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나 둘 셋 둘 둘 셋 셋 둘 넷 오늘은 좀 어떠신가요 얼마전엔 몸에 열이 좀 많이 떳어요 아주 높은건 아니지만 기분 나쁠 정도의 열감이 현기증처럼 나를 떠나지 않았죠 담당의는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당신의 상태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것 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좋다 나긋나긋 다정다감하다 그러나 나의 고통을 함께 할 수는 없다 이해와 체험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문제이다 환자와 의사는 공감을 가질 수 없다 고통은 언제나 개인적 범주의 것이다 그래도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해 또박 또박 담당의는 지금까지의 경과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말해준다 나는 얌전하고 음전하고 조용하고 정직하고 예의바르기로 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마치 메모라도 하고 있는 것 처럼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꼭꼭 씹어삼킨다 꿀꺽꿀꺽 울컥울컥 그래야만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먹으라는 약도 꼬박꼬박 먹는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두 달뒤에 또 봐요 인사를 나누고 일어선다 친절하다 더할나위 없이 다정하다 그녀의 손이라도 꼬옥 잡고 싶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의 퍼스널 터치는 금기다 추해지지 말자 왜 이래 싸구려처럼 나는 한 발 물러서며 꾸벅 인사한다 돌아선다 스르륵 문이 닫힌다 바깥에는 아픈 사람들이 그득하다 환자를 데리고 온 가족들의 수심이 그득하다 머리에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닝겔 바늘을 꼽은 아이가 지나간다 아이는 제 수족처럼 당연하게 그것을 머리에 달고 다닌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고통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고통은 고통스럽다 그건 아프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그래도 죽음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정말로 두려운 것은 지금의 상태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나도 모르게 내가 나를 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처방전의 약이 나오길 기다린다 약사가 부른다 약사가 식사 후 30 분 이건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 아침과 저녁 두 번 먹으면 되요 여기 음료수 하나 마시고 ? 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요즘은 의사도 약사도 서비스 정신으로 투철하다 어쨌든 슨상님 하고 매달리지는 않아도 될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주신다 빳빳한 현금으로 값을 치르고 돌아선다 바이타민-씨가 풍부하게 함유된 드링크를 호기좋게 한 모금에 마시고 빈병통에 던져 넣는다 조던이 울고갈만한 클린 샷 아참 현금 영수증 카드를 내미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연말에 정산 받으면 맛있는 호두 파이를 사먹을테야 다짐하는 순간 제대로 가방에 넣는 것을 잊어버린 약봉지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2009 년 2 월 16 일 부터 2009 년 4월 20 일 까지 찢고 찢고 찢고 또 찢어야만 하는 약봉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 어느 개그 프로에서 인맥을 과시하며 으스대던 남자가 쭈아악 펼쳐내던 명함첩 처럼 촤르륵 펼쳐진다 명함속 이름들이 결코 그 남자의 것이 될 수 없는 것 처럼 하나 둘 셋 둘 둘 셋 셋 둘 넷 옹기종기 모여있는 약 알갱이들의 서걱이는 친밀함은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중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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