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8일 화요일

글쓰기에 관한 짧은 노트


보는 것과 쓰는 것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영화에 대해 글을 쓸것을, 그리고 써내고야 말 것을 열망하는 '우리'들이다. 그러니까, 여기 네오이마주에 옹기종기, 혹은 지나가다 들른김에, 그렇게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혹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모여든 우리들 말이다.

우리는 영화를 눈으로 본다. 우리는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언어를 통해 '말'을 하거나, 문자를 이용해서 글을 남긴다. 말과 글에는 각각 '언어'와 '문자'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각각의 도구는 각각의 방법을 매개한다. 그리고 형상을 결정한다.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언어와 문자라는 도구는 일종의 필터, 형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찍어 내어진’ 말과 글은 전달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말)과 글은 반드시 그 수신자를 설정한다. 그렇다면 수신자의 자격 요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송신자(말, 혹은 글을 송신하는)와 동일한 영화를 보았다면 최적의 요건이고, 최소 요건은 적어도, 영화를 본 적이 있거나, 영화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영화를 본 적도 없고, 영화가 무엇인지 귀동냥으로도 들어보지 못한 이에게 영화에 대한 글과 말은 공염불일 뿐이다.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을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 혹은 쓰는 것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을 눈으로 본 것을 정확히 동일하게 글이나 말로 옮길 수는 없다. 이미지와 말과 글은 다르다.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를,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열망한다.

말은 불완전하다. 글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말이, 한 문장의 글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전달 될 때, 맨 처음 발신자에게서 시작된 말 혹은 글은 그 과정에서 마모 되거나, 덧붙여 지거나, 변형된다. 이것은 필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하고, 쓰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왜 ?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전에, 먼저 ‘어떻게’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말하기와 글 쓰기 중에서 ‘글 쓰기’로 주제를 한정해 보자. 글쓰기에 있어서 최소한의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냥 문장을 나열한다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무엇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구조화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에 대해 쓰여진 문장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동반한다. 문장은 필연적으로 결여를 전제한다. 한정된 지면에 넣어야 할 것과 넣지 않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순간, 이해를 위한 문장은 오해의 여지 또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적어도 글은 효율적으로, 약속된 방식에 따라, 서로가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쓰여져야 한다.

한 호흡에 읽기 좋은 분량으로 정리된 문단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깔끔하다. 알맞은 문단의 길이와 분량을 결정하기 위한 고민은 각 문장의 형태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정갈한 문장과 문단을 만들어내는 습관은 반대로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머리 속에 떠오른 글에 대한 아이디어나 컨셉을 논리적이고 좀 더 이해가 쉽도록, 그러니까 전달이 용이하도록 알맞은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이 손쉽게 뚝딱하고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 눈으로 본 것을 말하고 글로 쓰기를 열망하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과정과 노력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 ? 당신이 눈으로 본 영화를 말로, 글로 쓰기를 열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신과 나에게 소통과 이해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강하고 꾸준하게 생각하고, 정리하고 글을 쓰자. 버릇처럼, 숨 쉬는 것 처럼.


영화비평 웹진 네오이마주에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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