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일 금요일

검은 사람



검은 사람


어느날 사막에서 검은 사람이 마을로 돌아왔다. 그가 언제 마을을 떠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 이쪽 끝에서 다시 저 반대편 끝까지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곤 그들이 살고 있는 곳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은 편의상 검은 사람이 자신들의 마을에서 오래전 사막으로 떠났고, 지금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처음에 그를 발견한 것은 마을 어귀 바깥에서 덫을 놓고 있던 들쥐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시력이 아주 뛰어났지만 처음에는 자신들이 보는 것이 신기루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뜨거운 한 낮의 햇살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숙련된 들쥐 사냥꾼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한 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사막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은 자신들의 유일한 사냥감인 들쥐들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들이 살아온 날들 중에서는.

사냥꾼 중 한 명은 지평선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사람이 꼭 바다 속에서 일렁이는 검은 해초 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이상 이 세계에는 바다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는 나이든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살아온 자도 자신 보다 더 나이든 사람의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냥꾼은 그 표현이 꽤 적절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부분을 강조해서 여러 번 이야기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검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말 그대로 검은 사람이었다. 햇빛에 오래도록 노출 되어서 단련된 구리 빛의 피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검음 그 자체였다. 마치 땅에서 튕겨져 일어난 그림자처럼 검었다. 아니 그림자보다 더 검었다. 누구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따가운 한 낮의 햇살도 그의 몸에 닿는 순간 그 힘을 잃고 말았다. 제멋대로 자라난 거칠고 숱이 많은 머리칼과 나무뿌리처럼 옹이진 손가락과 흙을 움켜쥐기라도 할 것처럼 단단히 땅을 딛는 그의 발가락 하나하나가 모두 검었다. 그가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다거나 물을 마시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속속들이 검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마을 사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검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들은 그를 어떤 징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들쥐 사냥꾼들과 함께 마을 입구로 들어선 순간 부랴부랴 시원한 그늘과 물이 있는 집 한 채를 내 주었고 자신들의 호의를 어떻게든 검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과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바깥의 흙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더듬어 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등을 둥그렇게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더듬어 보고 있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표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표정이 짓는 주름의 그늘보다 더 검었다. 실제로 그가 어떤 표정이나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앉아 있는 집 안쪽의 어둠이 오히려 밝아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 그대로 그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밤새 춥지 말라고 모닥불을 피우고 간단히 먹고 마실 것들도 가져다 두었다. 그가 제발 먹고 마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밤 보다 더 검은 사람 곁에서 타오르는 모닥불은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피워진 모닥불 보다 더 외로워 보였다.

다음날 해가 뜨기 전 덫을 살펴보기 위해 제일 먼저 일어난 들쥐 사냥꾼은 검은 사람이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적어도 그는 자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유난히 검고 큰 동공이 새벽 미명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밤에 놓아두었던  먹을 것과 마실 것은 어느 하나 손대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그 부지런한 들쥐 사냥꾼은 검은 사람이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사이에 밤의 어둠을 양식 삼아 뜯어 먹는다고 상상하기 시작했고,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그 부지런한 들쥐 사냥꾼은 검은 사람의 첫 모습을 바다 속 해초에 빗대어 이야기한 바로 그 사냥꾼이었다. 들쥐 사냥꾼들 사이에선 때로 좀 더 긴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다. ‘검고 어둠을 먹는 자‘.

그 이야기를 들은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들은 그의 출현이 좋은 징조라고 믿기 시작했다. 어둠은 언제나 두려웠고 조금씩이라도 어둠을 먹어치우는 존재가 자신의 마을에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마을에 왔던 저녁 모습 그대로 앉아 있던 검은 사람은 들쥐 사냥꾼이 덫을 놓고 돌보는 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그 남자가 유심히 바라보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였는지, 어느 곳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 오후부터 검은 사람이 들쥐 사냥꾼들과 함께 덫을 돌보는 모습에서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짐작할 따름이었다.

들쥐 사냥꾼들은 자신들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완고함도 가지고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단백질원을 그들이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들쥐 사냥꾼의 일은 세습이 되었다. 그러나 세습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혈육을 통해 이루어 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을에는 가족이나 혈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자와 나이 적은 자가 있을 뿐이고 그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동료로 받아들이기 적합한 사람을 선출해 내는 것이 그들의 ‘세습’이었다. 그 세습의 과정은 복잡한 훈련과 시험을 거쳐 치뤄졌다. 그렇게 선출된 들쥐 사냥꾼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대접했다. 그러나 그들의 긍지와 자랑, 그리고 약간의 완고함도 검은 사람의 ‘도움’을 떨쳐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

검은 사람이 성실하고 뛰어난 일꾼이라는 것은 그날 오후가 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한 낮의 햇볕도 두려워하지 않는 들쥐 사냥꾼들도 잠시 쉬기 위해 그늘과 물을 찾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검은 사람은 쉬지 않고 덫을 돌보고 덫에 걸린 들쥐들을 모아왔다. 새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마을 위쪽에 있는 상수원에서 도랑 작업을 하던 사람들도 일손을 놓고 검은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땀도 흘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의 땀도 검은 것 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땀이 솟아오르면 의례히 그러하듯 땀을 훔치거나 손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덫과 덫 사이를 왕복 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식사를 하기위해 들쥐 사냥꾼들이 마을로 돌아간 시간에도 덫을 돌보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을의 나이든 사람들은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모욕이 될 수 있었지만 누구도 입 밖에 그 생각을 내지 않았다. 적어도 검은 사람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 믿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그늘 속에서 쉬고 있었던 들쥐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러운 논쟁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검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해 질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의 때문이 아니었고 알 수 없는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은 검은 사람을 자신들의 동료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러니까 ‘들쥐 사냥꾼’의 칭호를 그에게 허락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루한 몇 십분 간의 갑론을박이 지나고 내려진 결론은 검은 사람은 그대로 검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 뛰어나고 근면한 들쥐 사냥꾼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들쥐 사냥꾼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검고 말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들쥐 사냥꾼들은 그 결론에 모두 만족했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세상이 멈춰버리는 순간까지 쉬지 않을 것 같은 그에게도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자 그는 마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덫을 점검하는 것을 끝으로 마을로 돌아왔다. 들쥐 사냥꾼들과 검은 사람이 일하던 온종일 마을 사람들은 그가 묵을 수 있는 집을 새로 지었다. 마을에 온 첫날 그가 묵었던 집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의 집이기도 했고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 집은 마을 어귀에 얼마 전 만들어진 경작지 근처에 지어졌다. 그 곳은 땅을 일구는 낮 시간 이외에는 마을사람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검은 사람은 들쥐 덫을 돌보기 위해 마을 바깥에 있었다. 새로 지어진 집에는 누워 쉴 수 있는 침상과 간단한 물건들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에 온 첫날 저녁과 같은 자세로 문밖 흙벽에 기댄 채로 등을 둥그렇게 구부리고 앉았다.

밤이 깊어지고 하루의 일을 모두 마친 마을 사람들은 가장 숙련된 들쥐 사냥꾼의 집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검은 사람이 누구, 혹은 ‘무엇’이고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첫 모습을 바다 속 해초로 비유했던 들쥐 사냥꾼은 이번에도 자신의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검은 사람의 정체는 마을사람 중 누군가 오래전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려 죽었는데, 그 그림자만 살아서 돌아온 것일 것이라 말했다. 그는 하루 종일 말없이 그 생각에만 몰두했던 사람처럼 모든 것을 너무도 완벽하게 상상해 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씩 그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아한 구석도 있었다. 검은 사람은 그림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검었다. 그림자는 검은색이 아니다. 그림자는 회색에 가깝다. 게다가 그는 땅위의 그림자처럼 평편하지 않고 두툼했다. 지나치게 검고 말이 없고 먹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마을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의 설득력이 너무 강해서 차라리 상상력 좋은 들쥐 사냥꾼의 이야기를 믿는 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기울어졌다. 그렇게 그가 마을에 온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들쥐 사냥꾼들은 지금까지의 사냥터 언저리 바깥으로는 덫을 놓지 않기로 했다. 서로가 말로써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사막에서 그림자가 없는 시체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냥꾼들 중 민감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몇 몇은 실제로 간밤의 꿈에 그림자가 없는 시체를 보기도 했다. 그것은 배가 좌우로 열려서 들쥐들에 의해 내장이 모두 사라진 시체보다 더 끔찍하게 여겨졌다.

마을에는 매장의 풍습이 없었다. 나이가 들고 힘이 빠져 죽게 되면 마을 상수원에서 가장 먼 사막에 버려졌다. 마을 사람들은 죽는 것을 ‘쉼 없는 잠’이라고 불렀다. 쉼 없는 잠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들쥐들의 좋은 먹이가 되기도 했다. 들쥐들은 쉼 없는 잠에 빠진 자의 내장을 가장 좋아했다. 들쥐들이 뚫고 들어가 온갖 내장을 먹어치우고 남은 시체는 배가 홀쭉하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들쥐들은 심장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막의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 속에서 심장은 돌보다 더 딱딱하게 모양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그곳은 ‘돌 심장을 가진 자들의 마을’이라고 불려졌다.

잘 썩지 않는 시체의 텅 빈 뱃속은 들쥐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다. 들쥐 사냥꾼들은 돌 심장을 가진 자들의 마을 근처에는 절대로 덫을 놓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잡은 들쥐는 공급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다. 사막 끝에서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마을의 상수원이 말라버리는 건기에는 들쥐들도 땅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돌 심장을 가진 자들의 마을 근방의 쥐들은 건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땅위를 돌아다녔다. 건기에 산자들의 마을에는 먹고 마실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간혹 사냥꾼들이 잡아온 들쥐의 피를 마실 때, 혹은 간단하게 손질해서 구운 고기나 밭에서 거둔 채소를 함께 넣어 끓인 국을 먹을 때 마다 야릇한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의 정체를 알려드는 마을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검은 사람이 마을에 온지도 한 달이 넘게 지났다. 그 동안 들쥐포획양은 그 전보다 곱절은 늘어났고 지지부진 끝장을 보지 못했던 마을 상수원에서 새로 생긴 경작지 까지 물을 대는 일도 끝났다. 굵은 주먹돌들이 세심하게 걸러진 새 경작지에는 여러 가지 씨앗이 뿌려졌다. 그 땅은 마을 상수원 가까이 있었던 예전 경작지보다 더 기름졌다. 검은 사람은 해가 사라지면 자신의 집 앞으로 돌아가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밤을 맞이했다. 이제 마을 사람 누구도 그가 자고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또 그만큼 그가 제공하는 노동력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의 가장 나이 어린 사람들이 검은 사람의 거처 주변에서 놀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철저하고 세심하게 금지 되었다. 무엇보다 검은 사람의 심기를 거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게다가 그들에게 가장 나이 어린 사람들은 소중한 노동력의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들쥐 사냥꾼이 되거나 수로를 파거나 경작을 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어린 사람이 검은 사람의 거처를 찾아갔다. 그는 이상하게 검은 사람이 사막을 바라보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정말로 사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는 검은 사람이 몇 되지 않는 별들이 떠오르고 새벽 동 너머로 사라지는 그 시간 내내 사막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밤의 사막은 파랗고 창백했다. 달이라도 밝은 날은 더했다. 그런 날은 마을사람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검은 사람은 문득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 주위를 서성이곤 했다. 그 모습은 마을사람들이 알던 낮 동안의 검은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낮 동안 검은 사람은 확신과 근면함으로 단단하게 뭉친 바위처럼 일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았고 마을의 가장 숙련된 사람의 손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해 냈다. 그러나 푸르고 창백한 사막위로 떠오른 달 빛 아래에 선 검은 사람을 보는 순간 어린사람은 그가 조금 창백하고 투명해졌다고 느꼈다. 아니 그것은 정말이었다. 그 순간 그는 검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검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달빛과 사막의 창백한 바람을 머금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어린사람은 마을 사람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않았다.

세번의 건기가 지나갔다. 이 세계에는 우기가 없었다. 비는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건기가 끝나면 마을 상수원에 조금씩 물이 고였고 마을 사람들은 물이 차오르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동안 마을에서 여섯의 가장 나이든 사람들이 돌 심장을 가진 자들의 마을로 떠났고 네 명의 가장 나이 어린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에게는 태어난다는 개념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검은 사람의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검은 사람의 곁에 가거나 귀찮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중했다. 그러한 행동이 잔인할 수도 있었지만 낮의 사나운 태양과 밤의 두려운 어둠이 그들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요령은 그렇게 잊지 않고 신중함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날처럼 잠이 잘 오지 않는 밤 어린사람은 검은 사람의 집을 찾아갔다. 그 날도 밝게 떠오른 달은 사막을 비추고 있었다. 그날따라 사막은 더 파랗고 창백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사막이 오히려 여기 살아있는 자들의 마을보다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밤 나들이를 나섰다 덫에 걸린 들쥐의 비명 소리 빼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검은 사람이 사막을 바라보고 달 빛 아래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언제부터인가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다시 보기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검은 사람은 언제나 있었던 그 자리에 없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숨어 있던 곳에서 기다렸지만 검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사람은 은신처에서 나와 그의 집으로 다가갔다. 모닥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가져다 놓아두는 먹고 마실 것도 그 자리에 그 대로 있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집 안쪽에는 침상과 선반 모서리가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어린사람은 검은 사람이 마을을 떠났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정확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검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기가 오고 다시 상수원이 느리게 차오르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검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중 단 한사람 간혹 밤마다 검은 사람의 집을 찾던 어린사람만 빼놓고 누구도 검은 사람이 떠난 것을 궁금히 여기지 않았다. 마을 외곽 새 경작지에 지어졌던 검은 사람의 집은 새로 들쥐 사냥꾼이 된 사람에게 주어졌다. 들쥐 사냥꾼이 된다는 것은 혼자 사는 집을 가진다는 것을 뜻했다.

건기가 다른 때 보다 길어진 탓에 돌 심장을 가진 자들의 마을의 거주자들이 조금 더 늘어났다. 상수원 너머로 멀리 사냥 탐색을 떠났던 들쥐 사냥꾼 몇 명이 먹을 수 있는 노란 물을 품고 있는 하얀 조약돌을 자루 가득 넣어온 그날 저녁, 어린사람은 꿈을 꾸었다. 아니 그것은 꿈속으로 불려내진 기억이었다. 그 곳에 검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등을 구부리고 앉아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과 귀와 코와 입에서 무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검은 사람은 그것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막으려고 애썼지만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흘러 내렸다. 어린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그런 것이 눈과 귀와 코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꼭 검은 사람 안쪽에 있는 또 다른 검은 사람이 그 구멍들을 통해 바깥으로 넘쳐 나오는 것 같았다. 검은 사람은 계속해서 그것들이 흐르지 않게 하려는 듯 얼굴을 앙상하고 옹이진 두 손으로 가렸다.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손바닥 틈사이로 계속해서 흘러내린 그것들은 검은 사람이 앉아있는 주변으로 작은 내를 이루면서 사막으로 흘러갔다. 그 때 처음으로 어린사람은 검은 사람이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계속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그것들 사이로 그가 하는 말이 새어 나왔다. “나.는.”

어린사람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 다음 밤 날 검은 사람은 마을에서 사라졌다.

집에 함께 잠드는 나이든 사람들은 이미 일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집안에는 어린사람 혼자였다. 그의 왼쪽 눈에는 무언가 투명하고 작은 것이 맺혀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몹시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것을 닦아 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그 작고 투명한 것은 왼쪽 눈에서 떨어져 흙바닥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혹시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간밤의 냉기와 습기가 서려있는 흙바닥을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훑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아침햇살이 어린사람의 그림자를 문지방까지 길게 걸쳤다. 그 순간. 어린사람은 자신의 그림자가 예전보다 조금 더 짙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 집 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세상에서 제일 황량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먼저 머리속에 들어온 이미지는 사막에서 돌아온 검은 사람의 옆모습이었다. 그걸 가지고 짧은 산문시로 쓰려고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이야기가 제 멋대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단편소설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글이 산문시라고 생각한다. 좀 길게 쓰기는 했지만.



2006. 2. 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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