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섦’은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 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겐쉬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 번째 부분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 기형도,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 『문학사상』, 198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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