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르누아르는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준 편리함이 영화의 지적인 진보 및 표현의 풍부함에 반드시 상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르누아르는 <물에 젖은 물 뿌리는 사람 L'Arroseur arrose'>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편집의 부재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예술가가 주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선택한 결과일 뿐입니다. 뤼미에르의 <물에 젖은 물 뿌리는 사람>은 단 하나의 쇼트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카메라를 바꾸거나 촬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매우 불편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편집 작업이 기술적으로 훨씬 용이했습니다. 펜과 크레용, 그리고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충분한 일이었죠. 그러나 저는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보다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기술적으로 불편함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더 신경을 썼던 것이죠. 예술에서 '자유'란 어쩌면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4 <시점 - 시네아스트의 시선에서 관객의 시선으로> p35 ~ 36,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7
- 말 버릇 처럼, '영화적인' 혹은 '시네마틱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영화적인 어떤 것은 범주화 되는 것이 아니며, 고정된 이론의 체계, 혹은 기법, 혹은 문법, 여하간 그런것들이 아니다.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영화적인 어떤 것은, 개별 영화에서 발견되어지는 어떠한 태도의 지점들이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이나, 혹은 영화에 대해 쓰는 이, 또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될 수 있다.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영화적인 것을 선별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암수를 가려내는 감별사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공정한 것도, 엄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게으르고, 약삭빠른 요령 부리기일 뿐이다.
르누아르는 핵심을 아주 간결하게 파악했다. 그는 기술적 자유를 포함한, 무언가를 실행에 옮긴다는 행위에 있어서의 자유가 갖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르누아르의 지적은 오히려 현재의 시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가진다. 영화를 찍는 다는 것, 무엇에 대해 카메라를, 어떤 상황, 장면, 무언가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넣는다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행위이며 선택을 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보여줄 수 있는 것과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격렬한 운동 같은 것이다.
현재의 영화 환경은 거의 무한대의 기술적 자유가 주어진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개발되는 특수효과와 다양한 장비, 점점 실사와 CG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무언가를 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는 단순한 정경들의 나열에서 그쳐버릴 위험이 크다. 영화의 내적 논리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구축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무성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를 보면서 문자를 통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구축된다. 그렇다면 스토리의 개연성 이전에 장면의 개연성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장면의 개연성은 기술적 자유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이 바로 거기에 그러한 모습으로 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치열하고 합리적인 고민과 창작자 자신의 이해가 선행될 때 그나마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나마'라는 전제를 다는 것은, 전술한 모든것들이 가능하다 해도, 창작자의 뜻대로는 '절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영화 현장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는 위대한 타협들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스토리보드를 열심히 그리고, 촬영계획을 면밀히 작성하고, 매 시간과 분초 단위로 현장을 제어하려 해도, 그 범위를 빠져나가는 어떤 지점들이 반드시 영화 현장에는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하나의 영화가 추동되어질 수 있는 진정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들이다. 우리가 보게되는 영화는 결국 이러한 선택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영화가 점점 더 재미없어 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영화환경은 (자본과 시간만 뒷바침된다면) 그야말로 못 할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웰메이드'영화에 대한 환상은 영화의 외양적 화려함과 완성도(?)에는 한 몫을 했을지 모르지만, 거의 비슷한 생김새의 영화들이 양산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흔히 말하듯 할리우드 못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도, 또는 한국 영화적인 뭔가가 있다고 딱히 말하기도 어려운 고만 고만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극장가는 정말로, 말할 수 없이 따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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