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베었다. 정확히는 찔렸는데, 움찔. 하는 사이에 칼날이 더 파고 들어가면서 베어버렸다. 피가 후두두둑 하고 떨어졌다. 같은 몸인데, 새나오는 곳 마다 피의 농도가 다르다. 손가락 끝의 핏 방울은 조금 더 투명하고 더 새빨갰다. 그만큼 묽었는데, 마치 얇고 투명한 빨간색 종이로 만들어진, 흐드러진 꽃 같았다.
서둘러 방바닥을 닦아내고 응급처치를 했다. 휴지를 감싸서 지혈을 하고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반창고를 감았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두 배로 두툼해졌다. 재빠르게 치료를 해서인지, 칼에 베이면 따라오기 마련인 욱신거리는 아픔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고 반창고를 떼어냈다. 상처가 야물딱지게 입을 다물었다. '살성이 좋다'는 말을 평소 자주 들어왔지만, 상처가 정말 빠르게 아문다. 어느 영화에선가 자해를 습관적으로 하는 여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아무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던 대사가 생각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않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치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더 많다. 몸을 다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찔리거나 베이는 순간 '아야' 하면서 한 걸음 물러선다. 본능적으로 더 깊은 아픔을 방어 하는 것이다.
차라리, 후두둑. 하고 피 흘리고, 그걸 둘둘 감싸고, 그렇게 확실하고 빠르게 상처가 나을 수 있었다면, 조금 덜 어리석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몸이 더 아픈 건 죽어도 싫은데, 맘은 조금 더 아파도 괜찮아 하고 생각하기 마련인 것 같아요. 나는야 정신적 매저키스트!ㅋㅋ
답글삭제칼에 찔리거나 다친 상처는 낫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사람한테 다치면 잘 아물지를 않는다는것이 문제이지요. 다쳐도 한걸음 물러설수 없을때도 있으니까. (그래서...앓느니 죽지 라는 유언비어도 탄생하는것이겠지요 뭐) 죽으면 간단한데 사니까 복잡한거죠 헤헤헤.
답글삭제잘 아물었다니까 다행입니다. =)
글을 읽으니, 노희경의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 고두심이 치매에 걸렸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가슴에 빨간약(머큐로크롬)을 바르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엄마 왜이래?'라고 묻자 '여기가 너무 아파'라고 해서 어찌나 울었던지.
답글삭제추신. 르네군님을 여기서 보니, 저와 르네님이 느림보님의 스토커가 된 기분.
느림보 친구님 안녕하세요~! 르네군님은 친구님 오른쪽 네번째 앉아있던 분이랍니다.^^ 다음 세미나 주제가 "Love & Marriage? 에 관한 네가지 단상"이던데 꼭 오시길 바래요. :-)
@RedFox - 2009/11/19 00:03
답글삭제정말 살성하나는 끝내줘요. 혹시 전 도마뱀일지도.
@eufamily - 2009/11/20 00:06
답글삭제아니, 이 엉뚱한 추신이라니.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