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영진위 공모결과를 보면서



이야기 하나. 그러니까 1980년이었던가? 81년도였던가. 당시 대입 예비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140점 정도를 획득한 학생 하나가 서울법대에 입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 서울법대의 커트라인이 310점 선이었음을 감안할 때 경천지동할 일이었지만, 이는 그해 서울법대가 ‘미달’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그때마다 이 친구는 “남들은 비웃지만, 보란 듯이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패스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입학 6개월을 못 넘기고 그는 자퇴하고 말았다. 법학서적 한 페이지를 보기 위해 일일이 옥편을 찾아봐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 없이 일시적 요행과 기회의 결합으로 이룬 성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상누각이다.

이야기 둘. 월스트리트의 컨설턴트들 사이에서는 소위 ‘그릇론’이라는 게 존재한다. 여기서 그릇은 사람의 도량, 능력을 의미한다. 즉 입사해 1~2년이 지나면 그 사람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결정 난다는 것이고 이는 거의 정확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3년이 지나서도 복사기 앞에 서있을 사람과 자기 방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맞을 사람은 의외로 쉽게 판가름 났다. 창조적 마인드와 긍정적 태도와 그것을 지탱하는 기본기를 갖췄느냐에 의해서. 예컨대, 매출 10억도 못 일군 소기업 사장에게 1,000억짜리 회사의 경영을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생각처럼 자리를 보전하기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규모가 다르고 생각의 폭이 다르며, 의사결정과정의 프로세서가 다른 집단에 적응하고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미 그는 10억 이하의 규모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충실한 기본기이다. 경영자의 자세와 태도와, 무엇보다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기업윤리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야기 셋. ‘월든’ 호숫가로 떠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 개의 의자를 만든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또 하나는 ‘친구’를 위해 나머지 하나는 ‘사교’를 위해서였다. 의자란 권력의 상징인 동시에 근대화의 산물이다. 사람마다 자기 자리가 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라고 할 때의 자리는 자기 의자를 말한다. 적어도 학생 때는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자리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 자리가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는 반면, 애초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또 어떤 이는 높고 크고 화려한 의자만을 꿈꾼다가 평생 제대로 된 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때 의자는 권력을 상징한다.



이야기 넷.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의 공모 결과가 나왔다. 기존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선정된 단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기세다. 사전내정설이니 설립된 지 며칠 안 된 단체에 특혜를 주었느니, 갖은 이야기가 난무한다. 특히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단체의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전용관 사업은 우리가 설사 대상자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계속 꾸준히 추진해나갈 사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꾸로 묻고 싶다. 그렇다면 왜 2009년에 들어와서야 단체를 결성했는지,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인지를 말이다. 진심과 속내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새로 선정된 단체에게 축하를 보낼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드시 실패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옥편을 찾는 일조차 버거워 자퇴한 서울법대생이나 자기 분수와 능력을 무시하고 덥석 받아든 밥그릇이 될 것만 같아서, 10년 설움을 한 방에 떨쳐내고자 발버둥친 결과로 얻은 ‘임자가 따로 없는 회전의자’에 앉은 자들의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아서 씁쓸할 따름이다. 스스로 그릇을 빚지 못한 기본이 부실한 자들이, 분에 넘치는 의자에 앉아 전리품에 넋을 잃고 있을 동안, 이 땅의 독립영화와 영상문화가 부잣집 서재의 감사패처럼 생색과 진열대상으로 전락할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2010.01.28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헨리 데이비즈 소로우: 세개의 의자
    나의 블로그 이웃 친구 느림보님의 글에 Henry David Thoreau 가 월든 호반에 지은 오두막과 세개의 의자 얘기가 나온다. 마침, 내가 2009년에 여행하다 들른 적이 있어, 사진을 뒤져봤다. http://slowland.textcube.com/195 이 글에 따르면, 소로우가 세개의 의자를 만든 이유 1. 하나는 '고독'을 위하여 2. 하나는 '친구'를 위하여 3. 마지막 하나는 '사교'를 위하여 라고 한다. 다음은 그 고독과, 친구와,..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