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진을 잘 보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 치켜들던가 혹은 눈을 감는 것이 좋다. “이미지에 선행하는 조건은 시선이다”라고 야누흐(Janouch)는 카프카에게 말하곤 했다. 카프카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물을 촬영하는 목적은 그들을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쫒아내기 위해서이지. 나의 이야기들은 눈을 감는 하나의 방법이네.” 사진은 말이 없어야만 한다. (우뢰 같은 사진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려 깊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의 문제이다. 절대적인 주관성은 하나의 상태, 즉 침묵의 노력 속에서만 얻어진다. (눈을 감는 것은 영상으로 하여금 침묵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진은 그 흔해빠진 수다스러움으로부터 끌어 낼 때에 나를 감동시킨다. ‘테크닉’ ‘현실감’ ‘르포르타쥬’ ‘예술’ 등등이 바로 수다스러움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 눈을 감을 것, 하찮은 세부로 하여금, 홀로(푼크툼을 발견케 하는) 감정적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도록 내버려 둘 것.
미하일 하네케의 <늑대의 시간>의 마지막 시퀀스가 끝나면, 우리는 압도적인 침묵을 만나게 된다. 아무 음악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엔딩 타이틀 롤. 처연하고 무심하게 울리던 열차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직은 영화가 끝난 것을 안도할 차례가 아니다. 힘차고 명랑한, 혹은 슬픈, 울려 퍼지는 엔딩 타이틀 음악이 흐르지 않는, 기이한 침묵의 마지막.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마치 눈을 감은 것 같은 이 상태. 듣는 것으로 부터의 침묵, 말하는 것으로 부터의 침묵. 침묵을 눈으로 본다는 것.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부터는 현실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 것. 마치,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영원히 지속 될 것 같은 <히든>의 마지막 장면처럼 스크린을 넘어 스멀스멀 현실로, 현실 속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들어오는 이 낯선 감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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