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3일 수요일

바리케이드

 

 

역사에 대한 저항은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모든 혁명적 저항은 사람이 역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 싸움 끝에 자신들이 그러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역사는 더 이상 시간을 독차지할 수 없게 된다.

 

길이가 도시 전체의 폭만큼 긴 어마어마한 단두대의 칼날을 생각해 보라. 그 칼날이 내리쳐 그 아래 있는 모든 것 - 벽, 철로, 마차, 상점, 교회, 과일 바구니, 나무, 하늘, 포장된 길 - 을 싹둑 잘라 버린다고 생각해보라.

 

싸울 태세를 갖춘 모든 사람들 바로 몇 미터 앞에 그런 칼날이 떨어졌다. 자기만 볼 수 있는 깊디 깊은 균열의 깎아지른 벼랑이 코앞에 닥친 것을 다들 느낀다. 그 균열은 살을 깊이 파고든 베인 상처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눈앞의 상황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처음엔 고통스럽지 않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서서히 고통을 가져온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는 남녀의 머릿속에 지금 자기들이 하는 행동, 자기들이 하는 생각이 아마 마지막 행동, 마지막 생각이리라는 예감이 든다. 방어벽을 쌓아가는 동안 고통은 조금씩 커진다.

 

... 바리케이드에서 고통은 끝난다. 완전한 변화. 그것은 군인들이 오고 있다는 지붕 위의 고함소리로 완성된다. 갑자기 후회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진다. 바리케이드는 그 앞에 막아선 사람들과 이들이 평생토록 시달린 폭력 사이에 놓여 있다. 후회할 게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과거 삶의 정수가 지금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바리케이드 이쪽은 벌써 미래다.

 

- 존 버거 John Berger, <말하기의 다른 방법> p. 101-102 눈빛, 2007

 

 

 

 

댓글 4개:

  1. 존 버거 ....나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무성의하게 한 줄 만 쓰면 찌질이 소리 들을까봐 한 줄 더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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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갑자기 후회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진다.. 쿵..

    정말 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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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슈풍크 - 2010/02/04 13:04
    저도 딱 그 문장 한 줄이 마음을 때렸어요.

    요즘 미디액트, 시네마테크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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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백건영 - 2010/02/04 10:18
    두 줄 이상 쓰셔야 찌질이 소리 안 들으시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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