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4일 수요일

깊은 우물

 

 

 

깊은 우물
 

 


그곳에서 나는
예의바른 그림자처럼
흐릿하고 가벼웠다
깜박 잠이 들어버렸던
간밤에
물푸레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거실을
내려다 보았다
거칠게 옹이진 가지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는데
거실은 깊은 우물처럼
투명하고 조용했다
바람이 할퀴고 지나던 창밖은
어느새 적막해졌다
나는 말없이 얇고 창백하게 누워 있었다

두눈을 가리고 있는것은
잠이 덜 깨어서가 아니라고
너는 말했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안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몰래 다가가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한척 덤덤하게 뒤돌아 섰다

두껍고 과묵한 문틈 사이로
껍질을 까다만 귤 처럼

안녕 두글자를

던져두었다.

 


 

- 어느 해, 3 월 31 일에 쓰다.

만일이란 없지만, 그날 그곳에 조난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은 마음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댓글 2개:

  1. 거실에의 조난, 인가요.

    아직 방안에 도달하지 못한 문틈,

    우물 바닥에 닿지 못한 그 중간의 어디쯤,

    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막혀있는데, 다만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라는 소리만이 경계도 없이

    바닥까지 팔랑팔랑 내려가는 게 보입니다.

    답글삭제
  2. 거실이 아니라 '섬'에 조난되었어요.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