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6일 목요일

자전거는 정직하다.




자전거는 정직하다. 페달을 밟는 자는 자전거의 미덕이 서늘한 정직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단 한 뼘도, 단 한 순간도, 내 다리의 움직임 없이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체인과 바퀴는 제 자리에서 회전하지만 바로 이 제자리 걸음이 자전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전거는 비틀비틀 쓰러지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맨 처음 자전거를 배우게 될 때, 자전거가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가볍게 핸들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겨울 빙판에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적당하게 미끄러질 줄 아는 감각을 몸 안에 들이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팔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우리는 곧잘 넘어지고 만다. 몸이 기우는 딱 그만큼만 몸을 맡길 줄 아는 위태로운 균형의 감각 같은 것을 체득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겸손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 배우게 된다. 이 겸손과 긍정의 힘이 바로 자전거를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적는다. “자전거를 통해 세상의 길들은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다시 흘러 나간다.” 당신은 길의 일부이면서 전체이고, 동시에 까마득히 먼 소실점이 된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서 동시에 저 앞에 있으며 또 저 뒤에 남겨진다. 이때 당신은 길고 외로운 흔적을 남기며 지나가는 하나의 점이된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상대적 개념일뿐, 원래는 중첩되고 동시에 편재하는 하나의 느슨한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된다. 자전거타기는 이러한 중첩된 순간들을 쉼없이 통과하는 행위이다. 당신 앞에 마련된 모든 순간들을 고스란히 호흡하는 행위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걷는 것과 다르다. 길을 걷는 것은 아주 더디고, 주의깊게 길을 맛보는 것이다. 걷는 행위를 통해 길이 가지고 있던 처음의 속도감은 유보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 이의 몸위로 길은 쓰여지고 남겨진다. 자전거타기는 길이 가지고 있는 속도감의 기억을 되살린다. 페달과 엉덩이, 손바닥을 통해 길의 감각들은 고스란히 내 몸으로 전달 된다. 그러나 이것은 맛 보는것과 다르다. 길을 체험하고, 그 기억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 때, 길과 나는 다르지 않다. 내가 바로 길이 된다.

자전거 타기에 있어 쉼은 곳 운동이다. 턱 밑까지 심장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같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 될 것 처럼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그 정점의 순간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더 달리고 싶다’는 또다른 치열한 욕망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단순한 중독과는 다른 것이다. 쉼과 운동이 다르지 않다는 단순한 진실을 몸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깨달음은 경이롭다.

페달은 '돌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페달을 밟는 직선 운동은 자전거 바퀴의 원운동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페달의 원운동은 두 개의 정점을 교대로 순환하는 운동으로 전달된다. 오른쪽 발이 원의 정점에 오르게되면 왼쪽 발은 원의  최하점을 지나게 된다. 두 점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힘은 서로를 밀고 당긴다. 두 개의 다른 힘은 자전거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 채로 길을 마주하면 어디로도 가지 않고 멈춰 있는 것 같은 길이 사실은 세상 어디로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길은 어디로도 가지 않지만 이 길은 세상 어디에든 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나는 길 위에서 꿈을 꾼다. 이 먼 길들의 끝에는 당신이, 또는 내가, 또는 꿈꾸는 무엇이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그리하여 나는 그 곳에 끝내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단단하고 소박한 위안을 얻게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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