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입안에 가득




퇴원은 했지만, 너무 잘 쉬어서인지 입안이 잔뜩 헐었다. 게다가 혓바늘도 돋았다. 극악 처방 알보칠의 힘도 빌려 봤지만, 환부가 너무 다양하게 퍼져있어서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그거 바른다고 화장실에서 눈물 깨나 쏟았다. 침도 한 됫박 쏟았다.

부득이하게 사무실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침묵 선언을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나 보다 주변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 말하거나 의사 전달이 필요한 것은 간단히 손동작이나, 쪽지에 적는 것으로 가능하겠지만, 그것 마저도 불편을 느낀다. 그만큼 말은 한다는게 편리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예전에 수도회에 몇 일동안 들어가 대침묵 속에서 지낸적이 있었다. (이런걸 피정이라고 한다.)침묵에는 대침묵과 소침묵이 있다. 말 그대로 소 침묵은 일상의 간단한 의사 소통 정도는 허용하는 것이고, 대침묵은 일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사님들과 마주치면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다가 웃게 되면 얼굴이 두 배는 더 활짝 펴지는 기분이 든다. 왠지 웃는 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진다. 수사님들은 눈인사로, 웃음을 가득담아 화답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입을 꼭 다물게 된다. 지금 처럼 입이 아픈 경우에는 더 그렇다. 입을 잠시라도 떼면, 환부가 자극되서 아프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긋이 눌러서 조금 참으면 견딜민 한 수준까지 고통이 가라앉는다. 물도 마시는 것을 피하게 되고, 음식을 먹는 것은 더 그렇다. 사람의 감각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다. 피부에 대한 자극, 신경에 대한 자극. 그것들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그것을 고통이라고 한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해서, 나는 익숙해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몸에 고통이 상주해 있으면 불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순간 내 안의 모든 것들이 고요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고통을 통해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사회 생활에서 침묵이란게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제약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든 생각은,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이곳에 채용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서, 처음엔 좀 불편하겠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의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영사기사중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혹시 있는지.

말을 하지 않는 몇 일을 보내면서, 그동안 어떤 말들을 해 왔나 생각해 봤다. 결론은, 참혹하고 부끄럽다.

이런. 여기에도 주절 주절 늘어놓고 있다. 여기까지. 그만. 끝.

2007.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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