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0일 일요일

감독 장률과의 대화 - 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일 때, 영화는 시작된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갑작스럽게 장률 감독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부랴부랴 지난 영화들을 다시 복기하고, 질문할 것들을 정리를 하면서 새벽까지 준비를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새벽이 되면 사위가 조용해진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또렷이 들린다. 큰 소리가 방안에 울리는 것이 싫어서 헤드폰을 낀 채로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장률의 영화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인터뷰에도 언급이 되지만 브레송의 영화처럼, 장률의 영화가 반짝하고 빛을 발휘하는 순간은 어떤 사건의 묘사가 아니라 무표정하게 던져진 시간들의 사이를 드러낼 때이다. 가령 <망종>에서 순이의 집 사이로 멀리 보이는 땅위로 아주 잠간 흩날리는 흙바람, 혹은 무너진 담 위로 떨어지는 따뜻한듯 창백하고 평면적인 햇살의 질감 같은 것들. 또는 <중경>에서 다리를 저는 김씨가 힙합에 맞추어 춤을 추는 순간 같은, 이상하게, 예고없이 돌출되는 장면들의 이질감이 불러오는, 산다는 것의 이해할 수 없는 감각들.

본인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마치 탐색하듯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란 언변이 아니라, 무언가의 전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감독 장률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기를 소망했을까.

 

 

 


양 석중 (이하 양) : 일단은, 정성일 선생님 만큼, 심각하게 괴롭혀 드릴건 아니니까요, (웃음) 저는 장률 감독님 영화가 전부 두 글자 잖아요. 아까 식사 자리에서도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간단한 질문부터 드릴게요. 두 글자를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세요 ?

장률 (이하 장) : 꼭 의도적인 건 아니고, 제목이라는 건 사람 이름이잖아요. 기억하기 좋게, 간단하고 기억하기 좋게, 그런 출발점인데 간단해도 그 영화 속에 무슨 느낌은 줘야하고 그래서 이상하게 계속 두 글자로 나갔어요. 나가다가 이번에 새 영화 <두만강>은 한 글자 더 늘어났고, 이렇게 변하는 과정이에요.

양 : 제가 감독님 작품중에서 <당시>는 못 봤어요. 못 보고, <망종>을 (처음으로) 봤거든요. 개인적으로 말의 어감에 대해서, 말의 감, 맛 같은 것, 그런것에 민감한 편인데, <망종>이라는 제목이 딱 와닿더라구요. 저는 감독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봤어요. 원래 영화를 볼 때, 아무 정보 없이 보거든요. 굉장히 (영화가) 과묵했어요. 감독님께선 원래 말이 많은 걸 싫어 하시나요?

장 : 말을 많은게 싫은게 아니고, 제가 어릴적에 아주 심하게 더듬거린다? 말을 못했어요. '아아 아버지' 이렇게 (허벅지를) 치고 말해야하는, 그 정도로, 말을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까지 그러면 한국에선 어떻게 보는지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병신이라고 했어요. 부모님께선 저 말도 못하는 놈이 어떻게 장가라도 가겠는가, 그리고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갈망하는 게 뭐인가하면, 사람이 말로 소통을 하잖습니까, 그런데 말을 못하니까, 더 소통을 하고 싶은데, 자기는 그 능력이 없고, 말할 수가 없고 하면, 나의 갈망하는 것이 뭐냐면 그때, 말 없이 소통할 수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좋겠나, 얼마나 편하겠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를 닫아 버리는. 닫고 소통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지고, 저 어린 시절 그렇게 지냈어요. 과묵한게 아니라 말을 못 하니까, 과묵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거에요. 말을 시작하게 됐는데, 말이 나가는 거에요. 요즘은 말인 내가 너무 싫어요. (웃음).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말을 짧게, 간단하게, 끝나가지고 그 사람이 알아듣게, 그런, 그게 몸에 배인거 같아요.

양 :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보면요, 사이,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게 익숙하신 중국어를 쓰시다가 한국 말로 다시 생각을 돌리면서 그런게 나오는것 같은데요, 제가 왜 그런 말씀을 드렸냐하면, <망종>을 처음 봤을 때,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공간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영화에 보면, 몸을 팔러 다니는 아가씨들의 집과 순희씨의 집 사이에 자전거를 두잖아요. 그 뒤에 보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는 영화를 처음 보면서 저 뒤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은데 왜 안 보여주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제가 고등학교 때 처음 <비정성시>를 봤어요. 그 영화에 보면 중국인들의 집이, 한국은 아들방, 부모님방, 이렇게 닫혀있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구획이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비정성시>를 봐도, 여닫이 문으로, 벽인데, 벽이 아닌듯한, 임시적으로 닫히지만 열릴 수 도 있는 하나의 큰 공간이 구획이 되는 식으로 구성되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중국인들의 집이 저렇구나, 생각했거든요. <망종>에서도 문이나 벽이 크게 기능을 하지 않잖아요. 바깥을 차단하지 않고, <중경>에서도 교실인데 바깥의 소리가 다 들어오고, 처음 시작할 때 관리인인 듯한 분이 오셔서 복도를 오면서 사람은 안 보이는 프레임 바깥으로 '차 한잔 드릴까요, 선생님'이라고 말하잖아요. 문이 없잖아요. 교실인데도. 마치 복도에서.


장 : 실제로 그게 복도 였어요. (웃음)

양 : 저는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평론가들처럼 장면에 의미를 찾거나 두는 것에 관심이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실제로 제 관심은 영화를 실제로 찍을 때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더 관심이 많거든요. 감독님께서 영화 속의 그런 공간을 찍으신 것은 원래 사는 공간이 그렇기 때문이잖아요. 공간이라는 것이 사실은 비어있는 사이인데, 그런 장면이 감독님 영화에서 많이 나오거든요. 벽과 벽 사이로 복도가 보인다던가. 집과 집 사이로 바깥이 보인다던가. 이런 공간들이 나오는데, 이런 공간들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 사람의 취향이 있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취향이 있는 것처럼, 그런걸 선택하지 않으면 꼭 만들어요. <망종>의 집, 아가씨 집, 중간에 통로가 있잖아요. 저쪽 가는 통로가, 원래는 없어요. 그 건물이나 하나에요. 그걸 처음 보고 답답해서는 통로를 내야되겠다하고 미술팀 보고 저거 깨라. 다시 해라. 그래서 그거 내면, 그쪽으로 가는 건 창호 밖에 없잖아요. 어머니는 항상 문 앞으로 돌아가고, 창호는 어머니가 마지막에 나갈 적에 아들이 나갔던 길로 가고. 근데 사람이 보면, 애하고 어른들이 다니는 통로가 좀 달라요. 그런 경험도 있고, 애들은 어른들이 별로 가지 않는 통로로 더 가자하고, 그런게 생활상에, 내 생활에도 (있었고) 그게 재밌다. 그럼 그걸 만들어 보자. 그리고, <중경>의 복도도 학교 섭외 했는데, 가서 보는데 교실들이 별 맘에 들질 않아요. 그래서 복도에다가 이걸 책상놓고 해라 하니까, 왜 이러는가, 녹음팀에서 '이거 엉망이다' 그래도 재밌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아직 질서를 찾고 있잖습니까. 근데 복도에서 그렇게 찍고 그러는게 질서가 아닌거잖아요. 질서가 아닌 문란한 소리, 공부하는 소리, 바깥의 소리, 그런게 복도에서 찍으면 한꺼번에 다 들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하자. 그렇게 공간을 찾을 적엔 자기 취향대로 찾는거죠.

양 : <망종>에서 좋았던 것이, 벽이 무너져 있잖아요. 문이 없는데 드나들잖아요. 그리고 뒤 쪽엔 열차들이 있고. 애초에 생각하실 때, 이런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보셨을 때 직감적으로 아셨던 거에요 ?

장 : 그거는. 벽은 다 만들었고. 그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어요. 원래 있었는데, 중간에 치워 버리고. 다시 했고, 헌팅하러 가는데, 차타고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보자 했는데,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을 보는데, 되게 쓸쓸하고, 고독하고, 보니까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고. 지금은 없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기찻길 옆에서 살겠습니까. 할 수 없이 사는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도시를 가 봐도 기찻길 옆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내게 주는 감동, 감정과 인물의 신분이 맞아 떨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주 촬영소는 여기다.' 하니까, 촬영 감독이고 모든 스텝들이 '어찌 이리 책임도 없이, 우리 몇 일좀 더 돌아다니자' 그래도 여기에 내 감정이 꽉찼다. 내 책임 지지 않는게 아니고, 더 좋은게 나온다 하더라도, 더 좋은거 찾기 싫다. 여기서 하자. 그래서 북경에서 운전해서 한 사십 분 나가서 결정했어요.

양 :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감독님께서는 자신의 의지를 100 % 밀어 붙이시나요 ?

장 : 내 의지를 밀어 붙인다기보다는, 내가 그런 공간을 볼 적의 나의 감정에 충실하는거죠. 감정에 충실하고, 헌팅하면서 고생을 해 본적이 없어요. 가면 그게 나와요. 그게 내 감정이 들고, 그럴 때 하나하나의 공간들이, 내가 찾아낸 공간들이, 일관성도 있고, 그 안에 이야기와 인물들이 활동을 하고 어떤 감정이 나오게 할까 그건 감독들이 금방 느낄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들은 뭐냐면, 그 안에 인물과 아무 관계가 없고 감정이 없는거에요. 그런 건 감독으로서 용납을 못하는 부분이에요. 나는 (남들이 보기엔) 책임성 없이 하는 것 같은데, 내 감정에 충실하고. 만들고 붙이고 해서 그 감정에 맞지 않으면 마지막에 편집이 끝나면 아닌게 금방 탄로나요.

 

 


양 : <중경>의 경우에, 카메라를 고정해서 찍으셨잖아요. 감독의 영화에서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이 몇 번 나왔는데요, 횡으로 행진하는, 그러니까, <망종>과 <중경>에서도 보여주고, <이리>에서도 나오죠. 그런데 <망종>의 경우엔 부채를 흔들면서 굉장히 당사자들은 신이 나 보이지만, 묘하게 쓸쓸하잖아요. 그런데 <이리>에서는 김동호 위원장의 마음이 바깥으로 표현이 된 것 처럼 보여지는데요, 그렇게 같은 것 같은 장면을 이용해서 다른 감정을 만들어내시잖아요.

장 : <이리>에서도 현장에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원래 할머니들이 그 안에서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원래 지금도 양로원 자리인데, 거기 할머니들이 계속 북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춤춰요. 그래서 헌팅할때도, 그 양로원이 섭외되서 한거니까, 그 안의 사람들이 출연했고, 그런데 그날 그걸 찍는데, 먼저 할머니들이 안에서 노래하는 걸 찍었죠. 그리고 두 사람 (김동호 위원장과 할머니)가 있는데, 노래하는 소리로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어요. 그 때, 한 번 지나가면 더 재밌겠다. 행동으로,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할머니들) 춤추며 지나가도, 이 두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그 감정은 하나의 감정이고, 재밌어보이고, 그래서 그날에 그거 찍을 적에 몇 개 잡지의 기자들이 왔어요. 왔는데, 그거 보며 한 기자가. '너무 <망종> 너무 비슷하다'고, 장면 비슷하다고. 그래서, <망종>은 내 작품이길래. 내꺼 내가 한 번 베끼는 거라고 했어요. 큰 죄는 아니라고. (웃음) 그랬는데, <망종>의 감정과는 전혀 다르고, 하여튼 그렇게 한 번 지나가는 거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감독 작품에서 그 장면이 나온걸 내가 하면 아닌데, 내 작품이니까 그렇게 한 번 해 보자.

양 : 그 장면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하지만 <이리>라는 영화가 즐거운 영화는 아니잖아요. 당시가 77년도 잖아요. 이리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가, 박정희 정권에서 77 년도를 '총화약진'과 '균형발전'을 기치로 내세웠어요. 이리가 전북 지방이잖아요. 당시 공사용으로 다이너마트를 운반하다가 그렇게 사고가 났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리>에서 진서가 구토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오빠가 전경에 있고, TV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장면이 나오고, 뒤 쪽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 때는 이미 해병전우회 사람들에게 겁간을 당한 후고요, 당선 발표가 되면서 일어나서 구토를 하죠. 그리고 감독님 영화에서 또 한 번의 구토를 목격한 것은, <경계>에서 주인공이 울란바르트로 딸을 만나러 갔다가, 술을 혼자 마시고서, 광장에서 구토를 하잖아요.

장 : 그 광장이, 몽골이 사회주의 나라잖아요.

양 : 공사 중인 현장으로 보였어요.

장 : 그게 공사 중인게 아니라, 다시 재공사하는 국회의사당이에요. 그 광장이, 중국으로 말하면 천안문 광장. 사회주의 나라의 중심. 에는 항상 광장, 소련도 그렇잖아요. 거기에서 토하는 거죠.

양 : 그 앞에 말을 탄 사람의 황금색 동상이 있었죠.

장 : 몽골의 민족의 영웅이죠.

양 : 사실 저는 그 장면에 어떤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주는 감정은 굉장히 색달랐거든요. 그 때 이 남자가 균열되고 있는 상태였잖아요. 자신에게 찾아온 순희 라는 여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고, 애정도 느꼈다고 봤어요. 그리고 딸과 아내가 있는 울란바르트로 와서 딸의 모습을 보고 아마도, 자신의 그러한 상황 때문에 구토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제 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경계>의 구토는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죠. 그런데 <이리>에서는 외적인 상황. 그러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해요. 실제로 저도 그 당선 방송을 보면서 구토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이리>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감독님께서는 중국 교포 2 세잖아요. 감독님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감독님께서 느끼시기에도 흔들리는 아주 작은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굳이 <이리>라는 영화를 찍으셨던 시점을 그 당시로 잡으셨던 이유가 있었나요. 그러니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감독님의 관심이 반영된 것인가요.


장 :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찍을 적에. 딱 선거할 때였어요. 찍는 날도 그날이고, 그렇게 다 찍었는데, 그 선거라는 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날에는 교통도 문제가 나오고, 하여튼 촬영할 때 불편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거라는 게, 중국에는 선거가 없잖습니까. 사회주의 국가니까. 그게 재밌어 보이고, 원래는 선거까지, 투표 하는 거 까지 찍으려고 했는데, 섭외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국영화를 찍는데, 한국 냄새? 한국의 현장, 냄새가 나야하는데, 지금 딱 이게 (선거) 발생이 하는데, 지금 내가 몰라도, 객관적으로 찍자. 그랬죠.

그리고 몽골의 국회의사당? 다른 사람은 모르지 않습니까. 설명도 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의미를 내가 두는 게 아니고. 사람이 토하면, 보통은 어떤 공간에서 토할까. 토할 때에도 공간을 선택해요. 구석에, 아니면 전봇대. (웃음) 하는데, 가끔 그 공간에서 토하지 않는데 하죠. 저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됐으면, 공간의 선택도 없이 해야 할까. 이상한 감동이 있어요. 그 넓은 광장에서 정말 선택도 못하든지, 아니면 안하던가. 그런 남자의 고독감이 들고 그랬어요.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방송을 넣고 진서가 구토를 하는 건, 관객이 물어본 적도 있어요. 혹시 정치적인 의도냐. 그건 진심으로 말하면 없다. 영화를 만들 때도 만드는 사람은 자기 모르는 일에는 아무소리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진실한 게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서 그날의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되서, 딱 그시기에 진시가 그렇게 되서 토하는데, 다른 사람이 당선되도, 똑같이 토하는 장면을 넣을 거에요.

양 : 이리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제가 다섯살 때 였어요. 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어머님께서 통곡하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이리>를 보면, 군인 모자를 쓴 굉장히 강해 보이는 늙은 남자가 해병전우회 앞에서 내리면 차문 열어주고 도열하고 경례하잖아요.

장 : 그 택시에 탄 분이. 그게 누군지 알아요 ?

양 : 저도 그게 궁금해서 크레딧을 열심히 봤어요.

장 : 배우 누군지 몰라요 ? 그게 정지영 감독이에요. <하얀전쟁>.

양 : 저도 크레딧에서 정지영 감독님 이름을 보고선 어디서 나왔나 다시 찾아 봤는데, 워낙 가려져서 짐작은 했지만, 너무 모자를 눌러쓰셔서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데 턱이 굉장히 강해 보여서, 저분인가. 생각은 했죠.

장 : 정지영 감독님이 <하얀전쟁>을 찍어가지고, 그 시기에 베트남전우회에서 항의를 하고, 극장을 부순다. 별거 나왔어요. 그런데 내 영화에 와서 출연 해 주십쇼 했는데 무슨 역이라고는 말 하지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 그런 역이니까 '또 나를 고생시키려고' (웃음) 그런데 굉장히 잘했죠. 그래서 '할 수 없이 감독님 운명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어요. (웃음)

양 : 사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또 정치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많이 흉내냈거든요.

장 : 아 그래요?

양 : 예. 그랬죠. 심지어는 박대통령이 자주 쓰던 선글라스도 쓰고, 대선 당시에는 그런 거 쓰고 나타나고 그랬죠. 사실 좀 유치하고 웃겼는데, 그게 또 먹혔잖아요.

장 : 아, 비슷하게, (웃음)

양 : 그런데 <이리>를 보면 귀환하는 것들, 돌아오는 것들이 있어요. 해병대 전우회를 봐도, 베트남전도 이미 오래전에 벌어졌던 일들이고, 그 사람들이 마치 망령처럼 도시의 한 구석에 살고 있고, 진서의 상태도 사실은 이리 폭발 사건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거잖아요. 그리고 박정희를 흉내내는 대통령의 취임. 그런걸 보면서. <이리>에는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뭔가 그렇게 돌아오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원했든 원하지 않든. 한국 사람으로서 볼 때 말이죠.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런데 장률 감독님의 기사를 찾아보면, 이방인, 경계인 이런 표현들이 많은데, 외부인이 아닌 경계인으로서, 중간자로서 한국사회를 보시는 부분이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이 대부분 불행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감독님께서 특별히 삶의 불행에 대해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 제가 어릴적에, 사는,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들, 내가 목격한 일들이 불행한 걸 많이 보게되요. 그래서, 어떤 속에서 살고 그러면 어떤 태도가 나와요. 나도 행복한 영화는 찍고 싶은데, 행복을 보질 못했어요.

양 : 말씀하신 것 처럼 보고, 아는 것만 찍게 되신다는 것이죠.

장 : 보고, 아는 것만 찍는 것과는 조금(다른데), 나의 생활 바탕에 계속 느낄 수 있는, 진서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관심이 가요. 부자들은 내가 모르니까, 세상에 부자 안해도 사람 좋은 사람 많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내가 알았으면 그런 사람들을 찍었겠는데, (다른) 감독들 영화를 봐도, 자기 출신과 가깝게 찍어요. 왕가위 감독 같은 경우 영화 잘 만들지만, 좀 부르조아 같잖아요. 영화 잘 만드는데, 공간의 선택도 그렇고. 자신의 출신과 관심에 연관되서 찍고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홍상수 감독 영화 보세요. 재밌게, 흥미롭게 찍잖아요. 그런 생활을 내가 잘 모르는데, 그래도 찍어서 감동됐다. 그럼 된 거에요. 그런데 나는 이런 생활밖에 알지 못하니까, 계속 '쌍놈'영화를 찍어야죠. (웃음)

양 : 어느 정도는 영화가 자신의 반영이라는 말씀이시죠.

장 : 그거, 피할 수가 없죠. 어떤 놈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고.

양 : 감독님께선 소설을 쓰셨잖아요. <망종>을 보고 나서, 장률 감독님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놀라웠던 것이, 이창동 감독님과도 교류가 있으셨고요. 소설을 쓰신 분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창동 감독님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죠. 그에 비해서 장률 감독님 영화는, 저는 개인적으로 좀 비어있고, 침묵을 다루는 영화들을 선호하는데요. 감독님의 영화에서 그런 요소들을 많이 발견이 되죠. 두 분 모두 소설을 쓰셨던 분들인데, 왜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은 이야기 보다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 말을 하려면 침묵이 토대가 되어야지 진짜 말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궁금했어요. 왜 감독님은 이야기 보다는 과묵하게 침묵 속에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장 : 내가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드니까. (웃음) 그건 취향인거 같아요. 취향이고, 말이 많은 영화, 탄탄한 이야기, 빈 공간이 등장하고,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건 아니고, 이런 탄탄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사람의 나약한, 무너지는, 그게 다 흘러나오면, 탄탄한 이야기와 그게 붙으면 재밌어요. 또 빈 공간이나 과묵하다? 하는데도 잔잔히 감정이 고여 있으면, 그것도 재미있고, 다 좋고.

 

 


양 : <망종>의 경우에, 계속 고정된 카메라로 찍으시다가,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 순희가 창문을 내다보는 씬 부터 카메라를 핸드헬드로 바꾸셨죠. 그장면의 어떤 이질감이랄까요. 계속 고정된 시점의 장면들을 보다가 순희를 멀찍이 떼어두고 보셨잖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순희의 뒤를 맹렬하게 쫒아가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감이나 힘, 감정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 때 감독님께서 카메라를 움직여야겠다고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순희의 감정을 잘 안보여 주셨잖아요.

장 : 그러니까, 사람이 그런 사람을 쳐다볼 적에는, 그 사람의 고통, 변화 모든 게 계속 고정적으로 볼 수 있어요. 자기가 참아야 하니까, 그런 삶을. 그런데 어떤 시점에서는 폭발하고 무너지는 시점이 있어요. 그런데 순희의 생활을 보면 아들 죽고, 쥐약을 (김치에) 넣고, 내나 순희 본인이나 참고 계속 냉정하게 볼 수가 없어요. (완전히) '가뿌리는'데. 사람이 가뿌리는데 감정이 가만있으면 아니에요. 무슨 생각했냐면 그때는. 고정한 거 깨버리고 따라가 보자, 어디까지 가나.

양 : 그 부분이 굉장히 암울한 엔딩이죠, 그런데도, 어떤 공간을 이동하다가 공간의 질감이라던가 질량 같은 것들이 바뀌면 시각적인 해방감을 느끼잖아요. 그 장면에서 순희가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거꾸로 나가는 순간 녹색의 공간이 펼쳐지죠. 아직 여물지 않은 초록색의 보리밭이. 그 장면이 너무나 암울한데도, 감독님께서 순희라는 사람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어떤 종류의 위무를 건네시는 것 같았어요.

장 : 그 보리밭의 절반은 만든 겁니다. 원래는 역이에요.

양 : 네. 그 공간의 이질감이 독특했어요.

장 : 역인데,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데, 거기에서 좀 다른 공간, 다른 생각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정신 나가면 가다가도 옆에 안 보이지 않잖습니까. 순희의 그때의 감정이라면. <망종>에서 녹색을 계속 피했어요. 거리의 나무도, 다른 색으로 칠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도 그래도, 녹색이 생명과 관계되는 거잖아요. 그걸 순희에게 줘 보자. 그리고 창호가 연에 뿌리던 파란색. 그 색깔은 중국에서 보면 공장의 색깔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끝나기 전에 어떤 색을 보여주고 끝내주느냐. 생각해 보니까. 그 역 앞에 사람들이 있고, 더 멀리 보리밭이 있었어요. 그래서 섭외해서 그 앞의 부분에 보리를 심었어요.

 

양 : 감독님의 영화 속에서 사람의 몸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남자들을 자주 벗기시죠. (웃음) <망종>같은 경우는 남자들의 몸이, 벗겨 놓으면 참 초라했습니다. <중경>도 그렇고. 경찰관도 벗겨 놓으니까 전혀 경찰관이라고 알아볼 수 없고 초라해 보이죠. 그런데 <이리>에서는 할아버지가 목을 매달아 돌아가시죠. 저는 그 몸이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죽은 시체였지만. 시간을 들여서 만든 몸이 아니라, 세월이 쌓여있는 몸이었거든요. 그 장면이 놀라우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전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몸을 드러내셨던 건 어떤 이유가 있으셨나요.

장 : 사람이 할아버지도, 진서를 어떻게 보면 좋아했잖습니까. 진서가 누워 있을 때, 냄새도 맡고, 그런데 손을 내지는 않고, 기본 윤리는 지켰고, 원래는 인생이 올 때는 발가벗고 오는데, (죽을 때도) 발가벗고 가야되지 않습니까. 가는 사람이, 그런 용기? 대부분은 돌아가면서도 다 입고, 허위적인 것들을 가지고 가는데, 그 할아버지는, 나의 마음속에는 자기 세상에 있는 고독을 이기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세상(삶)을 지켜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저 사람이 갈 적에, 벗을 수 있다. 다 벗어 버리고, 내 머리 속에 그림은 옷을 입고 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 벗고 가야. 내 마음 속의 그림에 맞고 그래서, 그 노인과 설득 하는데, 많이 얘기 했어요. 그래서 나의 가족 얘기도하고, 내 아픔도 얘기하고, 그랬는데, 하겠다.

양 : 그럼 그 분은 양로원에서 마찬가지로 섭외 하신 건가요?

장 : 아, 그분만 양로원이 아니라, 전주의 전문은 아니고, 직장은 무슨 농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인데, 연극 활동을 해요. 직장인 연극. 그런데 퇴직할 나이는 다 됐는데, 정식 직장인지 그건 잘 모르고, 임시로 거기서 봐 주는지, 그런데, 연극을 좋아하고, 발표도하고.

양 : <이리>와 <중경>이 연결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마지막에 중국에서 오는 강사가 <중경>에서 나왔던 '수이'가 그대로 나왔어요. 그런데 수이에게 '니 하오마' 하면서 인사를 하잖아요. 진서는 죽은 것 맞는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거든요. 마치 거기에 진서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랄까요.

장 : 그 질문이 참 많은데,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는데, 죽음이라는 거는, 우리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교만하게 이것은 죽음이다, 이거는 살았다. 애매모호 하니까, 그래서 그걸 놓고 스텝들하고도 쟁론이 많았어요. 어떤 스텝들은 그냥 태웅이가 진서를 죽이고 건축 모형을 태워버리고 끝내는게 영화의 힘이다. 그러기도 했고, 그런데 내 감정으로 볼 때, 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 공간. 그 다리, 진서가 앉아 있는 다리. 그때도 나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이 공간에서 쑤이가 들어오고, 은서가 들어와도 돼잖습니까. 진서가 그 공간에 있는가 없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죽었을 수도 있는데, 그 공간에 진서가 없었으면, 내 자신의 감정에 견디지 못했을 거에요. 죽었다면 죽었는데, 그 시기에는 그 공간에 나타났다. 그렇게 열어놓고 그 공간을 생각했어요.

양 : 지금도 다리를 말씀하셨는데, 감독님 작품에는 다리가 유달리 많이 나옵니다. <망종>에서도 순희가 김씨를 처음으로 불러낼 때, 김씨가 주황색 옷을 입고 다리위에서 뭔가 점검을 하고 있을 때 순희가 불러냈고, <중경>에서도 경찰이 벗고 뛰는 다리가 있고, 쑤이가 지나갈 때, 뒤 쪽으로 철골 같은것이 올라가고 있는 커다란 다리가 있어요. 그리고 <망종>에도 다리가 나오고, <이리>에서도 다리가 나오고요. 저는 의미를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요, 다리에 대한 감독님의 취향 같은 것이 있으신가봐요.

장 : 다리를 좋아하죠. 다리라는 공간이,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연계하잖아요. 그런데 보통 길로 걸어가는 감정과 다리를 걷는, 민감한 사람이면, 다리를 걷는 감정이 달라요. 다리는 감정이 더 복잡하죠. 슬프든지 고독하든지, 다리 밑에는 허공이니까. 허공을 연결을 해 주는데, 그 위로 사람이 지나가는데, 감정이 변해요. 제가 젊을 때는 슬픈 일 있으면 다리를 지나가요. 영화를 찍다가도 재미있는 다리가 있으면 내 감정과 맞는가를 찾는 거에요.

 




양 :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성수대교가 예전에 무너졌잖아요. 바로 전날, 밤에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넜거든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다리 가운데가 푹 꺼져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는데, 좀 멍했죠. 기분이. 정말 몇 시간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라 졌다는 기분.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들에서는 다리가 비교적 낡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새로 만들어진 다리들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거든요. <중경>같은 경우가 그렇구요. 낡은 다리들, 지금 공법이 아니라, 예전에 콘크리트나, 아니면 그냥 돌. 그런 다리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오래된 다리들에 대한 선호가 있으신건가요 ?

장 : 새로운 다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양 : 새로 만든 다리는 사람들이 못 지나가죠. 차가 지나가지.

장 : 맞아요. 그리고 다리도 세월의 묻은 냄새, 그거 보면 전혀, 건물을 봐도, 지금 새 건물 보면 어색하잖습니까. 그런데 40 년 전의 건물인데 그 때는 되게 어색해요. 지금 보기는 무난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그게 뭐냐면 세월이 거기에 남긴, 흔적들이 어색한 것을 편하게 만든 것 같아요.

양 :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세월이 쌓인 공간들이 많이 나오죠. 그런걸 보면서 '저기서 어떻게 사나'가 아니라, 저렇게 고즈넉하게 살면 좋겠다는 감정 같은 것이 들어요. 사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좀 불편한 집은 맞는데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망종>에서 순희가 마늘을 빻을 때, 굉장히 작은 의자에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일을 하고, 깍두기를 썰을 때도 그렇거든요. 단순한 질문인데요. 중국인들이 워낙에 그런 의자를 많이 써서 그런 것 인가요. 아니면 감독님께서 그런 자세가 필요하셨던 것인가요.

장 : 그런 의자가, 진짜 이거는 내 집이다. 내 여기서 계속 산다하며는 그런 의자를 안 써요. 떠나는 사람들은 금방 편한 걸로. 이렇게 거기 정착하지 않고 자꾸만 떠나는 사람들의 집에 가 보면 의자나 뭐나 다 불편해요.

양 : <경계>에서도 소젖 짤 때 쓰는 조그만 의자가 나오죠.

장 : 그렇죠. 그래서 미술팀 보고, 그런 의자 구해오라. 이 사람 인물과 맞으니까.

 



양 : 전체적으로 보면 감독님의 영화는 <망종>에서 <이리>까지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거든요. <이리>에서 진서가 시장에서 목도리를 사는 장면을 보면 카메라가 굉장히 가깝게 다가가요. 심지어는 다른 영화들에서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없었어요. <이리>에서는 진서의 시점에서 카메라가 내려갔다 올라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독특하고, 이질감이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인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 진 것인가, 아니면 그전에는 공간이 더 중요했는데, 지금은 인물이 더 중요해 졌는가, 이런 변화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장 : 그 바탕에는 자연스럽게 변한 거고, 농담 같지만, <경계>를 찍을 때, 배우가 모니터를 보면, 내가 왜 점점 카메라에서 멀어지는가, 감독이 나를 싫어서 이러나, 미워서 이러나. <이리> 찍을 때 생각해 보니까, 배우를 너무 멀게 하면, 배우를 한 놈도 하지 않을거 같아서. (웃음) 그래도 내가 카메라를 앞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뭐냐면, 진서라는 인물은 조금 우리랑 다르지 않습니까. 바보든지, 천사든지. (이리) 폭발 사고 때문에 그리 됐는데, 그런데 보통 보는 영화에 나오는 카메라처럼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가까이) 잡아 봐요. 그럼 사람들 너무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독들 그렇게 잡아요.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그게 아니에요. 막 불편해지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배우)가 반응이 나와요. 그런데, 바보? 천사? 는, 원래는 사람과 사람 정상거리가 이렇게 되는데, 이렇게 코앞에 가도 이 사람은 자연스러운 거에요. 그게 나의 이유 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경계>에서는 배우가 싫어서 멀어 지는 게 아니고, 몽골에서 우리 둘 처럼 이 거리에서 말해도 되게 어색해요. 그 넓은 땅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만나면, 불편한데, 멀리 서서 이야기하는 이런 거리가 그 땅에는 맞아요. 그러니까, 공간에 맞춰야한다. 그런데 너무 이야기에 맞추고, 너무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물론 그런 영화들에서도 잘 만든 영화들은 많은데, 내 보기에는 조금 불편해요.

양 : <경계>에서 마지막에 창호가 '큰 길이 있어요 어머니'하고 말하고 카메라가 회전 했는데, 파란 깃발이 걸려 있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 아무리 봐도 중간에 이음매가 없는데, 카메라가 360 도 돌아서 제자리에 오면 없던 파란 깃발이 걸려 있거든요.

장 : 그것도 궁금해 하는 사람 많은데요, 그렇게 물어본 사람들이 내 답을 들어보면, 실망해요. 두 번 찍은거죠. 한 번, 파란 깃발을 달지 않고, 360 도를 찍고, 또 한 번은 천을 걸어놓고 똑같은 속도로 360 를 돌고, 그걸 이었어요. 많은 감독들이 그걸 질문해요. 어떻게 했는가.

양 : 감독님께서 어릴 적의 경험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 본적 있을 것 같은데요, 말을 하지 않고도 소통이 될 수 있다면.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언어화 되지 않은 소리들이 많이 나오죠. <중경>에서 지하철 걸인이 부르는 노래도 언어가 아닌 걸로 알고 있고요. <경계>에서도 몽골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입장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생경한 말은 언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죠.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앞으로도 그런, 비언어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을 계속 두실지 궁금합니다.

장 : 사람의 스타일이 크게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비워진 공간, 이런걸 보면 내 감정이 먼저 거길 가니까,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는 대사 이런 걸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순간적으로는 그 언어가 재밌고,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는데, 세월이 지나서 말을 다시 들을 적에는, 그 재미, 옛날 영화들, 말이 많은 영화들보면, 그 때는 자연스러운 말들이, 지금은 너무 어색하죠. 연기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당시에는 자연스러운게, 지금 다시 꺼내 보면 좀 어색하고. 그러니까 브레송의 영화에는 사람들이 다 표정이 없잖습니까. 연기를 싫어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절의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들, 지금 다시보면 그 때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잖습니까. 그 뭔가 깨지고. 그런데 브레송 것은 불편하지만, (영화의 감정이)깨지지 않죠. 마찬가지로, 말을 너무 많이 대사를 해 놓으면, 깨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게 깨지는 모습. 그러니까 브레송 같은 경우는 완벽주의자, 그런거 못 참는 사람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 같아요.

양 :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영화의 핵심이라는 것이, 말이나 연기, 이런 것 보다는 흔히 말하는 시네마틱하다는, 그러니까 영화적이라는 것이 말이나 연기를 뛰어넘은 뭔가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쪽이신가요. 그러니까, 침묵이라던가, 절제라던가.

장 : 크게 말하면, 공간. 그러니까 그 공간이 사람이 거기에서 움직여서 사람의 감정이나, 시간에서 흐르는, 그걸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게 어떻게 말하면 그게 맞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영화의 본질과 좀 더 가까운, 그 진실까지 더 가깝지 않겠는가. 그게 답이라는 건 아니고. 다른 감독들 마다 다른 것 일 테지만.

양 : 처음 질문 드렸던 <망종>에서 순희가 자전거를 끌고 가죠. 왼쪽으로 맨 처음에 가죠. 굉장히 힘들게 페달을 밟는데요, 저는 그게 오르막이라 그런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럼 반대로 내려갈 때, 그러니까 왼 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때 좀 더 빨라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원래 자전거가 구조적으로 느린 것인가, 아니면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순희의 시간만 힘들고 느리고 무겁게, 그러니까 순희의 시간의 밀도만 너무나 무거운 것이죠. 이 사람의 삶의 무게 같은 것. 그런데 다른 자전거들은 쌩쌩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 : 그때 나도 고민했어요. 어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의 감정이 그 때 그랬어요. 그렇게 요구했어요. 천천히. 순희에게는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순희에게는 빈 공간이 더 많잖습니까. 도시의 변두리, 별로 사람도 다니지 않는 곳에서 빨리 달려봤자, 삶이 변하는게 아니에요. 이 사람이 가는 속도가 다른 정상적으로 직장 있는 사람들, 현지인들의 속도보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람 걸음걸이에도 그게 나와요. 자존심, 절망, 슬픔, 자신감, 그런게 다 다르고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요. 그래서 거기에서 나는 순희의 속도를 고집해야겠다. 그랬던 거죠.

양 :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감독님의 다음 영화 <두만강>도 개봉이 되면 열심히 보고, 글로 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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