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영어로는 common sense, 공통의 견해를 의미한다. 조금 풀어 보자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혹은 공감하는 지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상식은 불변하는가 ? 그렇지 않다. 아주 더디고 계속해서 바뀐다. 대한민국에서 좌측 통행은 상식이지만,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우측통행이 우선된다. 상식은 그러니까 제한되고 특정한 공간, 영토, 시간대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다면, 상식은 특정한 한 사람에 의하여, 혹은 한 집단에 의하여 한정적으로 점유 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상식을 점유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기준으로 타인에 대한 제약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가 성립되는가? 그렇지 않다. 상식은 그저 참조항이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상식에 비추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식이 이러한데 너는 잘못된 것.' 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상식은 만능으로 들이댈 수 있는 잣대가 아니다. 상식이 성립되기 위해선, 그 상식의 잣대를 적용하게되는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상식의 가치가 위협 받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상황이나 조건에 대한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상식을 적용하는 것은 이 정부의 '법치주의' 만큼이나 공허하고 위험한 폭력이 되기 쉽다. 상식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일종의 '국지적 합의'라고 할 수 있다. 합의라는 것은 양자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 상식이라는 것은 '보통의, 일반적인' 이라는 항목을 전제한다. 그러나 상식 자체가 보통의 일반의 가치일 뿐이지, 상식을 운운하며 잣대를 들이댄다 해서 그 사람이 보통의 사람이고 일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일반적 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다수'를 상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일반적으론 그러한 것이니까.' 어떤 상황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상식과 보통을 말할 때, 그 말을 듣는 쪽, 그러니까 화자의 반대편의 누군가는 보통과 일반과 상식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넌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니?' 상식을 언급할 때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타인의 배재를 유발하는 말하기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폭력은 일상과 '보통'의 얼굴을 하고 알아채기 어렵게 쌓여가기 때문에 그만큼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남긴다.
그러므로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반드시 지금 상황에 대한 명민한 판단과 이해에 대한 기본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당신은 판관이 아니고, 당신 앞의 누군가 역시 죄인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상식을 들이대는 자는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그런 식의 삶은 아주 비겁하고, 편리하고 이기적인 삶이다. 어차피 이런 식의 '원칙'에 의거한 삶도 개인의 판단이며 선택이지만, 문제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인 '합의'에 기반하는 상식이라는 가치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상식을 참조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상식이라는 가치가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상식은 어떤 칼날 보다도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하는 폭력적인 도구가 된다. 이것이, 상식을 습관적으로 들먹이는 자들을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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