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몸의 기운과 기댈만한 희망이 모조리 빠져나가 등짝이 갈라진 메마른 땅처럼 하루 하루를 연명 할 지라도, 어쨌든 두 눈을 뜨고야 마는, 그 지칠줄 모르는 열정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사람이 있다. 프레시안 김숙현기자. 영화에 대한 열정,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커다란 절망과 동시에, 삶에 대한 자존감을 (어떻게든)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개인적으로 '완소'감독 이라고 생각하는 김응수 감독의 인터뷰를, 이 사람이 감행(!)했다. 그리고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 인터뷰도 같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덧글을 달면서 뻘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요즘과 같은 시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주 가차없는 답이 돌아왔다. 앞 뒤 수식도 없이 딱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가차없이 명료했다. 잠간 갸웃했다.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 머릿속엔 요즘 시대에 대해 '어처구니 없음, 지랄 맞음, 치졸함' 정도의 단어들이 맺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감각' 혹은 '생채기' 같은 것들 이라고 해야할까.
- 이정환 기자의 블로그는 구글 리더로 등록해서 애독한다. 이사람 블로그는 좋은 것이, 리더공개를 전체를 해 놓아서, 굳이 꼭 블로그 방문을 하지 않더라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 이전에. 팩트에 근거한 기사들을, 혹은 글을 쓴다는 점이다. 문장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탄탄한 저널 기사의 전형을 배울 수 있다.
오늘 구글 리더를 검색하니 이정환 기자가 이명박 정부의 친 서민 정책에 관한 글을 올렸다. 한 마디로 빚 좋은 개살구, 그냥 '쇼' 일뿐이라는 내용이다. 동감한다. 그리고 딱 그만큼 속상하다. (관련링크 : 말로만 친서민? 진정성과 의지는 의문)
- 요즘 하루키의 1Q84를 읽고 있다. 이명박은 꼭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와타나베 나오루'와 똑같다는 생각이든다. 물론 이명박을 적대적 타자의 위치에 놓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반대로 그를 '이해' 한다고 해서 그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 역시 아닌것 같다. 그를 '어떻게' 한다고 뭔가가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그를 어떻게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든' 해나가야만 한다. 끈질기게, 집요하게, 하루키 식으로 말하자면 '압도적인 편견을' 가지고. 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어떤 악의라던가, 열정이라던가, 여하간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마치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텅 빈 인간'의 현신같다.
- 하루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하루키 작품중에선 개인적으로 <언더그라운드>를 가장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좀 이상한데, 여하튼 하루키 작품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의미있는'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맞을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가 오움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몇 개월 동안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심각하게 신경이 곤두섰던 기억이 난다. 후유증이 컸다는 이야기다.
하루키는 이 작품에서 충실하고 꼼꼼하게 인터뷰어의 역할을 해낸다. 가급적이면 개인적인 감상을 절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만을 기술한 이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 자신이 어떤 종류의 '어둠' 혹은 '공동'에 매혹되어 있었던 것 처럼 보인다. 소설이 아닌데도, 읽고 나면 어떤 하드보일드 소설보다도 더 거친 세계의 단면을 체험한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하루키의 노림수 였는지도 모른다. 팩트와 절제로 이루어진 평편한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도록 이끌어 가는 것.
그러나 하루키의 여행기는 읽지 않는다. 절대로 읽지 않는다. 예전에 <먼 북소리>를 읽고선 여행에 대한 향수병 비슷한 것에 한동안 아주 심각하게 시달린 이후로는. 세밀한 순간의 묘사에 관해선 하루키를 따를자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그 문장의 맛갈스러움이란. 그냥 항복이다 항복.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요즘 시대'에 대한 감각, 하루키, 압도적인 편견을 가지고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