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가면 교보 문고가 있다. 이곳을 처음 찾았던 것이 중학교 시절이었다. 광화문에 가면 큰 서점이 있는데, 거기 가면 엄청나게 많은 책 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 꼬마 혼자 물어물어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그리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갈급증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여기에 살고 싶다. 출판사 사장 딸과 결혼이라도 할까. 아니야, 돈이 있어야 해. 돈이 많으면 뭐해 책을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해. 서점 직원이 될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용돈을 깼다. 읽고 싶었던 시집과 책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탐욕스런 웃음을 흘렀다. 이제부터 이 책들은 ‘내 것’이다. 꼬박 5 개월을 모은 용돈 십 몇 만원이 모조리 날아갔다. 그래도 행복했다. 뿌듯했다. 돌아오는 버스는 일부러 남산을 한참 돌아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골라 탔다. 차창으로 여름 오후의 햇살이 뽀얗게 부서졌다.
광화문에는 시네큐브도 있다. <로보캅>과 <람보>와 <백투더 퓨처> 말고도 또 볼 만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그 영화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나는 배웠다. 맨 처음 시네큐브를 찾았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를 처음 찾았던 중학생의 어지럼증이 다시 불현듯 기억났다. 몸이, 그 때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줬다. 넉넉하지 않았던 학생시절 그래도 꼭 챙겨보던 로드쇼와 키노에서 글로만 ‘읽었던’ 영화들을 진짜로, 퀴퀴한 골방 같은 시네마데크들의 화질 좋지 않은 비디오 테잎 화면이 아닌 진짜 영화로 만날 수 있는, 그것도 이렇게 근사한 공간에서 우아한 사치를 부릴 수 있다니.
이제 백두대간이 광화문 시네큐브의 운영을 중단하게 된다. 극장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기업인 태광 기업 쪽에서 시네큐브의 운영은 계속 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어쨌든 공간은 남겨 진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진심으로 아쉽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영화는 공간을 채우는 기억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냄새도 맡을 수 없지만, 우리는 눈으로 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루만지고, 체감한다. 그 모든 기억들과 시간들. 불이 켜지면 그 기억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행한 이와 소곤거리며 나누었던 대화 속에, 때로는 혼자 찾았던 조금 외롭지만 고즈넉했던, 나와 당신의 기억 속에 남는다. 공간의 주인은 바뀌겠지만, 그 기억의 주인은 바뀌지 않는다. 백두대간과 함께 했었던 시네큐브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도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비평 웹진 네오이마주에 동시 게재.
아 ... 시네큐브 느림보님 덕에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가면 꼭 한 번 가서 보고 싶은 걸 한 번 봐야 겠습니다. ^^ 공간의 주인은 바뀌지만 기억의 주인은 바뀌지 않는 다는 글 귀 ...너무 매력적입니다ㅎㅎ
답글삭제@II Fenomeno - 2009/08/21 14:38
답글삭제글 마무리를 어찌할까 조금 끙끙댔는데요,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까, 또 그럴만 하겠다 싶어서 써 봤습니다. :)
오늘은 아침부터 덥우나 날씨는 매우 좋은 주말의 시작이네요^^
답글삭제즐겁고 재밌는 주말을 보내세요^^
@II Fenomeno - 2009/08/22 09:39
답글삭제날씨 묘하던데요 덥다가 후덥하다가 빗방울도 가끔뿌리고. 그래도 바람속에서 가을 냄새가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