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9일 화요일

밤 눈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밤 눈, 기형도






댓글 2개:

  1. 아, 저도 정말 좋아하는 시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노래한 시인이, 우리에게 이런 빛을 밝혀준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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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섬섬옥수. 문장을 갈고 갈고 갈고 또 갈았던 시인의 손길이 보이는 것 같죠. 오늘 같은 밤에는 딱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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