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섹션 1 - 단평

 

 

<그 후>

감독 : 최현영

하교길에서 '선생님께서 교통사고로 위독하니 같이 가줘야 겠다'는 남자는 은수에게 차에 타라고 한다. 선뜻 동행하기에 뭔가 꺼림칙한 은수는 근처 세탁소로 뛰어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은수가 세탁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 그 남자의 차가 골목어귀에서 나와 세탁소 앞에 선다.

이 장면은 모호하다. 세탁소와 납치범 남자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은수의 뒷 모습을 더 잘 관찰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 장면 때문인지 우리는 은수가 집 안에 있을 때에도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 집안 어딘가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여기를 위협하는 외부의 어떤 것. 혹은 나를, 우리에게 위험한 누군가를 상정하는 <그 후>는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통해 지금 사회의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을 담아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들에게도 그저 장미빛 미래 만은 아닌 것이다.

<흩날리는 것들>

감독 : 김현성

붉은 깃발, 거친 바람, 흔들리는 집, '밑 닦으려도 못 쓰는' 산더미 같은 인문학 서적들. 감당 못할 빚 이라는 아버지의 '유산'.

<흩날리는 것들>은 일종의 후일담 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은 그저 미움이 아닌 좀 더 복잡 미묘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아버지로 부터 가난을 물려 받는다. 유일한 유산인 셈인데, 아내는 '그냥 남들 만큼만 살고 싶은게 잘못은 아니'라며 주인공을 채근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잃어버린 10년'의 폐해를 다루는 프로파간다로 오인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간 들었다. '재능있는 젊은 실크 세대로서 386 세대에게 억압 받고 있는' 변희재씨 같은 사람이라면 능히 뽑아내고도 남는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신세계의 유령' Specters of the New World 이다. 주인공의 빈곤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연유한다. 살아서 주인공을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바람소리처럼 세상을 횡행 하면서 주인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이 유령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그를 유령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왼쪽 눈으로만 측량을 하던 주인공이 오른쪽 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눈 앞에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먹먹한 감정을 전해준다. 깃발은 눈 앞에 있지만, 그 깃발은 보이지 않거나, 더이상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쓸쓸하다.

<수진들에게>

감독 : 강연하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일하는 수진에게 하루 하루가 똑같이 지루하다. 진열대 사이를 하이힐을 또각이며지나가는 여자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은 전혀 다른것만 같다. (비정규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의 대규모 인원 감축에 대한 소문이 흉흉하다.

영화는 상영 시간이라는 제한을 둔다. 결국 영화는 함축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수진들에게>는 조금 넘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진이 그 모든 것을 감내하기 어려운것과 거의 비슷하게 영화 역시 그런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은 러닝타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감독이 주인공 수진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 때문인지, 우리가 수진에 대해 조금 더 알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감독의 과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수진들에게>는 동시대에 대한 관심을 두는 감독의 시선이 눈에 띄는 영화다. 감독 자신도 인정 했듯이, '정확하고 깊게 알지 못하는' 동시대의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수진들에게>는 그 한계가 또렷이 보이는 영화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전해지는 작은 위무의 몸짓이 아쉽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곳>

감독 : 김재원

이번 섹션 작품 4 편 중에서 가장 이야기가 탄탄한 작품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식의 결말이지만, 시종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구성된 다른 섹션 작품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혹은 보여주지 못했던 연민의 연대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아주 깔금하고 유쾌하게 제시한다.

특히 <닿을 수 없는 곳>은 인물이 중심이 되는 극영화에 있어서 배우의 얼굴이 가지는 힘을 잘 보여준다. 세 가족이 고시원 한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팍팍한 현실이지만 이 젊은 배우의 얼굴에서 관객은 일말의 희망을 본다. 그건 건강하게 살아있는 누군가를 보게 될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백마디 말 보다 한 번보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마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일견을 권한다.

 

영화 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에 게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