 죽음이라는 거는, 우리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교만하게 이것은 죽음이다, 이거는 살았다. 애매모호 하니까, 그래서 그걸 놓고 스텝들하고도 쟁론이 많았어요. 어떤 스텝들은 그냥 태웅이가 진서를 죽이고 건축 모형을 태워버리고 끝내는게 영화의 힘이다. 그러기도 했고, 그런데 내 감정으로 볼 때, 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 공간. 그 다리, 진서가 앉아 있는 다리. 그때도 나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이 공간에서 쑤이가 들어오고, 은서가 들어와도 돼잖습니까. 진서가 그 공간에 있는가 없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죽었을 수도 있는데, 그 공간에 진서가 없었으면, 내 자신의 감정에 견디지 못했을 거에요. 죽었다면 죽었는데, 그 시기에는 그 공간에 나타났다. 그렇게 열어놓고 그 공간을 생각했어요.
양 : 지금도 다리를 말씀하셨는데, 감독님 작품에는 다리가 유달리 많이 나옵니다. <망종>에서도 순희가 김씨를 처음으로 불러낼 때, 김씨가 주황색 옷을 입고 다리위에서 뭔가 점검을 하고 있을 때 순희가 불러냈고, <중경>에서도 경찰이 벗고 뛰는 다리가 있고, 쑤이가 지나갈 때, 뒤 쪽으로 철골 같은것이 올라가고 있는 커다란 다리가 있어요. 그리고 <망종>에도 다리가 나오고, <이리>에서도 다리가 나오고요. 저는 의미를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요, 다리에 대한 감독님의 취향 같은 것이 있으신가봐요.
장 : 다리를 좋아하죠. 다리라는 공간이,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연계하잖아요. 그런데 보통 길로 걸어가는 감정과 다리를 걷는, 민감한 사람이면, 다리를 걷는 감정이 달라요. 다리는 감정이 더 복잡하죠. 슬프든지 고독하든지, 다리 밑에는 허공이니까. 허공을 연결을 해 주는데, 그 위로 사람이 지나가는데, 감정이 변해요. 제가 젊을 때는 슬픈 일 있으면 다리를 지나가요. 영화를 찍다가도 재미있는 다리가 있으면 내 감정과 맞는가를 찾는 거에요.

양 :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성수대교가 예전에 무너졌잖아요. 바로 전날, 밤에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넜거든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다리 가운데가 푹 꺼져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는데, 좀 멍했죠. 기분이. 정말 몇 시간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라 졌다는 기분.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들에서는 다리가 비교적 낡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새로 만들어진 다리들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거든요. <중경>같은 경우가 그렇구요. 낡은 다리들, 지금 공법이 아니라, 예전에 콘크리트나, 아니면 그냥 돌. 그런 다리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오래된 다리들에 대한 선호가 있으신건가요 ?
장 : 새로운 다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양 : 새로 만든 다리는 사람들이 못 지나가죠. 차가 지나가지.
장 : 맞아요. 그리고 다리도 세월의 묻은 냄새, 그거 보면 전혀, 건물을 봐도, 지금 새 건물 보면 어색하잖습니까. 그런데 40 년 전의 건물인데 그 때는 되게 어색해요. 지금 보기는 무난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그게 뭐냐면 세월이 거기에 남긴, 흔적들이 어색한 것을 편하게 만든 것 같아요.
양 :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세월이 쌓인 공간들이 많이 나오죠. 그런걸 보면서 '저기서 어떻게 사나'가 아니라, 저렇게 고즈넉하게 살면 좋겠다는 감정 같은 것이 들어요. 사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좀 불편한 집은 맞는데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망종>에서 순희가 마늘을 빻을 때, 굉장히 작은 의자에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일을 하고, 깍두기를 썰을 때도 그렇거든요. 단순한 질문인데요. 중국인들이 워낙에 그런 의자를 많이 써서 그런 것 인가요. 아니면 감독님께서 그런 자세가 필요하셨던 것인가요.
장 : 그런 의자가, 진짜 이거는 내 집이다. 내 여기서 계속 산다하며는 그런 의자를 안 써요. 떠나는 사람들은 금방 편한 걸로. 이렇게 거기 정착하지 않고 자꾸만 떠나는 사람들의 집에 가 보면 의자나 뭐나 다 불편해요.
양 : <경계>에서도 소젖 짤 때 쓰는 조그만 의자가 나오죠.
장 : 그렇죠. 그래서 미술팀 보고, 그런 의자 구해오라. 이 사람 인물과 맞으니까.
양 : 전체적으로 보면 감독님의 영화는 <망종>에서 <이리>까지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거든요. <이리>에서 진서가 시장에서 목도리를 사는 장면을 보면 카메라가 굉장히 가깝게 다가가요. 심지어는 다른 영화들에서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없었어요. <이리>에서는 진서의 시점에서 카메라가 내려갔다 올라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독특하고, 이질감이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인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 진 것인가, 아니면 그전에는 공간이 더 중요했는데, 지금은 인물이 더 중요해 졌는가, 이런 변화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장 : 그 바탕에는 자연스럽게 변한 거고, 농담 같지만, <경계>를 찍을 때, 배우가 모니터를 보면, 내가 왜 점점 카메라에서 멀어지는가, 감독이 나를 싫어서 이러나, 미워서 이러나. <이리> 찍을 때 생각해 보니까, 배우를 너무 멀게 하면, 배우를 한 놈도 하지 않을거 같아서. (웃음) 그래도 내가 카메라를 앞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뭐냐면, 진서라는 인물은 조금 우리랑 다르지 않습니까. 바보든지, 천사든지. (이리) 폭발 사고 때문에 그리 됐는데, 그런데 보통 보는 영화에 나오는 카메라처럼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가까이) 잡아 봐요. 그럼 사람들 너무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독들 그렇게 잡아요.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그게 아니에요. 막 불편해지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배우)가 반응이 나와요. 그런데, 바보? 천사? 는, 원래는 사람과 사람 정상거리가 이렇게 되는데, 이렇게 코앞에 가도 이 사람은 자연스러운 거에요. 그게 나의 이유 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경계>에서는 배우가 싫어서 멀어 지는 게 아니고, 몽골에서 우리 둘 처럼 이 거리에서 말해도 되게 어색해요. 그 넓은 땅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만나면, 불편한데, 멀리 서서 이야기하는 이런 거리가 그 땅에는 맞아요. 그러니까, 공간에 맞춰야한다. 그런데 너무 이야기에 맞추고, 너무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물론 그런 영화들에서도 잘 만든 영화들은 많은데, 내 보기에는 조금 불편해요.
양 : <경계>에서 마지막에 창호가 '큰 길이 있어요 어머니'하고 말하고 카메라가 회전 했는데, 파란 깃발이 걸려 있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 아무리 봐도 중간에 이음매가 없는데, 카메라가 360 도 돌아서 제자리에 오면 없던 파란 깃발이 걸려 있거든요.
장 : 그것도 궁금해 하는 사람 많은데요, 그렇게 물어본 사람들이 내 답을 들어보면, 실망해요. 두 번 찍은거죠. 한 번, 파란 깃발을 달지 않고, 360 도를 찍고, 또 한 번은 천을 걸어놓고 똑같은 속도로 360 를 돌고, 그걸 이었어요. 많은 감독들이 그걸 질문해요. 어떻게 했는가.
양 : 감독님께서 어릴 적의 경험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 본적 있을 것 같은데요, 말을 하지 않고도 소통이 될 수 있다면.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언어화 되지 않은 소리들이 많이 나오죠. <중경>에서 지하철 걸인이 부르는 노래도 언어가 아닌 걸로 알고 있고요. <경계>에서도 몽골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입장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생경한 말은 언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죠.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앞으로도 그런, 비언어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을 계속 두실지 궁금합니다.
장 : 사람의 스타일이 크게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비워진 공간, 이런걸 보면 내 감정이 먼저 거길 가니까,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는 대사 이런 걸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순간적으로는 그 언어가 재밌고,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는데, 세월이 지나서 말을 다시 들을 적에는, 그 재미, 옛날 영화들, 말이 많은 영화들보면, 그 때는 자연스러운 말들이, 지금은 너무 어색하죠. 연기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당시에는 자연스러운게, 지금 다시 꺼내 보면 좀 어색하고. 그러니까 브레송의 영화에는 사람들이 다 표정이 없잖습니까. 연기를 싫어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절의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들, 지금 다시보면 그 때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잖습니까. 그 뭔가 깨지고. 그런데 브레송 것은 불편하지만, (영화의 감정이)깨지지 않죠. 마찬가지로, 말을 너무 많이 대사를 해 놓으면, 깨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게 깨지는 모습. 그러니까 브레송 같은 경우는 완벽주의자, 그런거 못 참는 사람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 같아요.
양 :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영화의 핵심이라는 것이, 말이나 연기, 이런 것 보다는 흔히 말하는 시네마틱하다는, 그러니까 영화적이라는 것이 말이나 연기를 뛰어넘은 뭔가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쪽이신가요. 그러니까, 침묵이라던가, 절제라던가.
장 : 크게 말하면, 공간. 그러니까 그 공간이 사람이 거기에서 움직여서 사람의 감정이나, 시간에서 흐르는, 그걸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게 어떻게 말하면 그게 맞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영화의 본질과 좀 더 가까운, 그 진실까지 더 가깝지 않겠는가. 그게 답이라는 건 아니고. 다른 감독들 마다 다른 것 일 테지만.
양 : 처음 질문 드렸던 <망종>에서 순희가 자전거를 끌고 가죠. 왼쪽으로 맨 처음에 가죠. 굉장히 힘들게 페달을 밟는데요, 저는 그게 오르막이라 그런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럼 반대로 내려갈 때, 그러니까 왼 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때 좀 더 빨라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원래 자전거가 구조적으로 느린 것인가, 아니면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순희의 시간만 힘들고 느리고 무겁게, 그러니까 순희의 시간의 밀도만 너무나 무거운 것이죠. 이 사람의 삶의 무게 같은 것. 그런데 다른 자전거들은 쌩쌩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 : 그때 나도 고민했어요. 어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의 감정이 그 때 그랬어요. 그렇게 요구했어요. 천천히. 순희에게는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순희에게는 빈 공간이 더 많잖습니까. 도시의 변두리, 별로 사람도 다니지 않는 곳에서 빨리 달려봤자, 삶이 변하는게 아니에요. 이 사람이 가는 속도가 다른 정상적으로 직장 있는 사람들, 현지인들의 속도보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람 걸음걸이에도 그게 나와요. 자존심, 절망, 슬픔, 자신감, 그런게 다 다르고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요. 그래서 거기에서 나는 순희의 속도를 고집해야겠다. 그랬던 거죠.
양 :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감독님의 다음 영화 <두만강>도 개봉이 되면 열심히 보고, 글로 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전우치> 이중 하나는 가짜렸다 !
개인적으로, 홍길동전보다는 전우치전의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홍길동전은 뭔가 좀 사무친 느낌이 있어서 꿉꿉한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 있다면, 최고 권력자인 왕을 마음껏 농락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전우치전이다. 그래서, 전우치전에서 '전傳' 자 하나를 빼 버린 최동훈의 <전우치>를 기대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야기와 만듬새가 얼기설기 부족하다'는, 시사회 직후 흘러나온 불평은 별로 맞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반응은 최동훈 영화의 특성을 이해 못했거나, 그 전의 영화들을 오독한 것이다. 그가 언제 이야기를 잘 만들었던가. 혹은 중요하게 여겼던가. 최동훈 영화에서 이야기는 장면들을 딱 어색하지 않을 만큼만 붙이기 위한 최소한의 재료, 그러니까, 모르타르 mortar 같은 것이다. 그의 영화의 쾌락은 숏과 신들의 충돌이 빚어내는 시청각적 즐거움에 있다. 여기에 합이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멋진 캐릭터는 양념이다.
홍상수의 <극장전> (2005)의 줌Zoom이 미학적 층위에서 '낯설게 하기'의 맥락으로 읽힐 수 있었다면, <범죄의 재구성> (2004)은 낡은 테크닉으로 치부되던 줌Zoom이 (순수한) 활동 사진적 매혹의 측면에서 (재)활용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령 <타짜> (2006)에서, 전복되는 차를 향해서 갑자기 초점거리를 좁히며 맹렬히 돌진하는 장면의 박력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전우치>를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영화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웰메이드라'는 말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죄의 재구성>도, <타짜>도 그렇듯이 최동훈의 영화는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만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작가적 야심이 충만한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박찬욱과 봉준호가 장르적 쾌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 위에 자신의 야심을 어떻게든 착종하려 했다면, 최동훈의 영화에서 우리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시선은 고정되고, 입을 쩍 벌린 채로 앉아 있던 소년을 만나는 것 같은 기시감을 경험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쇼트와 신의 순수한 운동감을 이렇게까지 잘 포착하는 감독이 또 있을까?
그리고 강동원,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마력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배우의 영역을 연기에만 한정한다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강동원은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 가장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강동원의 연기를 보기로 작정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같은 경우.
명민한 최동훈은 강동원에게서 연기라는 '봉인'을 떼어 버린다. 마치 전우치가 족자의 속박에서 풀려나던 것처럼. 배우의 육체는 스크린위에 영사되는 순간 물질적 한계를 초월한다. 강동원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가 아닌, (고전적인 의미로서) 가장 배우다운, 시네마틱한 피사체이다.
최동훈이 <전우치>를 찍으면서 '전傳'을 떼어버린 것은 이 영화의 배경으로 현대를 가져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전傳'의 제외는 단순히 현대적 각색에 대한 야심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영화를 보았다.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의 이야기 얼개는 <전우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아라한...>에서 네 명의 도인들과 <전우치>의 신선 삼인조의 캐릭터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가지 다른 것은 '절대적 힘'을 다루는 방식이다.
<전우치>에는 막판에 몰리는 주인공의 역전을 위한 <아라한 장풍 대작전> 같은 '결전병기'가 없다. 몇 가지 아이템, 그러니까 만파식적, 청동거울, 청동검이 등장하지만, 이것들은 영화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 이것들은 그저 맥거핀 같은 것들이다.) 화담의 패배와 이 세 가지 아이템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전우치>를 감싸는 기묘한 결정론의 정조. 왕을 능멸하고 요괴를 봉인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도사들마저도 속박 될 수박에 없는 어떤 종류의 결정론, 그것이 <전우치>의 세계다.
그러니까 <전우치>는 게임으로 치자면 레벨을 올리면서 최강자가 되어가는 RPG가 아니라, 몇 군데의 선택지는 있지만, 모든 선택은 이야기의 엔딩으로 귀결되고야마는 어드벤처Adventure 게임의 세계이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화담의 옆구리에는 도화 꽃이 피고, 전우치는 인경과 바다에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론일까, 아니면 고진감래. 기어이 마지막에는 여인과 (그리고 암컷 강아지이지만 남자의 모습을 한 '무엇'과)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일까. 어쩌면 최동훈은 이렇게 슬쩍 질문을 찔러 넣는 것 같다. 당신은 화담인가, 전우치인가.
영화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동시 게재.
2010년 1월 8일 금요일
<전우치> 단평
개인적으로, 홍길동전보다는 전우치전의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홍길동전은 뭔가 좀 사무친 느낌이 있어서 꿉꿉한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 있다면, 최고 권력자인 왕을 농락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동훈의 <전우치>를 기대했고, 결과는 만족 스러웠다.
'이야기와 만듬새가 얼기설기 부족하다'는, 시사회 직후 흘러나온 불평은 별로 맞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최동훈 영화의 특성을 이해 못했거나, 그 전의 영화들을 오독한 것이다. 최동훈이 언제 이야기를 잘 만들었던가. 최동훈 영화의 이야기는 장면들을 논리적으로 붙이기 위한 최소한의 모르타르 mortar 같은 것이다. 그의 영화의 쾌락은 숏과 신들의 충돌이 빚어내는 시청각적 즐거움에 있다. 여기에 합이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멋진 캐릭터의 묘사는 양념이다.
물론, <전우치>를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영화라고는 보지 않는다. (나는 '웰메이드라'는 말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죄의 재구성>도, <타짜>도 그렇듯이 최동훈의 영화는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만든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적어도 전작 두 작품은 그러했다. 쇼트와 신의 순수한 운동감을 이렇게까지 잘 포착하는 감독이 또 있었을까?
그리고 강동원,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마력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배우의 영역을 연기에 한정한다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강동원은 배우로서 연기를 할때 가장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강동원의 연기를 보려고 작정했을 때,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같은 경우.
명민한 최동훈은 강동원에게서 연기라는 '봉인'을 떼어 버린다. 마치 전우치가 족자 속에서 풀려 나듯이. 나는 그것이 최동훈이 <전우치>를 촬영하면서 가장 잘한 결정direction중의 하나라고 본다. 강동원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가 아닌, (고전적인) 시네마틱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가장 배우다운 사람 중 하나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
100106
화가가 아무리 능란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불가피한 주관성에 의해 저당잡혀 있다. 인간의 손이 게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상(畵像) 위에 어떤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게 한다. 실제로 바로크 회화로부터 사진으로의 이행에 있어 본질적인 현상은 (모방의) 단순한 물리적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색체의 모방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사진은 오랫동안 회화보다 열등한 채로 남을 것이다). (사진이) 인간을 배제한 기계적인 재현이라는 것에 의해 우리의 착각에의 욕구가 완전히 만족되어진다고 하는. 하나의 심리적 사실에 있는 것이다. 해결은 결과속에서가 아니라 그 결과를 생기게 하는 과정 속에 있었다.
- 그렇다고는 해도. 예컨대 데드 마스크의 주형과 같은 좀더 조형성이 적은 장르의 심리학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데드 마스크의 주형 역시 재현과정에서의 어떤 자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뜻에서는 사진을 빛의 중개로써 사물의 특징을 포착한것, 즉 하나의 주형물로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p17. 시각과 언어.
2010년 1월 4일 월요일
<Nine> 단평
나는 이 영화가 좀더 글램Glam한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러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생각보다 어둡고 무거웠다. 화려한 군무의 뮤지컬 씬에서조차 이상한 어둠이 감돌았다. 이 영화는 감독 귀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영화(만들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했던 것 보다 덜 화려한 이 영화를 사실은 반쯤 심드렁하게 따라가다가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영화의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진심으로 이 영화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재단의 해외 기부 창구였던 Paypal 계정 압류.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갑자기 '불가' 딱지를 붙게되는 경우를 이 정권 들어서, 너무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다. 이명박이 당선 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공포스러웠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욕지기가 치밀고 구토감을 느꼈다. 그가 대통령이 된지 2 년이 지났지만, 그러한 감정과 반응은 더 심해지고 있다. 단순히 그의 얼굴이 '쥐 같이 생겨서'가 아니다. 그가 구현하는 가치가, 그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의 의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정말 논리적으론 설명이 어려운 격렬한 적대감을 느꼈다.
그런데, 어쩌면 故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고 故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되었을 때, 그를 반대하던 이들의 적대감도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이걸 두고 나쁘다 좋다를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치고하, 선과악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적대감을 이유로. 그걸 맘대로 발산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내 블로그를 통해 '가카'에 대한 불만을 마구 쏟아 내지만, 그러면서도 멈칫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내 행동의 당위성 말이다.
여하튼. 이야기가 좀 돌아가는 것 같은데. 노무현 재단에 대한 Papal 을 통한 기부가 불가능 해 졌다는 소식이다. 위에 쓴 고민과는 별개로. 참 진짜 가지자기로 공무원들이 쓸데없이 근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거 보면 나는 정말 '선진국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비꼬는게 아니라 진심이다. 그래서 행복하냐구? 누군가 '당신'이라면 그럴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미디어 한글로 님의 블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