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0일 일요일

<전우치> 이중 하나는 가짜렸다 !



개인적으로, 홍길동전보다는 전우치전의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홍길동전은 뭔가  좀 사무친 느낌이 있어서 꿉꿉한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 있다면, 최고 권력자인 왕을 마음껏 농락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전우치전이다. 그래서, 전우치전에서 '전傳' 자 하나를 빼 버린 최동훈의 <전우치>를 기대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야기와 만듬새가 얼기설기 부족하다'는, 시사회 직후 흘러나온 불평은 별로 맞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반응은 최동훈 영화의 특성을 이해 못했거나, 그 전의 영화들을 오독한 것이다. 그가 언제 이야기를 잘 만들었던가. 혹은 중요하게 여겼던가. 최동훈 영화에서 이야기는 장면들을 딱 어색하지 않을 만큼만 붙이기 위한 최소한의 재료, 그러니까, 모르타르 mortar 같은 것이다. 그의 영화의 쾌락은 숏과 신들의 충돌이 빚어내는 시청각적 즐거움에 있다. 여기에 합이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멋진 캐릭터는 양념이다.

홍상수의 <극장전> (2005)의 줌Zoom이 미학적 층위에서 '낯설게 하기'의 맥락으로 읽힐 수 있었다면, <범죄의 재구성> (2004)은 낡은 테크닉으로 치부되던 줌Zoom이 (순수한) 활동 사진적 매혹의 측면에서 (재)활용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령 <타짜> (2006)에서, 전복되는 차를 향해서 갑자기 초점거리를 좁히며 맹렬히 돌진하는 장면의 박력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전우치>를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영화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웰메이드라'는 말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죄의 재구성>도, <타짜>도 그렇듯이 최동훈의 영화는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만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작가적 야심이 충만한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박찬욱과 봉준호가 장르적 쾌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 위에 자신의 야심을 어떻게든 착종하려 했다면, 최동훈의 영화에서 우리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시선은 고정되고, 입을 쩍 벌린 채로 앉아 있던 소년을 만나는 것 같은 기시감을 경험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쇼트와 신의 순수한 운동감을 이렇게까지 잘 포착하는 감독이 또 있을까?

그리고 강동원,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마력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배우의 영역을 연기에만 한정한다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강동원은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 가장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강동원의 연기를 보기로 작정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같은 경우.

명민한 최동훈은 강동원에게서 연기라는 '봉인'을 떼어 버린다. 마치 전우치가 족자의 속박에서 풀려나던 것처럼. 배우의 육체는 스크린위에 영사되는 순간 물질적 한계를 초월한다. 강동원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가 아닌, (고전적인 의미로서) 가장 배우다운, 시네마틱한 피사체이다.

최동훈이 <전우치>를 찍으면서 '전傳'을 떼어버린 것은 이 영화의 배경으로 현대를 가져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전傳'의 제외는 단순히 현대적 각색에 대한 야심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영화를 보았다.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의 이야기 얼개는 <전우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아라한...>에서 네 명의 도인들과 <전우치>의 신선 삼인조의 캐릭터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가지 다른 것은 '절대적 힘'을 다루는 방식이다.

<전우치>에는 막판에 몰리는 주인공의 역전을 위한 <아라한 장풍 대작전> 같은 '결전병기'가 없다. 몇 가지 아이템, 그러니까 만파식적, 청동거울, 청동검이 등장하지만, 이것들은 영화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 이것들은 그저 맥거핀 같은 것들이다.) 화담의 패배와 이 세 가지 아이템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전우치>를 감싸는 기묘한 결정론의 정조. 왕을 능멸하고 요괴를 봉인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도사들마저도 속박 될 수박에 없는 어떤 종류의 결정론, 그것이 <전우치>의 세계다.

그러니까 <전우치>는 게임으로 치자면 레벨을 올리면서 최강자가 되어가는 RPG가 아니라, 몇 군데의 선택지는 있지만, 모든 선택은 이야기의 엔딩으로 귀결되고야마는 어드벤처Adventure 게임의 세계이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화담의 옆구리에는 도화 꽃이 피고, 전우치는 인경과 바다에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론일까, 아니면 고진감래. 기어이 마지막에는 여인과 (그리고 암컷 강아지이지만 남자의 모습을 한 '무엇'과)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일까. 어쩌면 최동훈은 이렇게 슬쩍 질문을 찔러 넣는 것 같다. 당신은 화담인가, 전우치인가.

영화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동시 게재.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전우치를 아바타 전에 보았다면
    만약 전우치를 아바타 전에 보았다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래서 타이밍이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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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영화) 한국형 히어로무비 '전우치'
    ⓒ (주)영화사 집 지난해 영화 아바타를 끝으로 2009년 영화 관람을 마무리 졌는데, 올해의 첫 번째 영화는 지난해 아바타보다 한주 늦게 개봉을 한 한국형 히어로무비인 영화 '전우치'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본 것은 지난 주말이었는데, 지난 아바타에 대한 짧은 리뷰를 쓸 때 같이 쓰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포기를 하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쓰게 됩니다. 영화 전우치는 지난 영화인 'M(2007)‘ 이후 오래간만에 출연을 한 영화로 그 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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