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 - 흔들리는 도쿄
도쿄가 흔들린다. 장롱 밑에 들어가 있던 쌀알처럼 집 밖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흔들림이 멈춘다. 사람과 모든 것들이 잠시. 순간과 영원의 짧은 만남. 그러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부동 자세로 있던 사람들은 주섬주섬 다시 자신의 집을 찾아 돌아간다. 그리고 사내는 집안으로 돌아가려는 여자의 ‘버튼’ 을 누른다.
(어쩌면) ‘이제서야’ 사랑을 발견한 남자와, 이제 막 집안에 틀어박히려는 여자의 사정. 그러니까 이것은 히키코모리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히키코모리가 다른 히키코모리를 만나려면 집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자신의 집을 버려야만 한다. 익숙하게 입고 있었던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만 한다.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접촉’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자는 집안에 틀어 박힌지 10 년이 지나 11 년째를 접어든다. 그는 매주 목요일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다. 그녀는 피자를 배달한다. 매주 남자의 집에 찾아 간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다. 여자는 지진에 혼절한다. 정신을 잃은 여자를 남자는 깨워야만 한다. 지금 남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작은, 그러나 엄청난 용기다.
‘배달하는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돈을 건네고, 물건을 받는다. 간단하다. 전화와 돈만 있으면 모든것이 해결된다.’
절대로 타인과 눈을 맞추지 않았던 남자의 눈길을 끈 것은 박스 너머로 보인 그녀의 가터벨트이다. 에로틱하거나 유혹적이지 않은, 한 쪽만 수줍게 드러내 놓은 가터벨트는 남자의 눈길을 여자의 얼굴로 끌어들인다. 허벅지에서 얼굴로.
남자에게 타인은 돈을 건네는 손, 그 밑으로 보이는 신발, 그 신발 위에 얹혀져 있는 다리 같은 것들. 그 맨 위에 어떤 얼굴이 달려 있는지는 이 남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타인은 그저 하나의 도구, 그를 빼 놓고도 무심히 돌아가고 있는 세상의 메타포일 뿐이다.
여자의 도발은 귀엽기까지 하다. 우연처럼, 여자와 남자의 눈길이 허공에서 잠간 만난다. 그 순간, 도쿄가 흔들린다. 집이 흔들리고 도로가 흔들리고, 쌓아 놓은 책들이 무너진다. 남자와 여자. 이 둘을 둘러싼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길이 만나고 피부가 만난다. 타인을 만지는 행위를 통해 그가 거기에 있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것은 나의 경계를 타인을 통해서 비로서 확인 하는 것이다. 타인은 당신의 거울이다. 그 거울에 당신은 자신을 비추어 볼 수도 있고, 당신을 만져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집안으로 틀어박히는 것은 자신을 바라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가 바로 여기 있음을 확인 하지 않려는 것이다.
남자는 집안 곳곳에 편재 遍在함으로서 부재不在한다. 오프닝에서 집안을 유영하듯 돌아다니는 카메라는 화장실에 있던 남자가 어느새 거실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또 뒤돌아 서면 주방에 선채로 식사를 때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집 그 자체이다. 집을 옷처럼, 피부처럼 입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집은 익숙한 자궁이고 풍족한 무덤이다.
깨어난 여자는 집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완벽해.” 남자의 세계는 여자의 틈입으로 인해 균열이 생긴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벗어나 흔들리고, 굴러떨어진다. 어쩌면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사랑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은유라고 할 수 있다. 그 은유는 순진하고 뻔하다. 그런데 봉준호는 이런 폭신폭신한 사랑 이야기에 세기말의 풍경을 슬쩍 겹쳐 둔다. 그리고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보인다.
이 세기말의 풍경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세계에서 흔히 보아왔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가는 길에 만나게되는 간유리 뒤 흐릿하게 지워지는 누군가의 모습은 기요시의 유령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타인, 그리고 거울 위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이라는,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는 이러한 깨달음이 몰고오는 파국. 그리고 결국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빈 집과 빈 공장과 텅빈 거리들만 남겨진 세계.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봉준호는 쉽사리 희망을 품지 않는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그는 근면하고 꾸준한 비관주의자였다는 점이다. 두 형사는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아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괴물은 죽었지만 가족은 복원되지 않았다. 이 헛헛한 복수의 감각들.
오직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일념. 남자는 집을 나선다. 햇살이 따갑고 눈부시다.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집 밖으로 나온 남자는 자신을 11 년간 품고 있었던 집을 바라본다. 담쟁이 넝쿨이 집을 송두리째 감싸고 있다.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동물 같다. 집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 이제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세계의 끝에 걸쳐져 있는 맨 처음의 절실하고 단순한 감각.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남자와 여자가 (비로소) 만났다는 것.
도쿄 ! (Tokyo!, 2008)
감독 : 레오스 카락스, 미셀 공드리, 봉준호
영화비평 전문 웹진 네오이마주에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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