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속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프레임 내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일라이가 술에취해 운전하는 아버지를 우격다짐으로 조수석으로 우겨넣는 장면에서 감독은 일라이를 아예 화면의 바깥으로 밀어놓고는 아버지의 횡설수설하는 웅얼거림에대해 무관심한듯 툭툭 쏘아 대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그 둘 사이의 대화를 구성한다. 지각한 그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교장선생도 한 화면내가 아닌 독립적으로 잘려진 커트에서 일라이를 어쩌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영화속의 대화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구성된다. 허리우드의 영화에서 익숙해진 어깨걸고 찍는 장면은 단 한장면도 나오지 않으며 몇몇 장면에서 어른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어느 한쪽은 반드시 화면밖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감독은 이런 장면들을 통해 선하고 착한 아이들과 나쁘고 오염된 어른들의 이분법적인 도식이나 그들의 대화가 단절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일어난 것이다라는식의 진술을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에겐 너무도 익숙해진 '어떤'것들에서 그 아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어떤것을 자꾸 떼어내려는 몸짓에 가깝다.
<엘리펀트>에서 인물들의 등뒤를 따라다니던 카메라는 알렉스와 에릭의 총격장면에서는 더이상 그들의 등뒤에 서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등뒤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각 인물들의 시점샷과 유사한 효과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렇게 등장인물 개개인의 시점과 시간들은 영화속 우연한 어떤 지점들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알지 못하는사이에 미약하게 포개지듯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일상의 속도는 고속촬영을 통해 길고 느리고 충분하게 연장된다. 그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어깨를 스치며 길게 끌고 지나가는 그림자, 타인의 삶이 나의 삶과 무의미한것 같지만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의미로든 연결이 되어있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생의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엘리펀트>가 그려내는 삶의 겹침, 스쳐짐은 이런것들이다. 눈이 멀고 벙어리인 사람들이 바로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걸어간다. 그들 누구하나도 이 행렬을 이끌 수도 없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그렇다고 왜라는 질문도 하지 못한다. 다만 앞사람의 어깨에서 전해져 오는 미약한 움직임을따라 계속해서 발을 내딛을뿐이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의 어깨위로 -필연적으로, 알지못하는 사이에- 걸쳐져있고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짐이며 동시에 인도자가 된다.
- 너무 좋아하는 영화는 글을 쓰기가 어렵다. 조금 온도를 낮춰서 쓰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엘리펀트> 계속 연결되는 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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